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타너스(2) 계약과 기억
이 이야기는 우화처럼 들릴 수 있고, 거울처럼 읽힐 수 있으며, 우리의 미래를 예고하는 장면일지도 모른다.
2015년 어느 날, 영국 잉글랜드 북부 사우스요크셔(South Yorkshire)에 자리한 산업 도시 셰필드(Sheffield)의 웨스턴 로드(Western Road). 한때 철강 산업으로 번성해 ‘스틸 시티(Steel City)’라 불렸던 이 도시는 20세기 후반 산업 쇠퇴를 겪으며 도시 재생과 기반시설 정비를 반복해 온 곳이다. 그 도로 가장자리의 성목 가로수 아래에 사람들이 모였다.
그 나무들은 1919년에 심어졌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기념 가로수길’이었다. 같은 해, 같은 규모로 줄지어 식재된 약 백 그루의 나무들 가운데에는 런던플레인(Platanus × hispanica)을 포함한 플레인 계열과 단풍나무류(sycamore)가 함께 섞여 있었다. 기념은 돌비석 하나로 세워진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줄기와 수관으로 길게 이어졌다. 나무는 해마다 잎을 내고 그늘을 만들며,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이름 없는 이들의 부재를 조용히 반복했다.
거의 한 세기가 흐른 뒤, 그 기념 가로수들 가운데 일부는 ‘교체 대상’으로 분류되었다. 도시 기반시설을 장기 계약으로 일괄 정비하는 사업 속에서, 성목 가로수는 도로와 보도 관리의 변수로 재해석되었다. 셰필드에서 벌어진 논쟁은 단순한 벌목 갈등이 아니라, 산업 도시의 재생과 공공 자산의 가치 판단이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드러내는 사건이 되었다.
2012년 셰필드 시의회는 ‘Streets Ahead’라는 25년 장기 민관협력(PFI) 계약을 체결했다. 도로, 보도, 가로수 유지관리를 하나의 패키지로 묶은 사업이었다. 계약 문서에는 단순한 정비 계획이 아니라 정량적 목표가 명시되어 있었다. 25년 동안 최소 17,500그루의 가로수를 교체한다는 조항, 그리고 매년 최소 200그루 이상을 교체한다는 하한선이 그것이다. 이 수치는 연간 권고치가 아니라 계약상 의무였다. 도시 전체 거리 나무가 약 36,000그루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절반에 가까운 수목이 교체 대상 범주 안에 들어가도록 설계된 구조였다. 실제로 2012년부터 2018년 사이 약 5,474그루가 제거되었다는 집계는 이 목표가 선언적 수사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숫자는 중립적으로 보이지만, 계약 속에서 숫자는 실행력을 가진다. 17,500이라는 총량은 선택의 여지를 줄이고, 연간 최소 200이라는 조항은 매해 벌목이 ‘진행 중’이어야 함을 구조적으로 보장한다.
지역 언론은 이 지점을 빠르게 짚었다. Sheffield Telegraph는 시민 인터뷰를 전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실었다.
“This is not about dangerous trees. It’s about fulfilling a contract.”
“이건 위험한 나무의 문제가 아닙니다. 계약을 이행하는 문제입니다.”
또 다른 주민은 BBC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They’ve set a number first, and the trees have to fit the number.”
“그들은 먼저 숫자를 정해놓고, 나무를 그 숫자에 맞추고 있습니다.”
숫자가 기준이 되고 나무가 그 기준에 맞춰 재분류되는 상황을 시민들은 직감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STAG(Sheffield Tree Action Groups)의 활동가는 지역 집회에서 다음과 같이 외쳤다.
“We are not anti-maintenance. We are anti-mindless felling.”
“우리는 유지관리에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 없는 벌목에 반대하는 것입니다.”
이 문장은 곧 현수막과 팻말에 반복되었고, 계약의 목표치를 채우기 위한 기계적 제거라는 인식이 운동의 중심 언어가 되었다.
‘Streets Ahead’라는 사업명도 역설의 중심에 놓였다. 직역하면 ‘앞서가는 거리들’, 혹은 ‘더 나은 길’이라는 의미를 갖는 이 이름은 현대적이고 진취적인 이미지를 풍긴다. 그러나 시민들 사이에서는 이 명칭이 점차 다른 뉘앙스로 읽히기 시작했다. 집회 현장에는 이런 문구가 등장했다.
“Ahead of the trees.”
“나무보다 앞서 가는 것이 아니라, 나무를 앞질러 없애는 것.”
지역 칼럼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Ahead for whom?”
“누구를 위해 앞서가는가?”
앞서가는 것은 도시의 삶인가, 계약의 일정인가, 아니면 벌목의 속도인가라는 질문이 공론장에 놓였다. 이름은 발전을 암시했지만, 현장에서 체감된 것은 성목이 사라진 자리였다.
셰필드의 논쟁은 단순한 감정의 충돌로 환원되지 않았다. 시민들은 계약 구조를 읽었고, 숫자의 의미를 읽었고, 이름의 수사를 읽었다. 지역 언론에 기고한 한 시민은 이렇게 썼다.
“These trees are part of Sheffield’s living heritage.”
“이 나무들은 셰필드의 살아 있는 유산입니다.”
전쟁 기념 가로수에 대해서는 이런 문장이 반복되었다.
“They are not just trees; they are memorials.”
