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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른백산 Sep 22. 2021

시골쥐소셜클럽은왜 시작했어요?

경기광주사는 김기덕 님을인터뷰했습니다

시골쥐소셜클럽의 안부 묻기 프로젝트 <우리들의 소소한 사는 이야기> 다섯 번째로 모신 분은 경기광주에 살고 있는 김기덕 님입니다.




1-1.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기덕 예술가로 살고 싶은, 기획자 겸 카피라이터 김기덕이다. 요즘은 시골쥐소셜클럽으로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 가고  있다.



왼쪽부터 시골쥐소셜클럽 스토어, 인스타그램


1-2. 최근에 좋은 소식이 있었다고 한다

기덕 맞다. 결혼 1년 차, 우리 부부 사이에 아이가 생겼다. 오는 3월 출산 예정인데, 그 덕분에(?) 되도록 심플하게 살자는 나의 좌우명을 자꾸만 어기게 되는 것 같아 고민이다(웃음). 낮에는 직장에서 열심히 홍보 기획을 하고, 저녁엔 돌아와서 시골쥐소셜클럽을 준비하는 일상을 살고 있는데... 아이가 온다는 건 하나의 우주가 오는 것과 마찬가지다는 말을 들었다. 앞으로는 아이의 미래까지 고민하게 되었으니 고민이 많을 수밖에. 다른 한 편 세상 모든 아빠들이 이미 그렇게 살아왔다 생각해보니 새삼 존경심도 있다. 뜻밖에 더 겸손하게 살도록 마음먹게 된 것 같다. 

다행인 건 시골쥐가 차근차근 주변정리를 하며 진행할 수 있는 형태의 사업이라는 점이다. (생각보다 중국에서의 배송은 오래 걸리는 일이었다.) 열심히 정리하고, 열심히 준비하며 살아야겠다 싶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찍었던 사진


2-1. 본격적으로 물건과 관련된 질문을 하겠다. 자신 만의 물건 고르는 기준이 있나?

기덕 이 물건이 나의 가치가 더욱 분명하게 만들어주는가가 가장 중요하다. 가까운 예시가 애플이다. 애플이 오랫동안 광고로 이야기해 온 브랜드의 가치나 시장에서의 위치가 나를 꾸미는데 도움이 된다. 최근에도 이러한 애플 사랑을 몇 사람에겐가 설명하기 위해 "나는 갤럭시 워치를 찬 내 모습보다 애플 워치를 찬 내 모습이 더 마음에 들어"하고 말했었다. 오타쿠를 바라보는 듯한 거리감 있는 시선이 되돌아오긴 했지만(ㅋㅋ) 말이다. 

반면, 브랜드 가치가 관여할 여지가 없는 경우에는 이 물건이 '진짜'인지 되물어보고 선택한다. 진짜에는 여러  의미가 있을 수 있다. 1. 역사적인 맥락이 녹아 있어서 최초 고안자의 고민이 엿보이는지 2. 불필요한 요소가 더해져서 원래 성격을 저해하지는 않는지 3.  새로운 요소가 원래 성격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는지



2-2. 하나씩 소개해 달라

기덕 첫 번째 역사적인 맥락 이야기는, 그러니까 클래식한 물건인지 묻는다는 의미다. 시대와 상관없이 어느 때에나 통용 가능한 물건. 원래 기능이 만들어진 이유에서부터 충실히 보존되었는지. 

두 번째 이야기는 요즘, 특히 '가성비' 때문에 많이 발생하는 문제인데 특히 저렴한 물건에서 많이 발생한다. 예를 들자면 천 원짜리 성냥갑이 있다고 하자. 천 원 성냥갑은 다른 천 원 성냥갑보다 비교우위를 점하기 위해서 레이스를 단다던가, 특히 외양적으로 다른 시도를 할 수 있다. 그게 시장에서 유리하니까. 근데 그게 경쟁을 통해 쌓이고 쌓이다 보면 특이점도 발생한다. 성냥갑 역할을 하지 않는 성냥갑까지 생기는 것이다. 나는 이런 물건들이 싫다. 

마지막 이야기는 1+1=3을 말하고 싶었다. 새로 더해진 모든 요소가 불필요하지는 않다. 원래 특성을 강화하고 더 나아가서 새로운 의미를 불어넣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위에 성냥갑 예를 들었으니, 마저 사용해보자. 성냥갑에 레이스가 달리면 이상한 거지만, 담배를 꽂아 놓을 수 있다면 그건 괜찮다. 시가 커터가 함께 달려 있다면 그건 괜찮다. 그냥 성냥갑을 넘어, 시가 전용 성냥갑이라는 카테고리가 되는 거니까. 


