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감상한다는 것은 예술가의 삶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 이 글은 문화예술 오피니언 플랫폼 '아트인사이트'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혹시 단 한 번이라도, 예술과 퀴어의 관계에 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이 책은 바로 그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오늘날의 예술 감상이 예술 그 자체를 느끼기보다 예술의 '해석'에 치중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예술을 있는 그대로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위해 그 본질을 탐구하던 과정에서 예술과 퀴어 간의 관계성을 찾아냈다. 뉴욕의 크리스티&소더비 경매에서 최고가를 기록한 작품의 화가들 중 40% 이상이 (총 22명 중 9명) 퀴어였다는 것이다. 즉, 세상이 인정한 뛰어난 예술성을 지닌 사람들 중 절반에 가까운 수가 퀴어였다는 것을 알아낸 작가는 그를 더 파고들어 탐구한 끝에 책으로 펴냈다.
작가는 총 10명의 퀴어 화가들을 선정하여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키스 해링과 앤디 워홀과 같은 예술가들은 퀴어임을 이미 알고 있었으나, 마르셀 뒤샹이나 프리다 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같은 예술가들이 퀴어였다는 사실은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특히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경우, 퀴어가 편견 없이 받아들여졌을 리가 없는 르네상스 시기에 살았던 인물이었기에 더 놀라웠다.
또한 어쩌면 예술과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퀴어'라는 소재와 시각에서 바라본 예술가의 삶, 그리고 그들의 작품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퀴어라는 소재를 바탕으로 예술 작품을 다시 보니 억눌린 생각과 감정들을 예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자유롭게 분출하고, 때로는 예술을 통해 사회적 억압에 당차게 맞서고자 했던 예술가들의 모습이 엿보였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프랜시스 베이컨의 이야기를 다룬 부분이었다. 이전에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베이컨의 작품을 처음 마주했을 때, 이상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마력을 느껴 그 앞에 꽤 오래 머물렀던 기억이 난다. 너절하게 전시된 동물의 육신과 그 앞에서 검은 우산 아래 욕망 어린 잔인한 미소가 떠오른 입만을 보이는 남성. 그림은 불쾌했지만, 그만큼 인상적이었다. 단순히 자극적이어서가 아니라, 작품이 내뿜는 노골적인 불쾌감만큼이나 강렬한 작가의 주제 의식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책에서 마주한 베이컨의 삶은 그의 그림만큼이나 야성적이었다. 본능에 따라 살았고, 이끌리는 사람을 만나 함께했다. 또한 그의 삶은 원초적이었던 만큼 죽음으로 가득했다. 총 5번의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경험한 베이컨, 어쩌면 그의 예술이 가죽이 벗겨진 육체에 도달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를 감싸고 있는 현대 사회의 몇 겹의 부산물들을 걷어내고 나면, 모든 인간은 그저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니 말이다.
이처럼 이 책은 '퀴어'로서 10명의 예술가들의 삶을 제대로 알 수 있게끔 돕고 있다. 작품을 보다 깊이 있게 감상하고, 작품에 담긴 예술가들의 '혼'을 느껴보기 위해서는 예술가의 삶을 있는 그대로, 속속들이 알고 있으면 도움이 되니 말이다. 베이컨의 삶을 둘러싼 죽음들 중 네 번의 죽음이 그의 동성 연인들의 것이었으며, 그 4명의 연인들이 베이컨에게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게 되면 베이컨의 작품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 그 예이다.
다만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은 예술과 예술가를 바라보는 시각에 약간의 치우침이 있고, 너무 많은 것을 담아내려다 보니 하나의 큰 줄기로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여러 곁가지들이 중간에 자리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만큼 많은 것들을 이 책은 전하고 있고, 나는 모든 이들의 견해에는 그들만의 주관과 역사가 담겨 있다고 믿기에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세상과 인생을 바라보는 예술가의 관점을 담아낸 것이 예술 작품이라면, 이 책 역시 예술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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