“그것들은 단순한 나무가 아니라, 기념물입니다.”
‘살아 있는 유산’이라는 표현은 수목의 생태적 기능과 도시의 기억을 한 문장 안에 묶어두는 언어였다.
이 지점에서 플라타너스는 단순한 수종이 아니라 구조적 상징이 된다. 산업 도시의 공기를 견디며 성장해 온 성목이 계약의 최소치에 의해 분류되고, 거리의 역사가 일정표에 맞춰 조정되는 장면은 도시 행정이 생명체를 어떤 틀로 다루는지를 보여준다. 셰필드의 시민들은 숫자와 이름의 수사를 해체하며 다른 질문을 던졌다. 도시를 앞서 가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교체의 속도인가, 축적된 시간인가.
시의 전략 문서에는 가로수 제거 기준이 있었다. 이른바 ‘6Ds’: Dangerous, Dead, Diseased, Dying, Damaging, Discriminatory. 겉으로 보면 이 목록은 거의 반박하기 어려운 상식처럼 보인다. 위험하거나, 죽었거나, 병들었거나, 기능을 방해한다는 범주 안에 나무를 넣는 일은 관리 행정의 합리적 언어처럼 읽힌다. 전략 문서는 제거가 무분별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임을 약속하는 문장을 담고 있었다. 초기 문서에는 다음과 같은 표현이 등장한다.
“Tree removal will always be the last resort, and only considered where there are no other reasonable management options available.”
“수목 제거는 언제나 최후의 수단이며, 다른 합리적인 관리 방안이 없을 경우에만 고려된다.”
이 문장은 보호를 약속하는 듯한 어조를 띤다. 문서에는 얇은 연석(kerb) 설치, 수목 구덩이 확장, 부분 도로 폐쇄 등 대체 관리 방안도 함께 열거되어 있었다. 나무는 우선 보존되고, 제거는 마지막 선택이라는 서술 구조가 분명히 존재했다. 그러나 2018년 개정 전략에서 이 문장은 사라졌다. 대안의 목록도 함께 삭제되었다. 남은 것은 6Ds라는 분류 체계와, 그 분류에 따라 판단된 나무의 ‘상태’였다.
문서가 수정되는 과정은 조용했다. 전략의 취지는 유지된다고 설명되었고, 목표는 변하지 않는다고 발표되었다. 그러나 삭제된 한 문장은 판단의 방향을 바꾸었다. “최후의 수단”이라는 문구가 사라지면서, 제거는 선택지 중 하나가 아니라 이행해야 할 절차의 일부로 재배치되었다. 대안의 가능성이 삭제되면서, 계약의 목표치가 전면에 남았다. 문장은 사라졌지만, 그 빈자리는 숫자가 채웠다.
이 지점에서 6Ds는 단순한 기술적 기준을 넘어선다. ‘Damaging’이라는 항목은 보도를 밀어 올리는 뿌리를 가리킨다. ‘Discriminatory’는 접근성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보행 환경을 지칭한다. 이 두 단어는 특히 해석의 여지를 넓게 가진다. 뿌리는 자라며 토양을 밀어 올리고, 보도는 침하하고, 표면은 균열을 만든다. 이 현상은 도시 설계와 유지관리의 복합적 결과이지만, 분류표 안에서는 나무의 속성으로 환원된다. 행정 문서는 원인과 결과를 한 단어로 묶는다. 그 묶임은 책임의 방향을 단순화한다.
계약의 관점에서 나무는 도로 시스템의 구성 요소로 읽힌다. 도로가 우선이고, 보행의 평탄성이 기준이 되며, 나무는 그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 항목이 된다. 뿌리가 포장을 들어 올리는 순간, 나무는 결함의 원인으로 기입된다. 이 기입은 법적으로 유효하다. 영국의 고속도로법(Highways Act 1980)은 지방 당국에 도로의 안전과 유지 의무를 부여한다. 법원은 셰필드 사건에서 경관적·미학적·생태적 가치가 판단의 핵심 요소가 아니라는 취지의 해석을 제시했다. 법은 도로의 기능을 우선순위에 둔다. 행정은 그 해석에 따라 문서를 구성한다. 그 문서가 계약과 연결될 때, 분류는 곧 집행이 된다.
여기서 노골적인 단순화는 합법의 형태를 얻는다. 문서가 거짓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더라도,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지우는지가 판단의 윤곽을 결정한다. “최후의 수단”이라는 문장이 삭제될 때, 제거는 더 이상 방어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대안의 목록이 사라질 때, 비용 대비 효율성의 계산은 자동적으로 제거 쪽으로 기울게 된다. 자본주의적 계약 구조는 비용을 예측 가능하게 만들고, 일정표를 고정하며, 성과 지표를 수치화한다. 성과는 종종 가시적이고 계량 가능한 지표로 환원된다. 제거된 그루 수는 계산하기 쉽고 보고하기 쉽다. 보존된 그늘의 온도 저감 효과, 지역 공동체의 기억, 탄소 축적량, 도시 생태계의 연결성은 수치로 환산하기 어렵다. 계산 가능한 항목이 관리의 중심에 놓이는 구조에서, 6Ds는 효율적 도구가 된다.
