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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은실 Aug 19. 2023

내리막길을 미끄러지지 않고 걷는 법


나는 잘 걷는 편이다. 말굽발이라고 하나? 그래서인 것만은 아니겠지만 아무튼 잘 걷는 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리막길에서 잘 미끄러진다. 자주 미끄러져 넘어져서인지 잘 넘어지는 법을 몸이 알아서 터득했을 정도다. 그래서 미끄러져서 넘어져 크게 다친 적은 없다.

그렇지만 언제나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주의를 기울이며 걷는다. 아무리 잘 넘어져도 넘어지면 어딘가는 조금씩 다치고 아프니까.  

요사이 아침 산책을 다시 시작했는데 그러다 또 두 어번 미끌어져서 넘어질 뻔 했다. 십년도 더 넘은 운동화 탓을 하며 작년부터 신었던 테니스화를 꺼내 신고 나갔다. 좀 나았지만 그래도 미끄러질뻔 하는 일은 여전했다.

그러다 나란히 걷는 중이던 동네 친구를 가만히 살펴보았다. 한 번도 미끄러지지 않는 그녀는 샌들을 신고 걸을 때도 운동화를 신고 걸을 때도 내리막길을 참 안정적으로 잘 걸었다. 오르막은 나보다 힘들어했지만 내리막은 아주 편안해 했다.

그녀에게 물었다. 어떻게 걷길래 그렇게 편안하게 걷냐고.  친구는 발 밑에 자갈들이 도돌도돌하구나 느끼며 천천히 걷는다고 말했다.

선문답같은 대답이긴 했지만 곰곰이 생각하니 그녀가 내리막길을 걷는 법을 이해할 것도 같았다. 발 바닥으로 땅을 단단히 딛고 땅을 잘 느낄 수 있도록 무게 중심을 딱 아래에 두고 천천히 걸어 내려오기.  그게 내리막길을 미끄러지지 않고 잘 걷는 방법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 내리막길을 걷는 방법은 오르막길을 걷는 방법과 같지 않았다. 오르막을 걸을 때는 중심을 살짝 발 앞에다 두고 걷게 되지만 내리막을 그렇게 걸었다가는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자칫 미끄러져 넘어져 크게 다칠 수 있으니까. 내리막길을 걸을 때는 무게중심을 딱 아래에 두고 천천히 땅을 단단히 잘 딛으며 걷는 것이 좋다.  

인생의 내리막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 또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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