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조르주 심농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재미를 위해서 읽는 책 중에는 추리소설만 한 것이 없는 거 같습니다. 어머니가 좋아했던 시드니 샐던의 작품을 시작으로 셜록홈스와 르팽을 거쳐 매그레 형사에 이르기까지 고전 탐정물이나 추리소설들에 쉽게 매료되었습니다. 특히나 소파에 기대어 커피나 맥주를 시리즈 중에 아무거나 갖다 놓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심농의 책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훅 읽게 됩니다. 제가 생각하는 매그레의 이미지는 두툼한 베이지색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문 채 쉴 새 없이 맥주를 마시는 남자입니다. 키 180센티에 몸무게 110kg의 거구가 사건을 풀어가는데 책들은 단순히 범인을 밝혀내는데 그치지 않고 사건 이면의 숨은 진실과 인물들의 심리를 파헤칩니다. 때로는 범인을 따뜻하게 대하는 인간적 면모의 형사를 표현해서 그런지 더 마음이 갑니다.
심농이 만들어낸 섬세한 심리를 터치하며 범죄 아래 깔린 인간의 삶을 그리는 그의 책들은 장르문학에 인색한 프랑스 문학계에서도 호평을 받아왔습니다. 알베르 카뮈와 존 밴빌은 심농으로부터 직접적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을 하기도 했고,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소설가라며 찬사를 보냈으며 헤밍웨이는 무인도에 가게 된다면 심농의 책을 가져간다고 할 정도로 작가들의 작가로 자리매김을 하였습니다.
제가 심농을 좋아하는 데는 그의 문체에 있습니다. 프랑스어에는 반과거와 단순 과거 형태 동사들과 부사 같은 어려운 수식어들이 많은데 그는 이것의 사용에 인색합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질료로서의 말”을 위하여 말을 위한 말의 부재가 강력하고도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심농의 언어는 당시 반 문어체라고 어리석다고 평가되었지만 어린아이들도 자신의 책을 읽으며 상상력이 극대화되기를 바라 불필요한 설명을 따로 하지 않았습니다. 서로 다르게 이름을 쓰고 출간을 했어도 그의 모든 작품을 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로 편안하면서 그만의 언어가 있었고 글 안에는 순수함과 타인에 대한 존중이 늘 있었습니다.
P : 게다가 어디서든 떡하니 버티고 서는 것만으로도 동료들까지 위축시키곤 하는 자기만의 독특한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그건 담대함 이상의 무엇이되, 오만함과는 다른 종류의 분위기였다. 하나의 바윗덩어리처럼 일단 그가 모습을 드러내면,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 나가든, 다리를 적당히 벌린 채 우뚝 서 있든, 그 순간부터 모든 것이 그 앞에 산산조각 부서져야 마땅할 것 같았다. 파이프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꽉 다문 턱 속에 단단히 박혀 있었다. 장소가 마제스틱 호텔이라고 그걸 입에서 뺄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심농의 책들은 57개 국어로 번역, 40개국에서 출판되어 세계적으로 7억 부 이상 판매되었습니다. 25개의 필명으로 400편의 소설을 썼고 그중 100편 이상은 미싱사나 젊은 판매원 아가씨들을 위해 썼습니다. 산술적으로 계산을 해보면 해마다 11편의 작품을 쓴 그는 정통적인 작품으로 76편의 경찰 소설(매그레 포함)과 국내에 아직 번역되지 않은 <숙명>이라고 불리는 시리즈 117편이 있습니다. 200개의 담배 파이프와 매일 보르도 포도주 두 병을 비운 대중의 아들이자 시간을 초월한 메그레의 아버지로 불린 그는 말년까지 글을 쓰다 세상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