이 구조는 셰필드만의 특수한 사례로 남지 않는다. 장기 민관협력 계약은 세계 여러 도시에서 기반시설 관리의 표준적 방식으로 채택되어 왔다. 계약은 위험을 이전하고 비용을 고정하며 성과를 명문화한다. 성과가 명문화되는 순간, 제거는 관리의 일부로 제도화된다. 행정 문서 속의 단어는 중립적인 기술어처럼 보이지만, 그 단어는 경제적 논리와 법적 권한 위에서 작동한다. 문서가 삭제한 문장 하나가 실제 도시의 수관 구조를 바꾸고, 삭제된 대안 하나가 수십 년 자란 나무를 교체 목록으로 이동시킨다.
언어는 스스로 칼을 들지 않는다. 그러나 분류표는 절차를 만들고, 절차는 집행을 낳는다. 6Ds는 안전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작성되었지만, 계약 목표와 결합하면서 제거의 효율적 장치가 되었다. 문장은 부드럽고 합리적으로 보이며, 법적 근거를 갖고 있고, 예산 구조와 맞물려 있으며, 외형상 일관성을 유지한다. 이 모든 조건이 충족될 때, 노골적인 단순화는 합법의 얼굴을 갖는다.
이 점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하다. 이 구조는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 도시가 숫자를 먼저 설정하고, 그 숫자에 맞추어 생명체를 분류하는 방식은 특정 수종이나 특정 도시의 문제가 아니다. 효율성과 경제성을 앞세운 행정은 계량 가능한 것을 우선순위에 올린다. 그 선택은 합법적이고 문서화되어 있으며 절차를 통과한다. 그 결과는 수관의 축소, 그늘의 감소, 기억의 약화라는 형태로 도시에 남는다.
언어가 바뀌면 판단의 무게가 이동한다는 말은 추상이 아니다. 문서의 한 문장이 삭제될 때, 도시의 나무 수천 그루의 운명이 함께 이동한다. 6Ds는 기술적 약어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한 도시가 생명과 계약 사이에서 어디에 무게를 두는지를 보여주는 표지판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할 뿐이다”라는 문장이 셰필드에서 사람들을 거리로 끌어낸 까닭은, 그 문장이 어떤 감정의 과잉을 자극해서가 아니라, 오래된 도시가 자기 자신을 대하는 태도를 한 문장에 압축했기 때문이다. 2015년 가을, 지역 언론 보도들 속에서 반복적으로 인용된 말은 이 정도로 정리된다. 시의 고속도로 유지관리 책임자(당시 관련 부서 책임자)가 비공개 녹취에서 주민들의 사유를 “nonsense”로 밀어내며, “we’re not interested”라고 말했다는 내용이다.
“we’re not interested”
“우리는 관심 없다.”
residents’ “nonsense” reasons for saving individual trees
개별 나무를 지키려는 주민들의 “터무니없는(nonsense) 이유들”
이 말은 기술적 판단을 넘어선다. ‘관심’이라는 단어는 행정의 범위를 스스로 축소한다. “관심 없다”는 말은 특정 나무의 사연만을 향하지 않았다. 그것은 도시가 나무를 대하는 방식, 더 정확히는 계약이 공공의 기억을 대하는 방식을 향했다. 웨스턴 로드(Western Road)의 경우, 그 “관심 없음”이 곧바로 숫자로 내려앉았다. 1919년에 조성된 1차 세계대전 ‘기념 가로수’는 한때 97그루가 심어졌고(심은 날짜까지 기록하는 전통이 남아 있다), 시간이 흐르며 줄어든 뒤에도 여전히 상당수가 남아 있었는데, 그 가운데 23그루가 벌목 대상으로 지목되었다는 보도가 지역에서 반복됐다. 그 23그루를 두고 시와 사업자는 “공학적 해결책(engineering solutions)”이 필요하고, 그 비용이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숫자 자체가 잔혹해서가 아니라, 숫자가 기억의 형태를 평가절하하는 도구로 동원될 때 사람들은 모욕을 느낀다. 셰필드에서는 그 모욕이 즉시 말로 번역되었다.
“This is not about dangerous trees. It’s about fulfilling a contract.”
“이건 위험한 나무의 문제가 아니라 계약을 채우는 문제다.”
“They’ve set a number first, and the trees have to fit the number.”
“숫자를 먼저 정해놓고, 나무가 그 숫자에 맞춰져야 하는 상황이다.”
지역 주민들이 언론에 했던 이 말들이 중요한 까닭은, 시민들이 감정에 기대어 싸움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계약 구조를 읽어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셰필드의 나무 싸움은 “나무를 사랑하느냐, 도로를 고치느냐” 같은 단순한 질문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빨리, 왜 이렇게 많이, 왜 이렇게 ‘매해 계속’ 베어야 하는지의 문장부터 물었다. 그 질문이 커질수록 거리의 장면도 달라졌다. 어떤 날은 집회가 열렸고, 어떤 날은 새벽에 작업 차량이 오기 전에 사람들이 먼저 나왔다. 텐트가 공원에 세워졌고, 그 텐트는 단순한 항의의 상징으로 남지 않았다. Endcliffe Park에서 러슬링스 로드(Rustlings Road)의 라임나무를 지키기 위해 사람들이 “a month under canvas”, 한 달 동안 천막 아래에서 버틴 장면은, 이 도시의 싸움이 얼마나 생활로 내려왔는지를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시민단체와 활동가들의 언어도 현장에서 굳어졌다. 생태학자이자 캠페이너로 소개된 STAG(셰필드 트리 액션 그룹, Sheffield Tree Action Group) 쪽 인사는 지역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Residents across the city want to save these trees.”
