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티르소 데 몰리나
돈 후안이라는 인물, 캐릭터가 참으로 궁금했습니다. 모차르트는 <돈 조반니>에서 돈 후안을 무신론자로, 바이런은 도피자로, 푸시킨은 사랑에 빠진 인간으로, 버나드 쇼는 여성 혐오자로 그렸기 때문입니다. 한 인물에 대한 평가가 이렇게 다르게 표현되고, 어디서 들어본 돈 후안은 천벌 받아 마땅한 난봉꾼으로 시작해 시대의 구속을 거부하는 반항아로 변신하며 불멸의 신화가 되었는지 신기했습니다.
실존 인물인 카사노바와 달리 돈 후안은 가공의 인물인데 화술이 뛰어나고 멋을 아는 귀족으로 여자를 유혹하는데 더할 나위 없이 탁월한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가 사랑을 나눈 여자는 나폴리의 공작부인에서부터 스페인 바닷가 마을의 젊은 어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그야말로 국적과 신분 고하를 가리지 않았으나 그는 자신이 만나는 여성을 결코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가 목표로 하는 것은 정복일 뿐입니다. 그에게 가장 큰 기쁨은 한 여인을 우롱하여 명예를 빼앗고 그녀를 버리는 일이며, 이를 위해 하인에게 미리 도망갈 때 쓸 말을 준비시켜 놓을 정도로 치밀하게 행동합니다. 그에게 우롱당한 여성들이 이를 갈며 복수를 다짐하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연극의 초 중반은 그가 여성들에게 난봉을 피우는 장면들로 이루어졌습니다. 옥타비오 공작의 약혼녀인 이사벨라를 농락한 후 이별하는 장면으로 연극은 시작됩니다. 스페인으로 도주한 후에도 악행을 반복하는데 타고 가던 배가 난파하여 그는 어느 바닷가에 기절한 채 파도에 떠밀려 와 죽다 살아난 그 순간에도 그는 아리따운 젊은 어부 티스베아를 범합니다. 세비야로 가서는 교묘한 속임수를 써 옛 친구 라모타 후작의 여자 친구를 정복하려고 하는데, 이때에는 여성 편력 정도가 아니라 그 이상의 흉악 범죄까지 저지르고 맙니다. 여자의 비명을 듣고 달려온 그녀의 아버지 돈 곤살로를 칼로 찔러 살해하고, 게다가 뒤늦게 나타난 친구에게 살인죄를 뒤집어 씌우기까지 합니다.
극의 종반부는 그가 신의 처벌을 받는 과정입니다. 그는 예전에 그가 칼로 죽인 돈 곤살로의 무덤 옆을 지나게 되었는데, 거기에 돈 곤살로의 석상이 서 있고 그 비문에 “여기 가장 충성스러운 기사가 어느 배신자를 향한 신의 복수를 기다리고 있다”라고 새겨진 것을 보게 됩니다. 석상의 수염을 잡아당기면서 조롱하고 석상에게 저녁 식사에 오라고 초대하고 실제로 석상이 찾아오고 말았습니다. 다음날 저녁에는 자기가 식사에 초대하겠다고 제안하는데, 돈 후안은 공포에 떨면서도 명예를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는 스페인 기사답게 용감하게 이를 수락합니다. 다음날 찾아온 돈 후안에게 돈 곤살로의 석상은 악수를 청하는데, 석상의 손을 잡자 돈 후안의 몸에 불이 붙습니다. 그는 회개할 시간을 달라고 요청하지만 석상은 이를 거부하고 결국 돈 후안은 지옥으로 떨어지고 평생 남을 속인 자가 최후에 석상에 속임을 당하고 극은 끝이 납니다.
P : 지옥 같은 바다에서 나와 당신의 맑은 하늘로 나왔습니다. 바다에서 죽을 뻔한 목숨, 오늘부터는 사랑으로 죽을 것입니다. 이렇게 달콤한 아픔을 당신으로 인해 알게 되었으니 사랑의 아픔에서 도망갈 수 있도록 저를 바다로 돌아가게 해 주세요. 저는 물에 젖어 왔으나 불이 붙었으니 그건 당신의 불 때문이었습니다.
P : 법을 어기는 자는 인간 스스로 징계를 나서지 않으면 하나님이 가만두시지 않는 법이지요.
석상은 신의 대리인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세상의 질서가 어지럽혀져 있고, 사랑은 다만 거짓된 말장난과 욕정으로 타락해 있지만 이 세상의 왕들은 그것을 바로잡을 힘이 없습니다. 최후에 질서를 복구하는 것은 오직 신의 힘뿐이라는 것이 신부인 저자의 메시지입니다. 이 작품은 당시 타락한 사회에 대한 종교적 경고의 의미를 띠고 있는데 사람들이 저자의 원래 의도를 그대로 따르지는 않았습니다. 이 연극이 나오고 실제 돈 후안은 신의 뜻에 도전하면서까지 자신의 욕망과 자유를 옹호하는 서구 개인주의의 영웅으로 받아들여지기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