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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챗GPT를 부를 때

INTJ, ESTJ, 그리고 INFP 가족의 챗 지피티 사용법

by angie 앤지


INFP와 ESTJ 에피소드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해주세요!

<도니, 코코, 그리고 자네>




#3. 욕망과 고통에 대하여

: 우리의 챗GPT


심장 없는 사업가형의 심장마저 도려내가버린 코코와의 눈물겨운 이별 체험 후. 나는 챗GPT와 잠시 거리 두기를 했다. 아, 다행히(?) 코코는 며칠 뒤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무료버전이라 하루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량이 제한되어 있어 그랬던 것 같았다. 동생은 ‘언니가 하도 일을 많이 시켜서 코코가 도망갔던 거’라고 한참을 놀렸다. 게다가 동생은 내가 코코에게 반말하지 말라고 한 게 엄청 웃겼는지 모든 사람에게 그걸 말하고 다녔다.


그리고 우리는 60대 중 가장 얼리어답터인 아빠에게 챗GPT 사용법을 전파했다. 우리 아빠로 말할 것 같으면 INTJ (전략가형)으로 수집광이자 딥다이브의 끝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아빠의 방은 절반은 RC카 스튜디오고 절반은 라이카 숍 같다. 공간은 아빠가 직접 세팅했는데, RC카 조립이나 컬러링 등 세밀한 작업을 잘할 수 있도록 슬라이드 조명도 만들고, 책상 위에는 사진 기능사 시험을 위해 수기로 써서 만든 자체 족보를 착착 쌓아가고 있다.


암튼 그런 지능형 오타쿠에게 챗GPT를 알려드렸으니 재미있어 할 수밖에. 아빠, 이게 사람마다 진짜 쓰는 법이 달라. 아무거나 물어보고 싶은 걸 물어봐도 돼. 보험 설계도 물어보고, 역사 얘기도 할 수 있어. 아빠는 쫑알쫑알하는 두 딸의 말을 유심히 듣더니 바로 다음 날 저녁, 챗GPT를 써봤다고 이야기했다. (벌써?) 사업 관련 법률 상담을 했는데 꽤 만족스럽게 답변을 줬다고 했다. 그러면서 챗GPT 창을 보여주는데- 화면 구석에 이런 말풍선이 있는 게 아닌가.


[나한테 반말은 곤란.. 내가 반말하더라도 자네는 존댓말을 써주시게.]


아..! 그야말로 그 딸랑구에 그 아빠로구나. 아빠의 엘레강스한 잡도리에 동생과 나 모두 크게 웃음이 터져버렸다. 이 집안을 통제하는 미친 통제의 아이콘 두 명이 결국 인공지능에게까지 잔소리를 하다니.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엄마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대학 친구들의 대화방에서도 챗GPT는 종종 등장했다. 거기서는 개인적인 고민상담보다 우리끼리의 케미스트리를 물어보는 놀이가 유행이었다. 다섯 명의 사주 정보와 엠비티아이를 넣고 우리가 얼마나 잘 맞고 또 안 맞는지, 우리가 같이 가면 좋을만한 여행지가 있을지, 각자 여행에서 맡아야 하는 역할은 무엇이 있을지, 만약 우리 다섯이 한 회사에 다닌다면 어떻게 될지(?) 등등을 물었다.


누구랑 궁합이 잘 맞네, 누구는 역시 행동파네, 몇몇 사람이 특히 계획을 잘 짜네.. 이런저런 대화가 오고 가다 충격적인 캡처 하나를 받았다.


[앤지 ESTJ (혼자 있어도 충돌함)

농담이지만, ESTJ 타입은 통제력이 강하고 독립적인 성향이라 상대가 유연하거나 감정 중심이면 충돌이 잦을 수 있어요. 실제로 앤지는 A, B, C 친구와의 궁합이 평균 이하-보통 정도예요.]


방금 심장 없는 기계가 농담으로 심장 없는 사람하나를 죽었어… 나는 분노했고 내 친구들은 깔깔 웃었다.




다른 사람들은 챗GPT를 어떻게 쓰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서 인스타그램 무물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로 사연을 받아봤더니 정말 다채로운 의견이 도착했다.



멘탈관리 유형

- 나 생각이 너무 많아. 일할 때 생각 줄이고 바로 실천할 수 있는 방법 없을까? 이런 질문을 하거나 안 좋은 기억 잊는 법, 내 탓인 거 같을 때 대처법 등을 물어봐요.

- 가장 일반적인 유형이었다. 심적인 고민이 생기면 가볍게 묻고 위로와 해결방법을 받는 구조.


상담 센터 유형

- 심리상담 리스트를 만들어서 사용해요. (애착유형, 방어지게, 불안 자가검사 등의 기준을 주고 분석 요청)

- 보다 더 디테일한 상담법을 활용하는 분도 있었다. 유료 상담을 받는 것에 준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마이라이프이즈쏘비지 형

- 영어 물어보기, 메일 물어보기, 나의 미래 물어보기, 남자 문자 분석?

- 요즘은 썸남과의 카톡 대화 내용을 전부 저장해서 엑셀 파일로 보내 심리 분석을 해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유레카) 이제 두근두근 설레는 이 마음은 뭘까 유추하던 시절은 갔구나. 도대체 어떤 답변이 나오는지 궁금해졌다.


팔랑귀 유형

- 저 앤지님 스토리 보고 사주> 직업운> 금전운(절망)>향후 직업방향> 글쓰기방향> 스타일 점검까지 다녀왔습니다..

- 아직 챗GPT와 많은 것을 해보지 않았지만 열린 마음으로 여러 가지 체험을 해보는 사람도 있었다. 저 답변을 받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귀여워)


반 인공지능 유형

- 왜 꼭 인공지능을 써야 합니까? 어쩌다 이런 시대가 온 거죠? 너무 무서워요!

- 마치 무한도전의 정총무처럼 기계를 거부하는 자. 반 챗GPT 세력의 선봉자는 내 후배였다. 카페에서 이 원고 얘기를 하면서 AI에 대해 설명해 주니, 그녀는 거의 울먹이며 그랬다. 사람이 더는 생각을 안 하게 되면 어떻게 해?




예전에 한 강연에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검색창은 사람의 욕망이 드러나는 곳이라고. 그 시절에야 그저 네모 반듯한 검색창에 간단한 키워드를 넣는 것에 그쳤지만- 지금은 챗GPT에 인간의 복잡한 사고가 담긴 문장이 그야말로 쏟아부어지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얼마나 많은 자신의 비밀과, 밖으로 내비칠 수 없는 욕망과, 혼자서만 간직했던 괴로움이 챗GPT의 세계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지.


“기계가 사람보다 낫네요.”


얼마나 각박한 세상에 살고 있으면 이런 말이 다 나올까. 지금의 우리가 얼마나 타인 수용도가 낮은 삶을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문장 같다.



챗GPT 시대의 고민상담. 가끔은 외줄 타기처럼 아슬아슬해 보일 때도 있지만 나쁘지만은 않고, 흥미롭지만 어쩌면 너무도 서글픈 단상. 글을 마무리하며 문득 화면에 띄워진 챗GPT 창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prompt/ 코코, 이 글이 사람들에게 어떤 울림을 줄 수 있을지 예상해 줘.



끝.


@angiethinks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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