“도시 곳곳의 주민들이 이 나무들을 지키길 원한다.”
“a blitz … to cut down as many as possible, as quickly as possible.”
“가능한 한 많이, 가능한 한 빨리 베어 내려는 일종의 ‘전격전(blitz)’이 벌어지고 있다.”
웨스턴 로드에서는 이 싸움이 더 직접적으로 ‘기억’의 문장으로 번역되었다. 5천 명이 넘는 서명(온라인 청원)이 시의회 안으로 들어갔고, 청원을 시작한 주민 데이브 딜너(Dave Dillner)가 의회에서 나무를 “heroes”의 생애와 포개어 읽어내며 눈물을 삼킨 장면이 보도됐다. 그의 말은 과장된 수사가 아니라, 기념 가로수라는 형식이 원래부터 지닌 의미를 다시 호출한 것이었다.
“Those 23 trees were planted to commemorate the lives of 23 heroes cut down in their prime,”
“그 23그루는 한창때 삶이 꺾여버린 23명의 영웅을 기리기 위해 심어진 나무들이다.”
그가 이어 던진 질문은 회의장 바닥에 남아 오래 굴렀다.
“Are you seriously going to tell me … you’re going to vote to cut those trees down in their prime?”
“정말로, 그 나무들을 또 한 번 한창때 잘라내겠다고 표결하겠다는 말인가?”
결국 사람들을 거리로 나오게 한 것은 한 그루의 생존 여부가 아니라, “관심 없다”는 말이 공공 언어의 중심으로 올라온 순간이었다. 그 순간, 도시는 기억을 비용 항목으로 번역하는 방식을 스스로 승인했다. 나무는 그늘과 미세먼지 포집 같은 기능으로도 설명되지만, 웨스턴 로드의 플라타너스들(런던플레인 계열 포함)은 그보다 먼저 기념의 형식으로 존재했다. 그 기념을 “nonsense”로 밀어내는 말, 그 기념을 비용으로 환산해 “unaffordable”로 봉인하는 말, 그 기념을 계약 이행의 일정표로 바꾸는 말이 이어질 때, 시민들의 몸은 문장보다 빨리 반응했다. 그들은 회의장 앞에서 “shame!”을 외쳤고, 지역 언론은 그 외침을 ‘분노의 소음’으로 처리하지 못한 채 기록으로 남겼다.
거리는 결국 법정으로 이어졌다. 주민들은 사법심사(judicial review)를 신청했고, 벌목을 멈춰달라는 가처분을 요구했다. 이 싸움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절차의 문제라고 그들은 주장했다. 계약이 체결되기 전, 도시 전체 가로수에 대한 종합적 가치 평가가 있었는지, 대안적 공학적 조치가 충분히 검토되었는지, ‘제거는 최후의 수단’이라는 원칙이 실제로 지켜졌는지 묻고자 했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명확했다. 시는 1980년 고속도로법(Highways Act 1980)에 따라 도로를 “안전하게 유지할 의무(duty to maintain the highway)”를 지닌다. 고속도로 당국은 도로 구조물과 보행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권한을 가진다. 판결문은 행정 권한의 범위를 좁게 해석하지 않았다. 경관적 가치나 미학적 상징성, 심지어 생태적 편익은 판단의 중심에 놓이지 않았다. 법원은 별도의 계획 허가(planning permission)나 환경영향평가(environmental impact assessment)가 요구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항소 허가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반복된 문장은 “lawful”이라는 단어였다. 합법적이라는 말은 도덕적 정당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나 행정은 그 차이를 구분하지 않는다. 합법이라는 문장은 결정을 밀어붙이는 힘을 얻는다.
주민들은 다시 거리로 돌아갔다. 벌목 예정 나무 주변에 설치된 펜스 안으로 들어가 앉았고, 체인톱 소리가 들리기 전 몸으로 시간을 지연시키려 했다. 시는 이를 “trespass(불법 침입)”로 규정했고, 법원은 금지명령(injunction)을 내렸다. 그 명령은 2020년 1월까지 연장되었다. 판결문에서 문제는 질서 유지였다. 도로는 보호 대상이었고, 공공 안전은 우선적 가치로 분류되었다. 나무는 도로의 변수로 재정의되었다.
법은 보도를 보호했다.
기념의 맥락은 판결문 밖에 남았다.
이 지점이 중요하다. 행정 문서와 판결문은 거짓을 쓰지 않는다. 대신 범위를 정한다. 고려 대상이 무엇인지, 무엇이 핵심인지, 무엇이 부차적인지 문장으로 구획한다. 그 구획 안에 들어오지 못한 가치들은 삭제되지 않는다. 다만 판단의 바깥으로 밀려난다. 그렇게 합법은 기억을 침묵시킬 수 있다.
이 사태를 다룬 여러 연구와 보고서들은 공통된 질문을 던진다. 셰필드는 계약 체결 이전에 가로수 전체를 하나의 자산으로 평가했는가. 단순한 유지관리 대상이 아니라, 대기질 개선, 열섬 완화, 탄소 흡수, 부동산 가치 상승, 지역 공동체 결속, 역사적 기억이라는 복합적 외부효과를 포함한 총체적 가치 평가가 있었는가.
