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토니 모리슨
한 번은 지인의 장례식장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참담한 기분으로 그 자리에 있었는데 한쪽에서는 소리 내어 우는 사람보다는 이상하게 밖에서 홀로 나무에 기대어 눈물만 훔치는 사람의 모습이 더 생생하게 각인되었습니다. 최대한 감정을 숨기고 혼자 조용히 어깨 들썩임조차 자제하려 했던 그 모습이 저에게는 절절해 보이지는 않지만 그 모든 슬픔을 다 느낄 수 있었던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토니 모리슨의 두 번째 책인 이 작품이 그런 감정과 같았습니다. 흑인 공동체의 처연함을 보여주는데 절절하지 않게 담아내는데 그래서 오히려 더 슬프고 감정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흑인들의 상처, 모성애, 우정, 가족 등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이 책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1919년부터 1965년까지 연도별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책의 첫 부분에 소개된 바텀 마을은 메달리온 지역에서 흑인들이 살던 곳으로 의미는 밑바닥이지만 실제로는 언덕 위 꼭대기에 있는 마을입니다. 백인들이 열심히 일한 흑인에게 자유와 땅을 주기로 했었지만 좋은 땅을 주기 싫어 언덕 위 땅을 주며 하늘에서 보면 저기도 바닥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초반에 등장하는 새드릭이라는 인물도 흑인들의 현실을 잘 보여줍니다. 그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다가 부상을 당하고 바텀 마을로 돌아오지만 그는 삶이 너무 괴로워서 하루 자살할 수 있는 날 "전국 자살일"을 정하고 행진을 합니다. 전쟁의 후유증으로 힘들어하는 그가 살아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고 역설적이게도 나머지 날들은 자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나타냅니다. 모두들 가난하고 삶을 살아내기 힘든 흑인들의 눈에 그는 품어주어야 할 이웃이기도 하지만 자신들도 늘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힘들었기에 그가 정한 "전국 자살일"을 인정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바텀 마을에 살고 있던 흑인 소녀인 술라와 넬을 통해 두 개의 상반된 세계관을 보여줍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탐구하며 살고 사회의 규범을 잘 따르려는 넬과 사회의 보통 사람들과 다르게 자신의 본능에 충실하게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려고 하는 술라의 모습을 대비시켜 보여줍니다. 어렸을 적 단짝이었던 둘은 언제나 함께였지만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이 너무도 달랐습니다. 넬의 엄마 헬렌은 집안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넬에게 남편 주드를 위해 헌신하라고 말해주는 가부장적인 엄마였습니다. 반면 술라의 집에는 싱크대에 항상 설거지거리가 쌓여있고 엄마 한나는 이 사람 저 사람과 잠자리를 하는 그저 본능대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넬이 사랑하지도 않는 주드와 가정이라는 것을 이루기 위해 결혼하자 술라는 마을을 떠나 버리고 10년 뒤에 돌아옵니다. 그녀는 다시 마을로 돌아와서 할머니인 에바를 요양원에 보내고 넬의 남편 주드와 잠자리를 합니다. 그녀는 마을의 악으로 자리 잡습니다. 넬은 자신의 남편과 잠자리를 한 술라를 용서하지 못하고 남편 주드도 떠나버립니다. 술라는 여러 남자를 만나다 그중 한 명과 사랑을 느지만 오래가지 못합니다. 얼마 후 술라가 아파서 넬이 찾아와서 왜 자신의 남편과 잤냐고 물어보는데 술라는 우리는 어렸을 적 모든 것을 공유하지 않았었냐 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녀는 다시는 술라를 만나러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후 술라는 죽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넬은 술라의 할머니 에바를 찾아갑니다. 에바는 치킨 리틀이라는 아이가 죽을 때 너도 바라보고만 있었다고 너는 술라와 똑같다고 이야기합니다. 그제야 그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넬은 자기 안에 그 아이가 죽을 때 뭔가 쾌감 같은 걸 느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립니다. 넬 안에도 술라와 같이 본성에 가깝게 살고자 하는 또 다른 모습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P : 우리 쪽에서 보면 높은 곳이지만, 하나님이 내려다볼 때는 바닥이지.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부른단다. 천국의 바닥(bottom)-최고의 땅이라고 말이야." 주인은 대답했다.
대부분 우리는 넬과 같은 모습으로 살고 있지만 내면 어딘가에는 술라같이 살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보지 않은 그 길과 시간들을 그리워하며 미치도록 보고 싶어 하는지도 모릅니다. 마지막 장면에 넬이 술라를 애타게 그리워하는 모습은 친구를 그리워하는 장면일 수도 있지만 그녀가 허무하게 흘려보낸 시간 속에 잃어버린 자신의 소녀의 모습을 그리워하는 거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