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성관계에는 일종의 비위(脾胃)가 있습니다. 몸으로 하는 활동이라 사람마다 격차가 심하지요. 저는 생선젓이나 조개젓 같이 말캉말캉하고 비린 음식은 못 먹는데, 치즈는 블루치즈든, 고린내가 나는 치즈든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입니다. 저와 정 반대의 취향을 가진 사람도 분명히 있겠지요. ‘비위'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어떤 음식을 소화하는 능력뿐 아니라, 호불호에 대한 성미나, 음식에 동하는 마음도 일컫습니다. 성관계에 딱 맞는 표현이죠.
넷플릭스 드라마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는 성에 비위가 약한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현실적인 성교육이 미성년의 성행위를 부추긴다고 믿거나, 자위는 건강에 해롭다, 남자든 여자든 혼전순결을 지켜야 한다고 믿는 분이라면, 1 시즌 첫 에피소드의 첫 장면부터 걸러 버릴 가능성이 큽니다. 특정한 도덕관념 때문이 아니라, 그냥 보기가 부담스럽다고 느끼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비위가 약한 거지,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닙니다.
저는 이 시리즈의 광팬입니다. 제일 좋아하는 치킨집, 동네에서 가장 고소한 피자 가게에서 점심, 저녁 시켜 먹으며 지난달 개봉한 3 시즌을 남편과 정주행 했습니다. 시리즈의 기본 이야기는 간단합니다. 섹스 테라피스트를 부모로 둔 영국의 한 고등학생이 성관계로 고민하는 친구들을 위해 학교에 비밀 성 삼담 소를 연다는 내용이지요. 영어 원제목도 단순하고, 깔끔하게 ‘성교육'입니다. 한 에피소드에 한 명씩, 오티스가 차근차근 성 상담을 계속하면서,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학교의 전반적인 문화도 점점 섹스 포지티브(sex-positive)로 변화합니다. 유사 업종인 관계 코칭에 종사하는 저로서는 열광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지요.
섹스 포지티브가 뭐냐고요? 서양에서 섹스 포지티브 운동이 워낙 넓고, 다양하게 전개되어 사람마다 정의하는 방식이 다르지만, 저는 대략 세 가지 특징을 꼽습니다. 먼저, 충만한 삶을 실현하기 위해 행복한 성생활은 꼭 필요한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두 번째로 성적 정체성, 성적 성향, 몸을 다루는 방식, 관계 유형(일부일처제 또는 다자 연애) 등 성생활에 관련된 모든 선택권은 개인에게 있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당신의 몸, 당신의 성생활은 온전히 당신의 선택에 달린 영역이지, 다른 사람이나 사회가 마음대로 재단하고 간섭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거죠. 자신이 바라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선택하고, 실수하고, 실수에서 배우면서 행복한 삶을 꾸리기 위한 개인적 역량을 길러갑니다. 마지막으로 성을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로 여겨,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점입니다. 성을 둘러싼 수치심이나 죄책감을 조장하는 문화와 대조되는 부분입니다.
그럼 섹스 네거티브(sex-negative)는 뭘까요? 성을 문제로, 또는 위험한 것으로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금욕을 골자로 하는 성교육이 그렇죠. 짧게 다루긴 하지만, 시즌 3 네 번째 에피소드에서 이런 섹스 네거티브 성교육에 주인공들이 반박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담당 강사가 험학한 표정으로 여학생들에게 말합니다. ‘섹스가 니들 인생을 망칠 거다.’ 청소년들이 자연스럽게 느끼는 성욕을 잘못된 것으로 못 박아버리는 순간입니다.