문서상으로는 ‘관리 전략’이 존재했다. 그러나 그 전략은 수목을 자산(asset)이라 부르면서도, 실제 계약 구조 안에서는 비용 항목으로 분류했다. 25년 장기 PFI 계약은 고정 수입과 성과 지표를 전제로 설계되었다. 일정 수준 이상의 교체 목표가 설정되면, 성목은 관리 비용이 높은 존재가 된다. 뿌리 확장으로 보도 보강이 필요하고, 수관 관리에 시간이 들며, 보험과 책임의 문제가 따라붙는다. 계약은 제거를 ‘예외’로 두지 않는다. 오히려 예측 가능한 선택지로 둔다.
이 구조를 두고 일부 평론가들은 “a Faustian pact(파우스트적 거래)”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단기적 기반시설 개선과 재정 안정성을 얻는 대신, 장기적 생태 자산과 도시의 시간성을 양도하는 계약이라는 뜻이다. 파우스트는 악마와 거래하며 즉각적 성취를 얻는다. 대가가 언제 청구될지 모른 채.
셰필드의 경우, 제거된 나무 수는 수천에 이르렀다. 계약상 최소 17,500그루 교체 목표가 설정된 구조 안에서, 2012년부터 2018년 사이 5천 그루가 넘는 나무가 사라졌다. 이 숫자는 단순한 집계가 아니라 설계의 결과다. 목표치는 계약 이행의 동력이 되고, 그 동력은 매해 일정한 속도로 작동한다. 숫자는 계획의 언어이고, 계획은 예산과 결합한다.
여기서 빠져 있었던 것은 ‘가치의 총합’이었다. 나무 한 그루의 비용은 계산되었으나, 그 나무가 50년 동안 제공하는 공기 정화 효과와 여름철 냉각 효과, 부동산 가치 상승 기여, 지역 정체성 형성, 전쟁 기념의 상징성은 별도의 항목으로 합산되지 않았다. 비용은 연간으로 계산되었고, 가치는 세대 단위로 존재했다. 시간의 스케일이 달랐다.
셰필드는 이 사실을 갈등을 통해 배웠다. 계약이 체결된 뒤에야, 도시가 잃고 있는 것이 단순한 수목이 아니라 ‘기억과 공공성의 층위’라는 점이 드러났다. 그 배움은 값비쌌다. 텐트, 체포, 법정, 금지명령, 분열된 여론이 그 비용이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교훈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 구조는 어느 도시에서도 반복될 수 있다. 장기 민관협력, 성과 지표, 안전 의무, 유지관리 효율이라는 단어들은 보편적이다. 합법은 언제나 준비되어 있다. 문제는 합법의 범위 안에 무엇을 포함시키는가에 달려 있다.
셰필드에서 빠져 있었던 것은 계산의 확장이었다. 나무를 도로의 부속물로 보지 않고, 도시의 생태 자산으로 재정의하는 문장. 그 문장이 계약 이전에 쓰였다면, 갈등의 양상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이 대목에서 글은 자연스럽게 한국으로 건너갈 수 있다. 우리는 아직 법정까지 가지 않았다. 그렇다면 질문은 간단하다. 계약이 먼저 쓰이기 전에, 어떤 문장을 먼저 써야 하는가.
왜 하필 플라타너스였을까. 런던플레인(Platanus × hispanica)은 산업 도시가 자기 몸에 가장 먼저 붙여본 ‘내구성의 그늘’이었다. 이 나무는 애초부터 ‘런던’이라는 이름을 달고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동양플라타너스(Platanus orientalis)와 서양플라타너스(Platanus occidentalis)가 가까운 곳에 심어진 뒤 17세기 무렵 교잡으로 형성된 잡종 계열로 알려져 왔고, 영국에서는 17세기부터 식재 기록이 등장하며 18세기 후반부터 런던 곳곳에 본격적으로 심기 시작했다. 그 뒤 19세기, 산업혁명이 도시의 공기를 바꾸자 런던플레인의 운명도 바뀌었다. 당시 도시의 대기는 석탄 연소가 만든 그을음과 연기, 분진으로 두꺼웠고 가로수는 그 공기를 정면에서 받아내야 했다. 그 환경에서 런던플레인은 “공해에 견딘다”는 식의 막연한 칭찬이 아니라, 도시가 원하는 몇 가지 조건을 동시에 충족하는 수종으로 평가되기 시작한다. 뿌리가 다소 거칠고 토양이 다져진 곳에서도 버티는 힘, 대기오염과 뿌리 압박(root compaction)에 대한 내성, 가지가 예고 없이 잘 부러지지 않는 비교적 안정적인 수형, 그리고 무엇보다 커다란 잎과 수관이 만들어내는 그늘이 그 조건이었다.
