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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른백산 Sep 06. 2021

귀촌 3년, 공간이 만들어 준 작고 소중한 변화

순천 사는한나리 님을인터뷰했습니다

시골쥐소셜클럽 안부 묻기 프로젝트 <우리들의 소소한 사는 이야기> 오늘은 전라남도 순천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한나리 님을 인터뷰했습니다.


함께 하면 힘 나는 한나리님과의 인터뷰였다






1.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나리 이런 인터뷰는 나보다 한길이 더 잘 어울린다. 물고기가 들어간 온갖 소품들, 삼십 센티는 족이 될 반가사유상, 최근에 라이프 사진전에서 구입해 온 액자까지, 취향이 담긴 물건이 참 많다. 이건 한길의 좋은 점 중 하나다. 연애 당시, 잘 꾸며진 집을 보고 굉장히 매력적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아, 자기소개를 해야 하지. 나는 시골로 귀농해서 유기 재배 농사를 짓고, 벌이랑 강아지 수수를 키우고 있는 한나리라고 한다.

벌, 강아지 수수 그리고 한나리님의 공간




2. 물건 고르는 기준이 어떻게 되는가?

나리 이 질문을 받기 전까지는 특별히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고민을 해보니 일단 떠오르는 기준은 '얼마나 예쁘고, 유니크 한가'인 것 같다. 일단 마음에 든 물건이 있는데 바로 사기 꺼려진다면 생각을 해 본다. 내가 다시 이 물건을 만날 수 있을까? 만약 다시 만나기 어려운 물건이라고 하면 그냥 지른다.

고르는 기준 말고, 고르지 않는 기준은 상대적으로 쉽다. 대중적이라고 해야 할까? 정확히 잘 모르겠는데 내가 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어쩐지 못 견디겠단 기분이 든다. (그래서 반대로 쉽게 내가 원하는 물건을 발견했을 때 희열이 더 커지는 것 같다.)



2-1. 뻔하면 못 견디겠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게 정확히 어떤 뜻일까?

나리 물건들 중엔 익히 봐 왔던 문법을 굳이 다시 되풀이해서 만들어진 것들이 있다. 옷이나 신발, 책이 될 수 도 있는데. 나는 그런 것이 숨 막힌다. 심지어는 네모 반듯한 것들도 그렇다. 내가 싫어하는 물건들을 나열해 보니 왜 도시를 떠나왔는지 알겠다.

아무튼 그래서 점점 수제로 만들어진 물건, 독립출판으로 나온 책들에 관심을 많이 두게 되는 것 같다. 모든 물건에는 각각의 개성이 숨어 있지 않나. 개성이 있는 게 좋다.


비닐멀칭 없이 감자심기, 약 안치고 수수심기 등 기행(?)을 일삼는다고 한다

10대에는 일종의 시발비용으로 스트레스 해소용 소비를 했다. 주로 옷을 샀는데 눈에 띄는 알록달록 한 것으로, 돈이 많지 않으니까 되도록 싼 것을 샀다. 그런 것들은 내구성도 좋지 않아서 한철 지나면 너덜너덜해지지 않나? 왜 그랬나 모르겠다.

요즘은 오래 쓰는 물건, 사용의 흔적이 남아서 손맛이 느껴지는 것들을 선호한다. 예를 들어 최근에 한복을 얻어서 입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 옷을 보며 이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아름다워지겠구나, 그래서 오래 쓰는 옷을 입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 밖에도 이 물건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지? 버릴 땐 어떻게 해야 하지? 등등 보이지 않는 이면의 속성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다이소를 끊지 못하고 있다. 싸고 저렴하고 신기하고. 다들 플라스틱화 되어 나오는 물건들인데. 플라스틱을 상상하는 게 불편하다. 점점 줄여야 할 텐데..)



3. 이제 귀촌 3년 차가 되었다. 아무래도 도시와 농촌은 인프라가 다를 수밖에 없는데, 달라진 점은 없나?

농사 말고도 다양한 일들을 한다고 한다

나리 옛날에는 버스 정류장에 가든, 어디를 가든 옷가게가 항상 있었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소비를 계속했던 것인데, 지금 지내는 이곳은 옷가게가 없어서 당장 옷 소비는 줄었다(웃음) 대신 여가가 생겼다.


오일파스텔, 직조, 목공(우드 카빙), 고무신에 그림 그리기, 수채화 그림... 소비와 자극이 줄어드니 내면으로 집중하게 되는 것 같다. '내가 뭘 필요로 할까? 내가 뭘 할 때 재미있지?'하고 끊임없이 고민하게 된다. 나는 수원에 있을 때보다 지금 더 만족스럽다.



