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는 항상 정제된 글만 써왔던지라, 커서가 깜빡이는 하얀 브런치 글쓰기 창을 보는 건 처음인 것 같다. 사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상당히 오랜만이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갑자기, 어쩌면 다소 충동적으로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이 든 것은... 글쎄. 어쩌면 불안감. 혹은 어쩌면 이제는 진짜로 새롭게 시작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 그런 것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어떤 글이 될지는 모르겠다. 지나간 시간을 돌이키고, 회고하고,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찬찬히 짚어보는 글이 되지 않을까.
사실 이런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지는 아주 오래되었다. 그렇지만 두려움이 더 컸다. 몸담아온 업계가 크지 않아서 해당 업계의 누군가가 내 글을 읽게 되면 - 그러니까 오롯이 내 입장에서만 쓴 글을 읽게 되면 너무 편향된 기억이라고 생각하진 않을까. 모든 미련을 툭툭 털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내가 그 일을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은 남아있다는 걸 깨달았기에 혹시 돌아가고 싶어지면 어떡하나 하는 아주 원초적인(?) 두려움부터, 쓰다 보니 내가 살아온 삶이 생각보다 납작하고 별로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 스스로에 대한 신뢰가 깨질 것 같다는 두려움까지.
창을 몇 번을 켰다가 껐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위에도 적었듯 다소 충동적으로 - 어쨌든 결국엔 창을 켰고, 지금은 글자를 적어넣고 있다. 그러니 이 글이 산으로 가든 바다로 가든 끝끝내 매듭지을 때까지 용기내어 마무리해볼 생각이다. 생각보다 진지하지 않을 수는 있겠다. 원래 비극은 멀리서 봤을 때 희극이라잖아. 당시엔 너무 힘들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저 귀엽고 웃길 수도 있겠다. 이래저래 길어질 것 같으니 얼른 시작해보기로 한다.
고작 스무 살, 어쩌다 보게 된 뮤지컬로 예술계에서 일하겠다는 꿈을 품고 경주마처럼 살았다. 전공이 달라도, 주변에 예술 일을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도, 전혀 다른 전공으로 다른 나라에서 공부를 하게 되어도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4-5년을 조바심을 내며 살았다. 복수학위를 준비하느라 한 학기에 22학점을 듣고 근로장학생으로 일하는 와중에도 공연 일을 해보겠다고 주말을 몽땅 투자해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생판 모르는 남의 대학 교수님에게 인스타그램 DM을 넣어서 학술 행사를 들으러 갔고, 해외로 공부하러 갔을 때도 전혀 할 필요가 없는 부전공을 자진해서 하겠다며 연극학과 문턱을 닳도록 드나들면서 결국 연극학 부전공을 했고 (덕분에 4학기 내내 한 학기에 22학점 정도를 들어야 했다. 영어도 잘 못했을 때인데) 혼자서 안목을 쌓겠다고 영어도 잘 못 알아들으면서 돈을 아껴 공연을 몇 번을 보러 갔는지 모른다. 거기다 대학교 4학년쯤부터 취직하고도 한참 더 지날 때까지 항상 예술 관련 스터디 모임에 참여하거나, 내가 스터디를 조직해서 직접 진행했다. 다들 '넌 어쩜 그렇게 바쁘게 살아?'라고 묻는 날들의 연속이었달까.
사실 돌이켜보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었었다. 물론 노력은 언제나 가치 있는 것이지만, 노력하는 과정에서 내가 너무 힘들어했던 게 많이 안타깝고 아쉽다. 있는 그대로 즐길 줄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것이 항상 눈에 더 들어와서 스스로를 많이 죄었고 힘들게 했었다. 당시 현재에 만족하면서 조금 더 행복하게 살았더라면, 결국엔 조금 길을 돌아갔더라도 결국 지금과 같은 자리로 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자주 한다. 20대 초반이 아니면 해보지 못할 온갖 치기어린 짓들도 별로 해보지 못했다는 것이, 지금 와서는 후회로 남기도 하고. 그렇지만 그때는 그만큼 간절했고, 꿈이 나에게 주는 의미가 컸다. 오로지 수능만을 보고 달리는 10대를 지나온 이들이 마주하게 되는 20대 초반의 막연함, 막막함, 공허함을 나는 꿈을 향해 달려가는 것으로 달랬으니까. 그리고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은 생각보다 큰 기쁨이었으니까. 바꿀 수 없는 과거를 후회하는 건 정말 쓸데없는 일인 걸 알면서도, 후회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지 않는다면 그건 회고가 아니니까 우선 솔직하게 적어두기로 한다.