이 나무가 산업 도시에서 ‘성공한 가로수’로 불린 데에는 수피의 성질도 한몫했다. 런던플레인의 수피는 매년 불규칙한 판처럼 벗겨지며 얼룩무늬를 만든다. 그 벗겨짐은 미학적 특징이면서도 당시 도시의 오염 환경 속에서는 실용적 의미를 획득했다. 그을음이 잔뜩 들러붙은 껍질이 떨어져 나가고 새 표면이 드러나는 현상은, 도시인들에게 “스스로를 씻어내는 나무”처럼 읽혔다. 실제로 몇몇 수목 해설 자료들은 런던플레인이 인기를 얻은 이유 중 하나로 ‘그을음이 묻은 수피가 벗겨지는 성질’을 직접 언급한다. 이때부터 런던플레인은 18세기말에 시작된 식재가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대규모 도시 식재로 이어지며, 런던의 거리와 공원, 그 밖의 영국 도시들로 확산해 “도시의 표준 수종”에 가까운 지위를 얻었다는 설명이 여러 자연사·수목 자료에서 반복된다.
여기서 강건함은 곧바로 역설이 된다. 런던플레인은 크게 자라고 오래 살며, 넓은 뿌리와 거대한 수관을 만든다. 그 크기는 산업 도시가 원하는 ‘그늘’과 ‘내구성’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도시 인프라와의 마찰 가능성을 함께 키운다. 보도와 연석의 폭, 지하 매설물, 배수 체계, 도로 선형이 이미 정해진 도시에서는 나무가 자라는 만큼 충돌 지점도 커진다. 작은 교체수는 관리의 언어 안에서 다루기 쉽다. 반면 성목이 만들어내는 그늘의 공간은 숫자로는 대체가 어렵다. 런던플레인이 19세기 산업 도시의 공기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21세기의 계약과 유지관리 문서 속에서는 그 살아남음이 오히려 ‘관리 비용’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렇게 묻는다. 우리는 작은 나무가 많은 도시를 원하는가, 아니면 큰 나무가 적은 도시를 원하는가. 이 질문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가 시간을 어떻게 취급하는지의 문제다. 런던플레인의 수관은 몇 해 안에 만들어지지 않고, 그늘은 한 세대의 성장 속도를 요구하며, 그 시간을 감당할 언어와 제도가 도시에 있는지, 그 여부가 갈등을 만든다.
이 이야기는 영국의 산업 도시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낯설지 않다. 한국의 도시에서도 비슷한 장면은 반복되어 왔다. 보도블록 교체 공사가 시작되면 가로수가 함께 사라지고, 태풍이 지나간 뒤에는 ‘위험 수목 일괄 정비’라는 문장이 보도자료에 등장한다. 뿌리가 민원을 유발한다는 표현, 보행 안전을 저해한다는 판단, 수종을 교체해 미세먼지 저감 효과를 높이겠다는 계획이 연이어 발표된다. 나무는 언제나 ‘관리 대상’으로 먼저 분류된다.
실제로 서울과 수도권 일부 자치구의 보도자료에는 “보행자 안전 확보를 위한 노후 가로수 교체”, “뿌리 돌출로 인한 보도 파손 정비”, “민원 다발 구간 수목 정비” 같은 문장이 반복되어 왔다. 언론 기사에서는 플라타너스를 두고 “알레르기 유발 우려”, “꽃가루 민원 증가”, “도심 환경에 부적합한 수종”이라는 표현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몇 가지 전제가 빠져 있다. 플라타너스(Platanus × hispanica)의 꽃가루는 주로 봄철에 짧은 기간 비산하며, 국내에서 호흡기 알레르기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수종은 오히려 자작나무류(Betula), 참나무류(Quercus), 삼나무(Cryptomeria japonica) 등이다. 그럼에도 플라타너스의 종모(털 달린 수과)가 날리는 겨울 장면은 시각적으로 강렬하기 때문에, 불편함은 과학적 검증과 별개로 ‘문제’로 번역되기 쉽다. 불편은 통계가 아니라 체감으로 작동하고, 행정은 체감 민원을 숫자로 집계한다.
은행나무(Ginkgo biloba)의 열매 냄새는 민원의 상징처럼 다뤄진다. “악취로 인한 교체 요구”라는 기사 제목은 자주 보인다. 느티나무(Zelkova serrata)의 경우에는 “뿌리 융기로 인한 보도 파손”이 반복적으로 언급된다. 이때 나무는 구조물에 대한 잠재적 하자로 분류된다. 보행자 안전, 유지관리 비용, 사고 발생 건수 같은 지표가 판단의 중심으로 올라온다. 행정은 숫자로 움직인다. 교체율, 예산 절감액, 민원 처리 건수는 보고서의 성과 지표가 된다.
그러나 나무는 다른 시간으로 움직인다. 셰필드의 웨스턴 로드 가로수는 1919년에 심어졌다. 그 나무가 만든 그늘은 한 세기를 통과했다. 한국의 거리도 다르지 않다. 1970년대 도로 확장과 함께 심어진 플라타너스는 산업화 시기의 먼지를 받아냈고, 1990년대 신도시 조성과 함께 들어선 느티나무는 아파트 단지의 그늘을 만들었다. 은행나무는 간선도로를 따라 줄지어 서서 가을마다 노란빛으로 도시의 계절을 알렸다. 이 나무들은 단순한 조경 요소가 아니라 도시의 성장 과정과 함께 자란 생명체다.
그럼에도 “수종 갱신”, “도시 미관 개선”, “안전 확보”라는 문장은 시간의 층위를 압축한다. 성목을 제거하고 어린 묘목을 심는 행위는 기술적으로 합법이며 행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시간의 가치가 별도의 항목으로 계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40년, 50년 자란 수관이 제공하는 냉각 효과와 탄소 흡수량, 미세먼지 포집량, 보행 체감 온도 저감 효과는 숫자로 환산될 수 있지만, 실제 정책 결정에서 그 수치는 예산 항목만큼의 무게를 얻지 못한다.