내면을 탐구하는 다양한 취미들(너무 많아서 모두 싣지 못했다)


4. 애용하는 브랜드가 있는지 궁금하다

나리 (파타고니아를 이야기하자) 파타고니아도 두 개밖에 없다. 근데 그거를 자주 사용하는 것 같다. 비싼 브랜드이기도 해서 많이 쓰지 못하는 건데, 다만 파타고니아의 철학 슬로건이 마음에 든다. '사지 말고 계속 다시 입자' 뭐 그런 것 아닌가. 가치가 마음에 들면 괜히 더 사용하게 된다.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글귀

얼마 전까지 옷질in보헤미안이라는 페이지에서 옷을 샀다. 이곳은 해외 의류를 직구하는 곳인데 이곳에서 지향하는 옷의 분위기 톤이 나랑 잘 맞는다. 그러다 직접 직구를 하면 더 다양한 옷들을 접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은 해외직구도 직접 한다. (핀터레스트에서 감각적이고 예쁜 것들을 저장했다가 알리익스프레스에서 검색한다. 사진 검색이 되어서 편하다)


지역에서 애용하는 특별한 브랜드들도 있다. 독립출판사 열매 하나. 여기서 나오는 책들이 나와 정서적으로 잘 맞는다. 작고, 따뜻하다. 그리고 벌교읍내 아즘찬이라는 이름의 카페가 있다. 동네 사랑방 같은 공간인데, 나는 차를 잘 안 마시는 편인데도 자주 찾아간다. 또 노필터 라는 이름의 카페도 있다. 모카포트를 사용해서 커피를 내리는 곳이다. 마지막으로 노플라스틱 카페.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는 특색있는 곳인데, 이 공간에서 알맹상점을 함께 운영중이다.

왼쪽부터 노필터카페, 노플라스틱카페
한참 모임 중인 카페 아즘찬이


5. 인생의 물건들을 소개해 달라

나리 10대에는 자잘한 옷들.

20대에는 여행할 때 잘 들고 다녔던 텐트. 그리고 수첩. 생각나는 것들을 적는다고 수첩을 오랫동안 많이 썼다. 나에게 예쁜 수첩을 고르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의식이었는데, 기준을 잠깐 말해보자면 1. 겉표지가 깔끔하고 예쁜 것 2. 너무 선이 명확하지 않은 것(속지의 줄이 가득 차 있으면 답답하다) 3. 너무 크지 않은 것(매일 들고 다녀야 하니까) 예전에 사용하던 수첩을 지금도 많이 가지고 있다

20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수첩들. (잘 보면 반가사유상 무릎 위에 강아지가 누워 있다)


30대에는, 내가 이제 서른둘인데 뭐가 있을까 잠깐 고민했다. 그래서 떠오른 것이 책인데 좀 복잡하다. 옛날에는 나의 책들이 나를 대변한다 생각했었다. 그래서 잘 안 읽히는 어려운 것들도 읽으려고 노력했는데 이게 한 번 읽은 것들은 다시 잘 안 읽게 되지 않나? 귀촌을 준비하면서 이사를 여러 번 하게 되었는데 이게 다 짐이니까, 책에 대한 회의가 계속되던 차에 처분을 하기도 했었다.

근데 지금 와서 다시 생각을 해보니 나의 책이 역시 나이기는 하더라. 나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서 (앞으로 아이를 낳을지, 낳지 않을지 모르는 일이지만) 만약 아이가 생긴다면 책을 자연스럽게 보게 만들고 싶다. 나를 이루고 있는 일종의 유산과 같은 것으로 말이다.



6. 지금 갖고 싶은 물건이 있나?

나리 귀촌하면서 사물을 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다. 특히 시간. 시계는 하루 열두 시간밖에 표현하지 못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24시간 아닌가. 그래서 24시간계를 찾아봤다. 24시간계는 파일럿들이 많이 차는 시곈데, 이름처럼 하루 한 바퀴만 돈다. 그걸 가지고 있으면 단순하게 지금 시간부터, 내가 하루 중 얼마의 시간을 썼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7. 끝으로, 주변 사람들은 입을 모두 '한나리는 다르다' 이야기한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한나리 다움이란 무엇일까?

나리 종잡을 수 없는 거. 나는 파악당하고 싶지 않다. 아는 쌤이 내게 그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너는 톡톡 튀는 럭비공 같구나. 그거면 좋다.






나와 함께 시간을 축적하는 옷이 있다면, 그래서 '나 다운 게 무엇인지' 증명하는 옷이 되었다면 그것보다 더 나와 가까운 물건이 따로 있을까요? 점점 오래 쓰는 좋은 물건에 관심을 갖게 된다는 한나리 님의 인터뷰. 그를 통해 '나를 표현하는 물건'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듭니다.


고맙습니다. 시골쥐소셜클럽은 다음 인터뷰에서 새로운 취향으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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