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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무 Dec 08. 2023

양을 쫓는 모험

by 무라카미 하루키

중학교 때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하던 저는 어머니의 책장에서 지금 읽으면 안 된다는 <상실의 시대>를 꺼냈습니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시간, 하루키와의 첫 만남은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와 전개, 어두운 분위기로만 여겨지던 책은 묘하게 끌렸기에, 다시 한번 더 읽게 되었고, 작가의 인터뷰를 찾아보며 비틀즈의 <노르웨이 숲>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해할 수 없었던 탓인지 기분은 영 좋지 않은 느낌으로 하루키라는 작가가 저에게 다가왔기에 두 번 다시는 그의 책을 읽지 않겠거니 생각했지만 미래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 좋아하던 친구의 어필로 하루키를 다시 만나게 되었고 같은 책을 중간에 펼쳐 보니 재미없었던 지난 과거와 달리 고개를 끄덕이며 그대로 서점에 앉아 읽게 되었습니다. 한 권씩 읽기로 마음을 먹었고 그날 사기로 한 책을 다음으로 기약하며 그의 데뷔작인 이 책을 구입했습니다. 이런 작가였구나 라는 감동을 받아 일 년을 하루키에 매달렸던 기억이 납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양을 쫓는 모험담입니다.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는 이유로 부인과 이혼을 한 주인공은 그 뒤 귀가 예쁜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던 중 어느 검은 양복 입은 남자로부터 양을 찾으라는 명령 아닌 명령을 받게 됩니다. 그는 양이 무엇인지 제대로 설명을 받지 못하지만 , 강압적인 검은 양복 입은 남자로 인해 마지못해 그가 말하는 양을 찾아 여자 친구와 떠나게 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양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는 친구 네즈미(쥐)가 있는 목장을 찾아냅니다. 그곳에 도착한 날 여자 친구는 떠나고 그곳에서 지내고 있는 양사나이를 만나게 되고 그 후 양을 품고 자살한 네즈미를 만나게 되고, 양의 정체 또한 깨닫게 된다는 비교적 간단하고 황당한 이야기입니다.



P : 그때 나는 스물두 살을 몇 주일 앞둔 스물한 살이었다. 당분간 대학을 졸업할 가망은 없고, 그렇다고 해서 대학을 그만둘만한 확실한 이유도 없을 때였다. 기묘하게 서로 얽혀 있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나는 몇 달 동안이나 새로운 한 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있었다.


P : 온 세상은 끊임없이 움직이는데, 나만이 같은 곳에 머물러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1970년 가을에는 눈에 비치는 모든 것이 서글펐고, 그리고 모든 것이 빠르게 바래가는 것만 같았다. 태양의 햇살과 풀 냄새, 그리고 작은 빗소리조차도 나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20대의 불안정함을 겪을 때 읽었던 책이라 20년 전에 줄 쳐 놓은 이 문장들이 와닿았습니다. 수능을 마치고 대학으로 와서 처음으로 자유로운 삶에 내던져지던 그때 하루의 일상은 물론이거니와 지금으로부터의 삶을 책임져야 하는 때가 온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던 거 같습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부터 오는 불안은 일시적으로 무기력하게 만들고,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초조해진 저의 모습이 주인공과 너무나 닮아 있던 거 같습니다.


조금 긴 시를 읽은 듯한 기분이 들었던 이 이야기 안에는 20대의 저의 인생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양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나, 양을 원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양이라는 욕망을 검은 양복 사내의 강압이라는 주어진 명분으로 양을 쫓게 됩니다. 결국 양복 입은 사내는 제 안에 있는 욕망이었고 그러한 삶을 살고 싶지 않지만, 사회라는 것이 나를 내몰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게 너무나 당연했기에 자신을 희생시키더라도 그런 순수함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양사나이처럼 시류에 따라가지 않아 도태되고 우스꽝스럽고 모자라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새벽에 만나는 신인 하루키의 글에서 양의 힘을 쫓는 검은 양복의 사나이가 될지 양을 품으며 순수함을 지키고자 하는 네즈미가 될 것인지 생각했습니다. 어떤 쪽을 선택하든 그럴싸한 변명을 내세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의자 만드는 장인이 아무도 보지 않는 밑바닥을 정성스레 다듬는 것을 좋아하기에 지금은 네즈미처럼 살 것을 선택할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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