플라타너스를 두고 “알레르기 유발 수종”이라는 낙인이 반복될 때, 우리는 과학적 근거가 무엇인지, 국내 꽃가루 통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질문해야 한다. 불편은 존재한다. 그러나 불편이 곧 제거의 근거가 될 때, 도시의 시간은 짧아진다. 큰 나무가 불편을 낳는다는 이유로 교체의 대상이 될 때, 도시는 점점 더 어린 수목으로 채워진다. 어린 나무는 안전하고 관리가 쉽다. 그러나 그늘은 얕고, 뿌리는 아직 토양을 단단히 붙들지 못한다.
우리는 이 시간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성목이 제공하는 공간을 비용으로만 계산할 것인가, 아니면 도시의 기억과 생태 자산으로 인정할 것인가. 셰필드의 논쟁은 먼 나라의 사건이 아니라, 이미 한국의 거리에서 반복되는 질문을 먼저 겪은 사례에 가깝다. 계약이 먼저 쓰이고 난 뒤 싸움을 시작하는 방식 대신, 계약이 쓰이기 전에 가치의 문장을 먼저 쓰는 방법이 있다. 그 문장이 준비되어 있을 때, 우리는 같은 갈등을 다른 방향으로 풀 수 있다.
1부에서 우리는 플라타너스의 공을 보았다. 수십, 수백 개의 수과가 모여 하나의 집합을 이루고, 겨울의 건조와 동결–해빙을 통과하며 서서히 분리되는 구조를 따라가며, 집합이 해체되는 방식이 곧 생존의 전략임을 확인했다. 그 공은 단일한 씨앗이 아니라 여러 개의 가능성을 한 덩어리 안에 묶어 두었다가, 계절이 바뀌는 순간을 기다려 흩어지는 구조였다.
셰필드의 저항 역시 집합으로 움직였다. STAG(Sheffield Tree Action Groups)는 하나의 중앙 조직이라기보다 동네 단위의 커뮤니티들이 느슨하게 연결된 연대체였고, 수천 명의 시민이 서명과 집회, 점거와 법정 대응을 통해 서로의 문장을 보강했다. Endcliffe Park의 천막은 상징을 넘어 생활이 되었고, 안전구역 안에 들어가 앉은 몸들은 계약서의 문장에 균열을 냈다. 2018년 이후 대규모 벌목 프로그램은 중단되었고, 전략은 수정되었으며, 2021년에는 시민과 시, 사업자가 함께 참여하는 공동 파트너십 전략이 체결되었다. 갈등은 비용을 남겼지만, 동시에 도시 거버넌스의 구조를 바꾸었다.
플라타너스의 공이 집합의 전략이라면, 셰필드의 저항도 그러했다. 나무를 개별 하자로 분류해 흩어내려는 행정의 언어 앞에서, 시민들은 개별 민원을 넘어 집합으로 응답했다. 도시는 나무를 분해하려 했고, 사람들은 다시 모였다. 흩어짐과 모임이 교차하는 그 지점에서, 계약의 문장은 수정되었다.
셰필드의 논쟁은 단지 벌목 찬반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무엇을 제거하려 하는지 묻는다. 보도를 밀어 올린 뿌리인가, 아니면 그 뿌리와 함께 자라온 시간의 층위인가. 유지관리 비용의 증가분인가, 아니면 그 비용과 맞물려 축적된 공공 자산의 가치인가. 합법적 권한인가, 아니면 그 권한이 포괄하지 못한 기억의 영역인가.
이 질문은 영국 산업 도시에만 유효하지 않다. 한국의 거리에서도, 보도 정비와 수종 갱신, 안전 확보라는 이름 아래 비슷한 문장들이 쓰이고 있다. 합법은 쉽게 확보되고, 예산은 수치로 정리된다. 그러나 도시의 시간은 수치와 다른 속도로 흐른다. 성목의 수관은 한 세대의 여름을 건너며 형성되고, 그늘은 반복되는 계절 속에서 축적된다. 계약은 연 단위로 평가되지만, 나무는 수십 년의 단위로 응답한다.
셰필드는 하나의 우화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우화는 미래를 예고하는 비극이 아니라, 선택의 가능성을 드러내는 사례다. 갈등은 법정까지 갔고, 금지명령이 내려졌으며, 체포가 이루어졌다. 그 뒤에야 협의 구조가 만들어졌다. 우리는 같은 과정을 반복할 필요가 없다. 계약이 먼저 쓰이고 난 뒤에야 가치를 회복하는 방식 대신, 계약이 쓰이기 전에 가치를 명시하는 방식이 가능하다. 가로수를 유지관리 항목이 아니라 자연 자산으로 정의하는 문장, 비용 항목에 시간의 가치를 포함시키는 평가 방식, 제거를 최후의 수단으로 제한하는 제도적 장치가 먼저 마련될 수 있다.
플라타너스는 공을 흩날리는 나무다. 그 공은 겨울을 통과하며 집합을 해체하고, 바람을 타고 흩어져 다시 만날 가능성을 남긴다. 도시에서는 그 나무가 사람을 모으는 존재가 되었다. 분산과 집합, 제거와 보존, 계약과 기억이 한 나무의 수관 아래에서 교차했다.
