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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리 May 08. 2022

20년간 속인 것은 나인가, 너인가 <엠 버터플라이>

* 이 글은 2022년 4월 23일 발송된 뉴스레터 '방구석 문화생활'에 실린 글입니다.


오페라 <나비부인>을 아시나요? 푸치니의 오페라 중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으로, 일본의 어린 게이샤(*일본의 예인) ‘초초상’이 주인공인 작품입니다. 초초상은 미군 핑커튼과 사랑에 빠지지만 핑커튼은 홀로 미국으로 돌아가고, 초초상은 버림받았다는 사실에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는 슬픈 이야기인데요. 아시아로 떠나는 오늘의 방구석 연뮤 여행의 목적지는 오페라 <나비부인>이... 아니고,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연극 <엠 버터플라이(M. Butterfly)>입니다.



무대의 막이 오르면 한 남자가 등장합니다. 남자의 이름은 르네 갈리마르. 르네는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걸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중국 내 프랑스 대사관에서 일하던 르네는, 어느 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오페라 <나비부인>을 보러 갔다가 초초상을 연기하는 배우 ‘송 릴링’에게 한눈에 반합니다. 그렇게 르네는 송과 깊은 사랑에 빠지고, 아이까지 갖게 됩니다. 하지만 그 때 중국에서 문화대혁명이 일어나 프랑스로 돌아가게 된 르네 앞에 어느날 갑자기 송이 나타납니다. 감격한 르네는 송이 부탁하는 것을 전부 들어줍니다. 그것이 국가 기밀을 빼돌리는 것임에도 말이죠.


그렇습니다. 송 릴링은 중국 공산당에서 파견한 스파이로,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르네에게 접근해 지속적으로 국가 기밀을 빼내고 있었습니다. 이보다 더한 것은, 송 릴링이 사실 여자가 아닌 남자였다는 사실입니다. 두 사람이 고발당해 재판장에 설 때가 되어서야, 르네는 그 사실을 처음 알게 됩니다. 두 사람이 관계를 이어온지 20년이 되는 시점이었습니다.


그러나 르네는 계속해서 송이 남자라는 걸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르네 앞에 송의 환영이 나타나 다시 한번 진실을 인식시켜주죠. 그제야 르네는 여태껏 자신의 욕망이 만들어낸 환상 속에서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고, 그토록 사랑했던 ‘나비부인’의 모습으로 죽음을 택합니다.



<엠 버터플라이>는 사실, 오페라 <나비부인>의 모티브에 북경 주재 프랑스 외교관 베르나르 부리스코와 경극 배우 스페이푸의 실화가 더해진 작품입니다. 실제로 20년 동안 부리스코는 국가 기밀을 넘겨줄 정도로 스페이푸를 깊이 사랑했으나, 남성인 그를 줄곧 여성으로 알았다고 해요.


그렇지만 <엠 버터플라이>는 단순히 실화를 연극으로 만든 것에서 더 나아가, 오리엔탈리즘*과 섹슈얼리티라는 묵직한 주제를 함께 엮어 풀어냅니다. 극의 모태가 된 오페라 <나비부인> 역시 인종차별적이고 성차별적이라는 비판을 피해가지 못하는 작품인데요. <엠 버터플라이>는 대사, 캐릭터, 연출 등을 통해 그를 심도 깊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동시에 극적인 재미를 놓치지 않습니다. 그런 작품성을 인정받아 <엠 버터플라이>는 1988년 토니 어워즈에서 최우수 연극상을 수상했습니다.


(*오리엔탈리즘: 서양인이 동양 문화를 묘사하는 것. 주로 동양에 대한 허구적이고 편견어린 서양의 시선을 뜻합니다.)


<엠 버터플라이>는 한국에서 2012년 초연해 큰 인기를 끌었고, 2017년까지 총 4번 무대에 올랐습니다. 저는 공연을 2회 관람했는데, 처음 관람했을 땐 너무 많은 의미와 정보가 들어있는 텍스트를 따라가기가 버거웠어요. 그렇지만 두 번째 관람하면서 보다 많은 부분을 이해하게 됐고, 궁극적으로는 덕분에 연극 보는 재미가 무엇인지 알게 됐습니다. 꾸석이 분들도 꼭 그런 연극 작품을 만나시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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