어쩔 땐 너무 복잡하게 사는 게 아닌가, 반성도 든다. 하지만 이 기준들은 실제로 내가 살면서 물건을 선택하는 기준이라기보다 시골쥐소셜클럽을 만들면서 새로 정리한 기준에 더 가까운 것이라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더 유난인 것이다. 현실적인 감각으로 정리해 놓는 데는 또 여기서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물건의 기준에 관련해서는 다음에 또 이야기하는 자리가 있으면 좋겠다. 



2-3. 스스로 원하는 이미지가 있는 것 같다

기덕 내가 좀 촌스럽다. 머리나, 옷 등 나를 세련되게 꾸밀 줄 모른다는 의미기도 하지만 그냥 외향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고 나 스스로 '맥락 없음'을 자꾸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나만의 맥락을 만들기 위해 소위 기본 템이라고 하는 원색 중심의 단정한 옷들만 간단히 갖추려고 하는 것 같다. 그 위에 스마트함을 강조하는 안경, 시계, 가방 등을 함께 착상하는 편.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나의 이미지는 심플하고 똑똑하게


똑똑함에 대한 목마름은 나의 역사에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다. 옛날 얘기부터 꺼내야 한다. 우리 집이 원체 가난했는데, 그래서 네 식구 단칸방 생활도 오래 했고, 부모님도 호두과자부터 포장마차, 청과물 차 장사까지 안 해본 일이 없을 지경이었다. 특이한 것은 그러한 환경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엄마의 짐 속에는 항상 시집, 문학전집 등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 어린 시절, 신줏단지 모시듯 책을 가지고 있고, 또 종종 책을 읽는 부모님의 모습은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다. 가난한 집안이 으레 그렇듯 부모님은 책이나 독서에 대해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마침 집 앞 20분 거리에 읍 도서관이 있었고, 그 덕분에 나의 어린 시절 꿈은 대통령, 로봇 박사 대신 서점 사장. 좀 더 쳐서 북마켓 CEO가 되었었다. 나의 바람은 그 옛날부터 하나였다. 책을 많이 읽고 똑똑해지는 것. 



3. 애용하는 브랜드가 있나?

기덕 애플 이야기는 이미 했고, 그 외에는 특별히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애용하고 싶은 브랜드는 있다. 디테일이 다르다는 룰루레몬의 요가복, 옷만큼 가치도 훌륭한 파타고니아, 혁신 그 자체인 테슬라. 현대백화점도 좋다. 브랜드 선정, 상품 선정, 백화점 디자인... 우리나라에서 백화점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신세계와 다른 행보를 가고 있는 '현대 다운'스케일이 존경스럽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런 생각도 드는 것 같다. 나열한 브랜드들이 추구하는 가치나 방향성이 저마다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것들이 마음에 드는 이유는 상품의 가치와 커뮤니케이션이 서로 잘 맞기 때문인 것 같다고. 그러니까 나의 취향에 맞는 브랜드라는 걸 아직 제시하지는 못하는 듯. 



4-1. 시골쥐소셜클럽에 관해서도 궁금하다. 물건을 파는 일을 하는데, 주변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나?

 기덕 애리가 몇 해 전까지 종로에서 일을 했다. 덕분에 그 동네에 관한 재미있는 여러 이야기를 많이 알 수가 있었는데, 그중 몇 가지가 나를 자극했다. 대충 이런 이야기였다. "종로, 이 건물부터 저 건물까지가 조선시대 유명했던 선비 누구의 자손 소유래", "이 담장 너머가 전 대통령 누구의 생가야", "여기서 대한민국이 처음 선포되었어" 역사 교과서를 거니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어딘가 한 편 마음이 쓰렸다. 나는 한 평생 주변인으로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내가 자란 평택에서는 방송에서 평택 이야기를 들을 수가 없었다. 아홉 시 뉴스에서는 서울 이야기만 들려줬다. 나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는데. 나중에 스무 살이 넘어 선배들과 서울 집회를 나갈 때 난생처음 한강을 제대로 내려다봤던 것 같다. 한참 달려야 겨우 건널 수 있는 넓은 강 폭, 빌딩 숲 너머 우뚝 솟아 있는 남산타워, 포근하게, 웅장하게 서울을 감싸고 있는 산의 위용. 그때는 이야기 속을 거니는 것 같아서 그저 신나고 즐겁기만 했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즐거움은 점점 분한 마음으로 바뀌어갔다. 세상이 인정하는 이야기, 세상이 주목하는 인생들의 주변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 나와 우리가 보잘것없는 주변 인생이란 생각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래서 종로를 다니다가, 문뜩 오래된 분노에 불이 붙었던 것이다. 결심했었다. 만약 내가 무언가 일을 한다면 보잘것없는, 가장 보통의 우리들을 위해 고민하자고. 그래서 시작했다. 인터뷰는 철저히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주목해 보자고. 