겨울 가지 끝에 매달린 공을 다시 본다. 그것은 단순한 번식 기관이 아니라, 분리와 재결합의 방식을 품은 구조이며, 시간의 압축이다. 셰필드의 몇몇 나무들은 결국 베어졌다. 그러나 그 사건은 도시가 나무를 다루는 방식에 질문을 남겼고, 그 질문은 제도와 전략의 문장을 바꾸었다. 모든 것을 지켜내지 못했지만,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지나가지는 않았다.
한국의 도시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가로수는 관리 항목인가, 자연 자산인가, 아니면 살아 있는 공공 기억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한 번의 집회로 완성되지 않고, 한 번의 계약으로도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도시가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대한 장기적인 선택이다.
플라타너스의 공은 겨울을 건넌다. 흩어질 준비를 하며 매달려 있다가, 바람이 불면 풀린다. 도시는 그 아래를 지나간다. 어떤 도시는 그 공을 불편으로 읽고, 어떤 도시는 그것을 시간의 흔적으로 읽는다. 셰필드가 남긴 것은 승리의 서사가 아니라 질문의 구조다. 우리는 무엇을 제거하려 하는가, 그리고 무엇을 남기려 하는가. 그 선택이 도시의 다음 세기를 결정한다.
런던플레인(Platanus × hispanica): 동양플라타너스와 서양플라타너스의 교잡 계열로 알려진 대표적 도시 가로수, 영국 도심 식재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플라타너스(Platanus): 플라타너스속(屬) 나무들의 총칭, 유럽·북미 계통과 잡종 계열이 도시 식재에 널리 쓰인다.
동양플라타너스(Platanus orientalis): 동지중해·서아시아 쪽이 원산으로 알려진 플라타너스 종.
서양플라타너스(Platanus occidentalis): 북아메리카 동부가 원산으로 알려진 플라타너스 종.
사우스요크셔(South Yorkshire): 잉글랜드 북부의 광역 행정 구역, 셰필드는 이 지역의 대표 도시다.
셰필드(Sheffield): 잉글랜드 북부의 산업 도시로 철강 산업과 도시 재생의 역사 속에서 가로수 논쟁이 커졌다.
웨스턴 로드(Western Road): 셰필드의 주요 도로 구간 중 하나로, 전쟁 기념 가로수 논쟁이 집중된 장소로 언급된다.
스트리츠 어헤드(Streets Ahead): 셰필드의 도로·보도·가로수 유지관리를 묶어 추진한 장기 정비 사업(프로그램) 명칭.
민관협력(PFI, Private Finance Initiative): 공공 인프라를 민간 자본·운영과 묶어 장기 계약으로 추진하는 방식(영국에서 대표적으로 사용).
STAG(Sheffield Tree Action Groups): 셰필드 가로수 벌목에 반대하며 결성된 시민 행동 네트워크/연대체의 총칭.
6Ds(6Ds): 위험·고사·질병·고사 진행·시설 손상·차별(접근성 저해) 등 제거 판단에 쓰인 분류 기준 약칭.
댄저러스(Dangerous): 위험 수목으로 분류되는 상태.
데드(Dead): 고사(枯死)한 상태.
디지즈드(Diseased): 병해가 확인된 상태.
다잉(Dying): 고사 진행 단계로 해석되는 상태.
대미징(Damaging): 보도·시설물 손상 유발로 해석되는 상태.
디스크리미너토리(Discriminatory): 보행 접근성·이동권을 침해하는 장애물로 해석되는 상태.
사법심사(judicial review): 행정 결정의 절차·합법성을 법원이 심사하는 절차(영국 공법에서 핵심 수단).
가처분(interim relief / injunction 관련): 본안 판단 전 잠정적으로 집행을 멈추거나 금지해달라는 신청.
금지명령(injunction): 특정 행위(점거·방해 등)를 하지 말라는 법원의 명령.
불법 침입(trespass): 소유·관리권이 있는 영역에 무단으로 들어가는 행위로 규정되는 개념.
고속도로법(Highways Act 1980): 영국에서 도로 유지·안전과 관련된 지방 당국의 의무와 권한을 규정한 법.
연석(kerb): 차도와 보도를 경계 짓는 턱 구조물.
계획 허가(planning permission): 개발·변경 행위에 대해 계획 체계 안에서 받는 허가 절차.
환경영향평가(EIA, environmental impact assessment): 사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평가하는 제도.
공학적 해결책(engineering solutions): 수목을 보존하기 위한 포장·연석·구조 개선 등의 기술적 대안들을 가리키는 표현.
뿌리 압박(root compaction): 토양 다짐과 압축 등으로 뿌리 생육 공간이 줄어드는 현상(도시 가로수 스트레스 요인).
시카모어(sycamore): 영국에서 흔히 단풍나무류를 지칭할 때 쓰는 통칭(문맥에 따라 특정 종을 의미).
자연 자산(natural asset): 나무·토양·물 등 자연 요소가 제공하는 편익을 자산으로 보고 평가·관리하려는 정책 개념.
외부효과(externality): 비용·편익이 시장 가격에 반영되지 않은 채 사회 전체로 퍼지는 효과(그늘, 냉각, 건강, 경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