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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현재학 Oct 21. 2021

[좋은 사람] 자기 확신에 대한 경고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그 확신, 그 어설픔에 대하여

얘들아, 내가 몇 번 이야기하지만, 사람들 다 잘못하고 실수하고 살아.
근데 중요한 건 자기가 잘못한 거 인정하고 되돌리는 거야.
그 용기만 있으면 좋은 사람 될 수 있다고.



이렇게 이야기하는 선생님은 어떤 사람일까? 사람은 저마다 좋은 사람이 어떤 사람일지에 대한 생각을 갖고 산다. 그 좋은 사람은 내가 도달하고 싶은 어떤 경지에 있는 사람일 테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사람에 대한 가르침은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일 수도 있다. 자신을 향해 가는지도 모르는 자기 독백.


반성과 되돌리기. 이것을 아이들에게 몇 번씩이나 강조하고 있는 선생님. 이 선생님은 무언가를 되돌리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닐까. 그렇다면 좋은 담임 선생님처럼 이렇게 자상하게 말하는 경석이 되돌리고 싶어 하는 건 도대체 무엇일까.



앞서 언급한 충고가 나오는 대목은 경석의 반에서 일어난 도난 사건의 범인에게 자수하라는 메시지를 던질 때였다. 경석은 CCTV로 세익이 반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했음에도 쉽게 범인을 단정 짓지 않는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범인은 직접 자수하라고 권한다. 그것도 먹히지 않자 경석은 돈을 잃어버린 아이에게 직접 그만큼의 돈을 배상해준다. 좋고 원만하게 일을 해결하려는 자세가 몸에 밴 사람이다.


수업시간에 전화벨이 울린다. 통화 내용으로 유추하건대 경석은 이혼한 남자다. 갑작스레 아이를 맡아달라는 전부인의 전화를 받고 딸을 찾아간 경석이 마주해야 하는 것은 딸의 외면.  경석이 어떤 잘못을 인정하고 싶어 하는지, 무엇을 되돌리고 싶어 하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사람은 변하기가 쉽지 않다. 경석은 최대한으로 아이를 구슬리며 같이 놀자고 했지만, 결국엔 자신과 있기 싫다며 떼를 쓰는 아이를 혼을 낸다. 쉽게 끄집어내지는 예의와 도리. 경석은 좋은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는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실제로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는 길을 가르칠 수 있다는 자기 확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다.


경석은 그렇게 파탄난 부녀관계를 다시 되돌리고 싶어 하는지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지만 아이는 아빠를 따라가려 하지 않는다. 아이를 잠시 차에 두고 학교에 가 세익과 도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려 하지만, 원만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결국 허탕치고 차로 돌아온 경석은 아이가 사라졌음을 알고 패닉에 빠진다.



아이가 발견된 것은 트럭 사고가 일어난 이후. 그리고 그날 발견된 CCTV 기록은 학교에서 나가던 세익과 아이가 같이 어딘가로 향하는 길이었다. 이에 트럭기사는 세익이 갑자기 아이를 밀쳐 사고가 났다고 하고, 반면에 세익은 아이가 갑자기 차로 뛰어들었다고 한다.


어떤 것도 믿기 힘든 상태에서 경석은 차분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도난 사건의 범인이 점차 세익일 것 같다는 추론에 이르자, 경석은 세익을 추궁하기 시작한다. 아니 추궁을 넘어서 날선 분노를 표현하고 끌고 다니며 윽박지른다.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확신이 처음에는 차분함을 유지하게끔 했지만, 점차 자신의 판단이 옳다는 생각이 들자 무얼 해도 좋다는 생각이 들어버린 것이다. 이는 차분함을 유지하려 노력했던 딸과갈등에서와 마찬가지의 태도다.



이 영화는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강박과, 자기 확신이 결국은 자신이 유지하려 했던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경석이 이런 난리를 피우면서 결국에 세익의 입을 통해 마주한 진실은 참담했다. 세익은 경석의 딸한테 아빠에게로 가자고 말하자 딸이 도망치다가 트럭에 치였다는 것.


전통적 가치관들은 자기 수양과 그를 통한 자기 확신을 강조한다. 동양에서는 유교적 가치관에 따라 자신을 수양할 것을, 그리고 그 결과 자신의 확신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사람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길이 아니면 가지 않는다"라는 격언은 이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런 완고함만으로는 자신이 되돌리고자 했던 가정을 되돌릴 수 없었고, 오히려 큰 상처만을 얻었다.


자신의 가치관에 확신에 찬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내린 자신의 판단에 확신을 갖는다는 것. 그리고 그걸 토대로 남을 가르치고 화를 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그런 확신에 가득 차 소통하려 하지 않는다면 현실을 얼마나 꼬이게 만드는가. 자기 확신의 무상함을 되돌아보게끔 해주는 잘 짜인 각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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