이때, 시리즈의 여자 주인공 메이브가 놓치지 않고 반박합니다. 성은 재미있고, 아름다운 것, 자기 자신과 몸에 대해 배우는 학습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이죠. 선생님들이 할 일은 수치심을 조장하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 안전한 성생활을 할 수 있도록 가르쳐주는 것이라 주장합니다. 다른 장면에서는 섹스 테라피스트인 오티스 엄마의 입을 빌어 한 연구를 인용합니다. 금욕과 절제 중심의 성교육을 실행한 지역의 십 대 임신과 출산율이 다른 성교육 커리큘럼을 사용한 지역보다 오히려 높다는 연구 결과입니다.(Kathrin F. Stanger-Hall, David W. Hall, 2011)
여기서 수치심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보죠. 수치심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느끼는 부끄러움이나, 인간으로서 자신의 한계를 자각했을 때 느끼는 겸허함과는 다른 감정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수치심 연구가 브르네 브라운(Brené Brown)은 ‘난 뭔가 잘못됐어'라는 내적 믿음이 수치심을 불러일으킨다고 지적합니다. 죄책감이 ‘내가 뭔가 잘못했어'라는 행동에 관한 감정이라면, 수치심은 나라는 존재 자체에 느끼는 감정으로 ‘난 사랑받을 자격이 없어', ‘난 성공할 만큼 자질이 없어', ‘내가 뭐라고 그렇게 좋은 걸 누리겠어' 등의 생각을 수반하지요. 우리가 뭔가 가슴 뛰는 일, 비범하면서도 가장 나 다운 일을 하고자 할 때, 항상 우리의 발목을 잡는 건 수치심입니다. 그녀에 따르면 수치심은 비밀, 침묵, 판단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맞아떨어질 때, 마치 병균처럼 증폭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수치심의 가장 큰 폐해는 고립과 단절입니다. 수치심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내보이길 꺼려하지요. 자신이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사람이 타인에게 스스로를 드러내기 꺼려하는 건 너무 당연한 반응일 겁니다. 이런 단절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나타나기 전에 자기 안에서 먼저 진행됩니다. 몸에서 느껴지는 감각, 몸이 보내는 욕구를 나쁜 것으로 단정하고 부인할 때, 몸과 마음 사이에 어떤 괴리가 생기지요. 나 자신의 한 부분을 나쁜 것으로 규정하면, 우리의 마음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내적인 단절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단절이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습니다. 이런 종류의 내적 긴장과 갈등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격화됩니다.
릴리는 이 시리즈에서 가장 엉뚱하고 괴짜스러운 캐릭터입니다. 일반인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상상력을 가진 그녀는 외계인을 주인공으로 우주에서 펼쳐지는 스페이스 에로티카를 씁니다. 아직 스스로를 알아가는 고등학생이긴 하지만, 릴리는 자신만의 분명한 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즌 3에서 그녀는 큰 시련을 겪습니다. 자기가 쓴 에로티카를 지방 신문에 기고했다가,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학교 교장 선생님에게 모욕을 당하지요. ‘더럽고 역겨운 글을 써 학우들에게 수치를 안겼습니다.’ 교장 선생님이 릴리가 소리 내어 읽도록 한, 그리고 목에 걸고 다니도록 한 팻말입니다. 드라마를 보지 않고, 읽기만 해도 마음속 무언가 소리 없이 시드는 느낌이 들지요. 이후 릴리는 마음의 문을 닫고, 외계인과 관련된 자기 물건을 모두 정리해버립니다. 드라마에서는 다행히 몇 에피소드 만에 다시 마음을 열지만, 현실에서 수치심은 이보다 훨씬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되며 사람들을 괴롭힙니다.
역설적이게도, 시리즈에서 지체부자유를 겪고 있는 아이작은 전혀 수치심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손의 움직임도 자유롭지 못해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캐릭터이지만, 남다른 관찰력과 지성으로 여자의 마음을 훔치지요. 아이작의 스킨십 장면은 전체 시리즈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입니다. 일반인들처럼 몸의 전체를 느끼지는 못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파트너와 몸의 감각에 대해 더욱 긴밀하게 소통합니다. ‘여기의 느낌은 어때?’, ‘그렇다면 여기는?’, ‘어디를 만지는 게 좋아?’ 등등의 솔직한 의사소통은 만약 아이작이 자신의 몸이나, 몸의 장애에 대해 수치심에 사로잡혀 있었다면 하기 어려운 대화입니다. 장애가 있는 몸을 거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파트너도 편안한 마음가짐으로 아이작을 대하게 되지요.
‘내가 나 자신에 대해 받아들인 어떤 것도, 나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나를 폄하하는 데 쓰일 수 없다.’ 흑인 레즈비언 시인 오드리 로드(Audre Lorde)가 남긴 말입니다. 자신의 성과 몸을 온전히 받아들였을 때, 타인의 어떤 편견이나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을 힘이 생깁니다.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는 고등학생들이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성장 과정을 현실적이고, 사랑스럽게 그려낸 명작입니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