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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그린 Jul 22. 2022

지금 나보다 점쟁이를 더 믿는다는 거야?

돈과 신용(8)


가족 간에도 돈과 신용거래를 하지 않는 것이 아경의 철칙이다.


젊은 시절 아경은 살다가 답답할 때, 속된 말로 <점쟁이>라고 하는 이들을 찾아갔었다.


신내림을 받은 이는 한번 만나봤는데, 그 기에 영향을 받은 것 인지 곧바로 좋지 않은 일이 생기는 바람에 사주풀이를 하는 이들을 주로 만났다.  


<명리학>을 근거로 한 사주팔자는 인간의 운명을 점치는 것 같지만, 사실 자신이 타고난 명(命)을 어떻게 운전(運轉)하는 것이 좋은 지 알려주는 것이다.  


지금도 아경은 사주풀이가 넘치는 것은 덜어내고 부족한 것은 채우면서 살아가는데 참고할 만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아경이 만났던 명리학자들은 한결같이 아경에게 주의를 주었다.


<남에게 돈을 빌려주면 절대 돌려받지 못할 팔자다. 돈을 빌려주면 사람과 돈을 다 잃는다>


이 말은 <빌려줄 때는 앉아서 빌려주고, 받을 때는 서서 받는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니  <다 아는 거야>라고 말할 수 있지만 알면서도 남에게 돈 빌려주고 떼이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실제로 아경의 집안에서도 돈을 빌려주고 돌려받지 못해 법적 소송까지 갔던 사건이 있었다.


그 당시 채무자는 아경에게 전화해서 정말 갚을 돈이 없으니 소송을 말려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또한 아경의 어머니도 돈을 빌려주고 돌려받지 못해 속을 끓였다. 결국 그 채무자는 끝까지 돈을 갚지 않았다.  


아경의 대학 동기의 어머니도 오랜 벗에게 수천 만원을 빌려주었는데, 그 친구가 돈은 갚지 않으면서 모피코트에 보석을 구매하고 해외여행을 즐기면서 친구의 어머니를 조롱해서 많이 속상해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속 좁은 아경이가 그런 일을 당했다면, 약 올라서 죽을 지경이었을 것이다.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친구 어머니를 뵈었는데, 역시 표정이 밝지 않고 침울해 보이셨다.   


결과적으로 아경은 자신의 사주를 참고 삼아 돈을 빌려주지 않기로 결심했다.


<돈을 빌려줘서 돈과 사람을 잃는다면, 차라리 사람만 잃자>


그러다가 결혼한 언니가 아경에게 ○천만 원을 빌려달라고 했다.


아경은 “이자는 얼마 줄 건데?”라고 물었다.


돈 빌려주면 절대 안 되는 팔자라는 것을 깜박한 것이다.  


다행히도 언니가 “이자 줄 거면 왜 너한테 빌리니? 은행에서 빌리지.”라고 싹퉁머리 없이 말하는 바람에 아경은 기분이 상했다.


그래서 소리 질렀다.


“꺼져!”


그리고 몇 년 후 남동생이 결혼하면서 ○천만 원을 빌려달라고 했다.


다행히 언니와는 달리 동생은 은행에 이자를 줄 바에는 누나에게 주겠다고 했다.


솔깃했다.   


그러나 아경은 고민했다.


<돈>보다는 <사람>을 잃는다는 말이 영 걸렸다.


아경은 언니와는 달리 동생과는 사이좋게 지내고 싶었다.


그래서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했는데, 다들 말렸다.


어떤 선배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선배는 아경보다 나이도 훨씬 많고, 기혼에 아들만 둘 두셨는데 본인이 남동생 입장으로 누나에게 돈을 빌렸다고 했다.


“근데 말이야, 이상하지. 누나가 돈을 갚으라고 할 때마다 자꾸 화가 나는 거야. 마치 내 돈을 빼앗기는 기분이랄까? 아직까지 갚지 않았어. 누나가 돈을 돌려 달라고 하면 <내가 누나 돈 떼먹을까 봐 그래? 나를 못 믿어?> 하면서 아직 버티고 있지.”


“너무하신 것 아니에요? 돈 있으면서 안 갚는다는 말이잖아요.”


놀란 아경이 선배에게 그렇게 말하자, 선배는 그냥 웃었다.


“그렇지. 근데 그게 그렇더라고. 갚으려니 돈이 너무 아깝더라고. 누나 돈이 내 돈 같고 말이야. 가족이잖아. 그러니까 아경은 빌려주지 마. 지금 누나랑 나 사이 안 좋아졌어.”


그리고 선배는 누나 돈은 안 갚으면서 최근에 고급 산악자전거를 샀다고 했다.    


결국 아경은 그날 저녁 동생에게 말했다.


“점쟁이가 내 팔자가 돈을 빌려주면 돈과 사람을 모두 잃는단다. 그래서 안돼”


동생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지금 나보다 그 점쟁이를 더 믿는다는 거야?”


아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컴퓨터로 하는 카드게임에 집중했다.  


결국 동생은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고, 그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그 이후부터 현재까지 아경과 동생과의 관계는 여전히 괜찮다.   


가족들에게도 이럴진대 아경이 다른 이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일은 없었다.


누군가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 어김없이 점쟁이의 말을 고대로 인용하며 거절했다.


심지어 "나랑 그만  만나려면 빌려달라고 ."라고 했다.


물론 아경도 남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녀의 삶의 원칙 중에는 중요한 두 가지가 있었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도 하기 싫은 일이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말자>


아경도 돈이 모자라면 은행에 가서 대출을 받아 이자를 꼬박꼬박 납부하고 원금을 갚았다.


가족에게 돈을 빌려주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인색하지도 않았다.


동생의 경우에는 결혼축의금, 회사를 그만두고 해외로 나갈 때 찬조금, 귀국해서 창업을 한다고 할 때 격려금을 주었다.


집안 행사 시에는 일부를 부담했고, 밥도 잘 샀다.


가족과 맛있는 밥을 먹는 것은 그녀의 즐거움이었다.  


언니의 경우에는 두 조카에게 쏟아부었다.


아경은 <나만한 이모도 없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반면 아경은 비혼에 자식도 없는지라 단 한 푼도 형제자매에게 돈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어차피 돌려받으려고 준 것이 아니므로 괜찮았다.


그 일이 있기 전 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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