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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그린 Aug 29. 2022

저는 싱글 꽃미남 상담만 받습니다

인간관계(8)

어느 날 함께 일하는 직장동료가 말했다.


“제가 요즘 와이프랑 사이가 안 좋아서 힘드네요. 퇴근 후에 같이 한잔하면서 얘기 좀 들어주세요.”


일단 아경은 결혼생활에 대해 쥐뿔도 모르며 알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단박에 “싫어요”라고 거절했다.


아경에게 무안당했다고 생각한 동료는 “지금 무슨 생각하시는 거예요?”라고 기분 나쁜 투로 말했다.


상대방의 의도가 순수하던, 불순하던 아경은 알고 싶지 않았다.


“저는 싱글 꽃미남 상담만 받습니다.”


아경은 그렇게 말하고는 가방을 챙겨서 사무실을 나왔다.


다음 날 아침에 출근해서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다.


동료도 마찬가지였다.   



회사는 일하고 월급 받는 곳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아경은 월급 받는 만큼 주어진 업무를 정해진 기한 내에 성실하게 완수했다.


종종 동료들은 "아경씨가 일을 맡으면 든든해요."라고 말해주었다.


그것은 그녀의 프라이드이기도 했다.  


하지만 동료의 부부상담은 아경의 일이 아니었다.


비혼인 아경에게 부부상담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대학 졸업 후 아경은 오래간만에 대학 친구들과 만나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아경을 포함해서 총 4명이었는데 두 명은 전업주부, 한 명은 워킹맘이었다.


아경은 2시간 동안 입도 벙긋 못했다.


정말 꾸역꾸역 밥만 먹었다.  


아경을 뺀 나머지 세 명은 어찌나 할 얘기가 많은지 아이들, 남편, 시부모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아경을 까맣게 잊고 있는 것 같았다.


<비혼>과 <기혼>의 세상은 분명 달랐다.


무엇보다 퇴근 후의 황금 같은 시간을 유부남 동료의 부부 이야기에 단 일초라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아경을 가장 화나게 한 용어는 <오피스 와이프>였다.


언젠가 휴식시간에 팀장과 팀원들이 다 모여서 간식을 먹었다.


당 보충이 필요한 늦은 오후였다.


그 자리에서 유부남 팀장이 농담처럼 “요즘은 오피스 와이프가 유행이라네.”라고 말했다.


아경은 자기도 모르게 “정말 기분 나쁜 말이에요. 너무 불쾌하고 짜증 나요. 재수 없어요.”라고 내뱉었다.


한순간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동료들의 <첫사랑과 닮았다>, <우리 와이프랑 닮았다>라는 불쾌한 소리는 그냥 대꾸도 안 하고 무시했는데, <오피스 와이프>는 화가 났다.


<오피스 와이프 좋아하네, 미친 XX들!>


차마 그 말까지는 하지 못했지만, 아경의 뜻은 충분히 전해졌다.   


그 이후로 아무도 그 용어를 언급하지 않았다.


적어도 아경 앞에서는 말이다.


그때 팀에서 아경은 선임이었고, 그래서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한 해에 입사한 아경이 막내 사원이었을 때는 할 수 없었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아경의 회사는 꽤 점잖은 조직이었다.


가끔 언론을 통해서 타 직장에서 여성들이 부당한 일을 당했다는 기사를 보면, 아경은 자신이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아경의 회사에도 못된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은 성별의 문제가 아니었다.


인간 본성의 문제였다.


세상은 그런 것이다.


좋은 사람들이 있고, 나쁜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직장생활을 시작한 아경을 배려해주는 동료들이 더 많았다.


아경도 그들의 친절과 배려를 잊지 않았고 업무상 도움이 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못된 사람>을 상대할 때는 거울에 비춰진 것처럼 아경도 <못된 사람>이 되었다.


아경은 자신이 아는 지인 중에 어둠의 세력과 관련된 이가 있다고 살짝 뻥을 치기도 했고, 영화 ‘황해’(2010년)를 보고 나서는 쏘아보며 말했다.


“열심히 돈 모으려고요. 죽을 날 받으면 미운 놈 싹 데려갈 거예요”

     

어느 날 후배 동료가 와서 귀띔해주었다.


“선배님은 4차원이라고 소문났어요.”


뭐, 상관없었다.


아경은 4차원을 <고차원>으로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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