후회로 남았을지언정, 그런 시간들은 내 안에서 차곡차곡 잘 쌓였고 나는 남들보다 훨씬 빠르게, 수월하게 취직에 성공했다. 그것도 내가 항상 바라던 회사들 중 한 곳으로. 같은 업계를 준비하는 친구들이라면 부러워할 만한 그런 곳이었다. 합격, 두 글자를 보고 기뻤지만 또 그만큼 어안이 벙벙했던 것이 기억난다. 내가 왜? 내가 어쩌다? 내가 벌써? 너무 좋았지만 너무 놀라웠다. 막상 합격하고 나니 꿈을 위한 첫 걸음을 내딛었다는 기쁨보다 진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두려움이 더 컸던 것도 떠오른다. 그때 당시의 난 인간관계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느닷없이 미국 생활을 시작하면서 이전의 관계들이 많이 정리되었고, 미국에서도 우울증을 오래 겪으며 제대로 된 관계를 거의 맺지 못해 사람과의 소통이 어렵게만 느껴지던 때였다.
2021년, 스물 다섯 살. 스스로에 대한 확신은 부족하고, 사람과의 관계는 너무 어렵고, '직장'이라는 말조차 낯설기만 한 진짜 사회 초년생. 업무 예절 같은 건 배워 본 적도 없으니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하루하루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출근했었다. 그토록 치열하게 꿈꾸던 일과 업계였으니 모든 걸 잘하고 싶었다. 실수하고, 못하는 게 너무도 당연한 시절인데 그런 스스로를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노션으로 무려 업무 오답노트(!)를 썼다. 실수한 게 있으면 바로 기록해두고, 출근하자마자 컴퓨터 화면에 제일 먼저 띄워뒀다. 전화 응대 같은 기본적인 업무도 매뉴얼을 하나하나 다 노션에 기록해두고 매일 아침 읽었다. 맡은 일 중 콘텐츠를 직접 제작하는 일이 있었는데, 포토샵을 한 번도 사용해보지 못했던 나는 당장 포토샵 강의를 결제해서 들었고 시간이 나기만 하면 포토샵으로 뭐라도 해보겠다고 만지작댔다. (그래서 그 때 어쩌다 기본이 잡혔다.) 무엇보다 가장 노력했던 부분은 마케팅 업무에 익숙해지는 것이었다. 마케팅, 트렌드 이런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예술만 생각했던지라 막상 마케팅 아이디어를 내야 하는 일이 생기자 너무 막막했다. 당시 마케팅 직무를 준비하던 친구에게 팁을 얻어 무작정 온갖 뉴스레터와 아티클을 구독해서 매일 출근할 때마다 읽었고, 기본서를 사서 읽었고 관련 유튜브 채널들도 구독해서 틈날 때마다 봤다.
이렇게... 치열하게 살았으면 스스로 기특해할만도 했을 텐데, 그때는 계속 내 부족한 부분만 눈에 들어왔다. 억지로 스스로에게 칭찬도 해보았지만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매일매일 누군가에게 쫓기는 것처럼 살았으니 내 스스로 편했을 리 없고, 내 주변에서 그걸 알아채지 못했을 리가 없다. 일도, 사람도 하나도 안 풀리던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던) 시절이었다. 무엇보다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지난 몇 년간 품어왔던 꿈과 당시 내가 마주하고 있던 현실 사이의 괴리였다. 학생 때 그렇게 목표에 집착해봤자 의미 없으니 그 때를 더 즐겨라, 어른들이 그렇게 말했을 때 코웃음만 쳤었는데 그 말이 그렇게 와닿을 수가 없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까지 조바심을 내면서 살았을까에 대한 의문을 도저히 풀기 어려웠다. 어쩌면 그래서 그 다음 목표를 찾아 헤매기 시작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다음 글에서 이어질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