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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날 Dec 21. 2022

천국을 누리는 자

올 한 해 내가 무엇을 향해 걷고 뛰고 동참했는지 나를 점검하고 새로운 시작과 꿈과 비전을 준비하는 행복한 결산의 때가 왔다.

이제는 시간이 빨리 안 간다며 재촉하지도 마냥 느긋하지만도 않은 꼭 알맞게 익어가는 과실처럼 시간의 흐름이 소중해진다.


혹여나 올해 빠트린 일이 있는지, 꼭 만나야 할 사람은 없는지 살펴보면서도 전국이 눈바람이 흩날리는 날씨 속에서 내가 사는 이곳은 소리 없이 혼자 살그머니 왔다 사라져 있는 눈 구경하기가 힘든 곳임에도 나의 몸은 따끈따끈한 아랫목이 점점 그리워진다.


하지만 시간이 더 지나가기 전에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다.

고3아들의 수능을 마치고 지금쯤 결과를 놓고 초긴장과 두려움으로 지낼 친한 동생.

누구나가 바라는 그 엄친아들을 둔 엄마다.

어릴 때부터 곧잘 잘한다는 얘기를 많이 듣고 자라며 중학교 때까지도 꾸준하게 최고의 성적을 유지해 온 아들이 고등학교 진학을 고민하며 연락이 왔었다.


언니가 살고 있는 지역에 있는 특별한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싶어 하는데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언니라면 어떻게 할 것 같아요?

나야 물론 아이가 공부에 재능이 있다면 설령 맘에 드는 결과가 나오지 못하더라도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맘껏 힘을 줄 거라고 했다.


그런 걱정이 무색할 만큼 고교에 입학한 그 아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최상위 성적을 내며 학교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었다.

엄마와 계속 피드백을 해가며 부족한 부분들을 끊임없이 채워 나가는 아주 성실한 모습 그 자체였다.


그 긴 시간을 흐트러짐 없이 진행하고 있는 동생과 얼마 남지 않은 만남의 시간이었기에 나의 게으름을 깨고 동생의 등을 토닥여 주고 싶었다.


하필 우리가 만나는 그날이 아들이 가고 싶어 하는 학교 발표 날이라고 했다. 그동안 마음을 조이고 몇 달간 힘이 들었는지 많이 여위어 있었다. 하지만 그 여린 몸속에서도 아이를 향한 꿈과 기대와 비전은 얼마나 또렷하고 분명한지 한 아이가 성장하기까지 그 배후에는 누군가의 무한한 사랑이 있었다.


언니, 모든 사람들은 아이가 순해서 그저 엄마 말에 순종하며 따라왔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정말 다른 곳에 눈을 돌리지 않았어요. 

내가 회사를 다닐 때는 그곳에 최고로 충실했고, 가정주부가 되고 나서는 자녀교육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아이에게 끊임없이 꿈을 심어주면서 지칠 때마다 

“너는 고작 너 밥벌이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세상을 리더 할 자의 공부"를 해야 한다고 틈틈이 계획을 짜가며 밀도 있게 채워나갔어요.


그런데 이제 다시는 못할 것 같아요. 나도 처음이었고 아들도 처음 경험해 보는 것이었기에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부었어요. 거의 모든 부분을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대학 면접을 보러 학교에 가보니 그 학교가 주는 중압감이 너무나 커서 힘에 겨웠어요.

언니는 그 많은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나가요?


정말 그 여린 동생이 너무나 대단하면서도 안쓰러웠다. 정말 모든 부모의 마음이 다르진 않겠지만... 그 눌리는 무게에 조금이나마 자유와 해방을 주고 싶었다.

나도 학업에 높은 성과를 내는 부분을 아주 높이 평가하기에 아이들에게 소홀하지는 않았어.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성실함과 집중력이 꾀 필요하다는 것을 내가 직접 경험을 해보았기에...

가정이 너무나 어렵고 힘이 들었을 때 그 늪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공부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매진할 때가 있었으니까.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힘에 부치고 더 큰 난제가 기다리며 무엇을 위해 이 고생을 하는지 모를 만큼 흔들림이 찾아왔던 삶이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의 시민권을 가지고 살아가다 보니 아이의 대학입시에서 그리고 예고입시 실기시험장에서 모든 부모님들이 철커덩 닫힌 문 앞에서 한 발짝도 떼지 못하고 차가움 속에서 두려움에 몸서리칠 때 나에게는 무한한 기쁨의 노래가 나오더라고.


시험장에 미리 앞서서 천군천사를 파송시켜놓고 위로부터 오는 지혜와 능력이 임하는 기도 속에서 따끈한 커피를 마시고 캠퍼스를 돌며 여유를 가지고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건물 이곳저곳에 아이들의 흔적과 생각들을 엿보고, 곳곳마다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어둠을 밀어내는 영적싸움을 하며 그들을 위해 축복 기도도 해주니 마음의 평안이 왔어.


인생의 문이 열리면 맘껏 도전하고 잠시 멈추면 차곡차곡 준비해 나가면 된다는 믿음이 오고 나서부터는 나의 강박관념 같았던 조급함 들이 기다릴 수 있는 힘이 생겨져 갔지.

7년 전에 꿈을 가지고 신청해 놓았던 미국행이 이제야 풀렸다며 연락이 오기도 하고...ㅎㅎ


그 말에 조금은 위안이 된 걸까? 

갑자기 굳어져 있던 동생의 얼굴에 웃음이 깃든다. 

와~ 언니네 집은 

무언가 살아있는 듯해요. 

생동감이 넘쳐요.

그 오랜 시간을 기다릴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거죠?

나도 꿈을 꾸고 언니가 준 아침마다의 미션을 하고 있으면.


서둘러 직장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일을 마치고 폰을 열어보았다.

“언니, 울 아들 설대 합격했어요~ 신경 써줘서 너무 고마워요.”

“와! 정말 대단하다~ 가정과 가문과 학교에 자랑이고 영광이네”

앞으로의 인생길에 많은 사람을 살리고 기쁘게 하는 일에 쓰임 받기를 

기도할게.

나의 일처럼 기쁘고 행복했다.

날마다가 메리 크리스마스인 천국을 누리며 나누는 발걸음이 흰 눈처럼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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