4-2. 시골쥐에서 판매하는 물건과 인터뷰 사이의 간극이 꽤 큰 것 같다. 어떻게 줄여 나갈 계획인가?

기덕 중간에 완충 작용을 할 프로젝트를 하나 준비하고 있다. 사람들은 중요한 가치나 사건을 사람이나 캐릭터에 대입하길 좋아하지 않나? 사람들이 좋아하는 역사의 인물들을 리터칭 하여 스티커로 제작, 배포할 계획이다. 이후 작업에서 본격적으로 선보이겠다.



5. 인생의 물건을 소개해 달라

기덕 10대는 책, 이길수 교수의 고구려 역사 유적 탐방기(제목 아님). 어린 나에게 독서는 허영심을 채우는 역할을 해주었다. 더 이상 공룡만 파고 살 수 없게 된 초등학교 저학년. 웅대한 마음을 품게 해주는 것이 또 고구려의 찬란한 역사 아닌가. 당시에는 책 쇼핑을 동네 서점에서 매대를 둘러보는 것으로 해결했는데, 두께도 두텁고,  올 컬러 삽지에 빳빳하게 코팅이 된 진지한 책이 내 눈을 사로잡았었다. 

아직 중국 내륙 왕래가 자유롭지 못하던 시절, 역사 전공의 한국인 교수가 직접 중국의 고구려 유적을 거닐며 잘못된 역사 상식을 바로잡는 내용이었다. 고구려, 고려의 표기가 실은 고구리, 고리가 맞다는 등 꽤나 과감한 주장을 많이 펼쳤던 책인데 그 자극 덕분에 책을 끝까지 완독 할 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 아주 큰 감명이 없이는 읽은 책을 또 펼쳐 보기 어려운 어린 시절, 무려 다섯 번 이상 정독했던, 나에겐 인생 책이다.


20대는 장구채 가방. 나의 대학시절은 드라마 카이스트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 로봇축구 승리를 위하여 밤샘도 마다하지 않는 불타는 청춘들. 그 안에서 피어나는 사랑과 우정의 스토리. 두근대는 캠퍼스를 보며 자란 나에게 대학교는 상상에서나마 화상을 입을 듯 뜨거운 공간이었다. 대학에 가면 학업이 아니더라도 노력하며 밤새는 일이 잦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느 정도는 맞았다고 볼 수 있겠다. 나도 장구 하나만큼은 나름 열심히 했으니까. 선배의 선배로부터 물려받은 장구채 가방을 등에 짊어지고 한 해를 다녔다. 전대의 선배처럼 장구채 만드는 재료를 항시 넣어 놓고 살았고, 때때로 장구채 한 쌍을 떠내서 허벅지에 치면서 놀았다. 

장구채 가방. 최대한 유사한 것으로 찾았다


30대는 노션. 저번 인터뷰 한나리 님이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은 노트니 수첩이니, 다이어리니 하는 것들을 열심히 쓴다. 근데 나는 하나를 끝까지 끈기 있게 써본 기억이 잘 없다. 왜 그런 것인지 잘 모르겠는데, 서른 넘어서 만난 노션에서만큼은 그런대로 열심히 잘 쓰고 있다. 시골쥐소셜클럽의 사업 아이디어부터 글감 수집, 모르는 단어 정리, 업무 체크 리스트, 달력, 부부 데이터 보관함까지 전후좌우 가리지 않고 노션을 사용하고 있다. 아마 내가 꼼꼼한 사람처럼 보인다면 그건 다 노션 덕분. 귀중한 기회를 잡았는데, 앞으로 평생은 노션을 끼고 열심히 메모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6. 인터뷰가 어느덧 5회째가 되었다. 소감 부탁한다

기덕 처음 인터뷰를 시작한 이유는 '할 수 있으니까'였던 것 같다. 그런데 하면 할수록 오히려 인터뷰를 진행하는 우리들이 신나는 것 같았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평소보다 더 내밀하게 들을 수 있으니까. 아무것도 없는 우리들에게 흔쾌히 자신의 이야기를 베풀어준 모든 인터뷰이들에게 감사한다. 




모두를 감동시킬 수 있는 이야기, 모두를 만족시킬 물건, 정말 존재할 수  까요?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유명한 이야기라 할지라도 '나 자신의 이야기'보다 흥미롭지는 못할 테니까요. 그래서 시골쥐소셜클럽은 더, 더 작은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를 준비합니다. 


<우리들의 소소한 사는 이야기> 다음 인터뷰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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