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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날 May 19. 2023

후회 없는 삶

미국대사관을 다녀오며


쩍쩍 갈라진 대지에 굵은 빗줄기를 며칠간 쏟아내더니 구름 한 점 없이 아름답고 청아한 5월의 푸릇푸릇한 봄날에 오랜 시간 기다렸던 비자 인터뷰를 다녀왔다.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아이들은 이제 제법 장성하여 자신들의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이곳에서의 편안함과 안정감에 흠뻑 빠져 있을 무렵 다시금 새로운 시작이라는 도전장이 날아왔다.


정말 뜻하는 길은 열린 다라는 기쁨도 잠시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두려움이 앞섰고 어디서부터 준비를 해야 할지 막막함 속에 손발이 오그라들 만큼 불안이 덮쳐왔다.


지금까지 수많은 역경과 고비고비마다 만남과 도움들이 다 준비되어 있었고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것들이 넘치도록 많다 보니 이것들이 순식간에 날아가 버릴 것만 같은 상실의 두려움이라는 사실을 말씀을 듣고 또들은 후에야 발견하게 되었다.


그 후에야 비로소 시달림이 아닌, 과거의 그 돌보심이 현재와 미래까지 완벽하게 예비되어 있음을 알고 감춰진 보물들을 발견만 하면 되는 기쁨과 기대감이 찾아왔다. 앞으로의 삶 속에 어떤 만남과 일들이 준비되어 있을지... 

그래서 하나하나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찾아보니 미리 앞서간 한인들이 서로서로 커뮤니티를 이루고 정착하는 것을 돕는 공동체들이 형성되어 있어서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타국에서도 사람 사는 향기를 느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먼 타지로 떠나 본 적 없이 홀로 계신 엄마와 가까이 살았던 터라 엄마의 상심은 많이 컸다. 

엄마는 “모든 사람들이 한국만큼 좋은 곳이 없다고 나갔던 사람들도 들어오는 마당에 왜 그리 성공을 하려고 애를 쓰니. 이곳에서도 다 잘살고 잘 가르치고 살더니만. 앞으로 무슨 고생을 더하려고 그러냐?

부모로서 자식이 감당해야 할 수고의 분량을 느끼는 엄마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엄마, 저도 내가 익숙하고 편안한 이곳이 제일 좋아요. 그리고 이미 내 그릇을 넘치도록 다 받았어요. 그래서 성공을 위하여 몸부림 칠 필요도 없어요. 이제 저의 꿈은 배부르고 등 따순 것이 아니라 남은 인생을 후회 없이, 나와 자녀를 넘어 다른 후대와 가정들까지도 함께하며 돕고 싶어요. 미국이 끝이 아닌, 문이 열리는 곳은 어디나 가보고 다시 돌아올 곳도 있잖아요. 내가 맛을 봐야 전할 수도 있으니까. 있는 곳에서 천국을 누릴 수 있다면 어떤 곳을 가서도 천국을 누릴 수 있어요. 


엄마는 성공을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에 마음을 조금은 누그러뜨리셨다.



마지막 관문이자 외국생활의 첫 시작인 비자 인터뷰 날.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존재들이라고 생각했던 자녀들이 언제 이렇게 자랐을까 싶을 만큼 각자가 맡은 역할들을 충실히 해나갔다. 영어가 되는 아이는 다른 사람의 문장을 봐주고 그동안 영상을 통해 여러 정보를 수집했던 아들은 1:1 질문을 돌아가면서 시켜주고 의상을 꼼꼼히 체크해 가며 평상시에는 내 마음에 하나님이 계시다며 소리 내서 하는 기도를 싫어하더니 사뭇 긴장이 많이 되었는지 모두 모여서 기도하고 축복기도를 받고 나서는 발길을 옮겼다.


대사관 앞은 경찰들이 배치된 삼엄한 분위기 가운데 우리를 더욱 떨리게 했지만 아이들이 많아서였는지 통과하는 곳마다 모두 한가족이에요? 라며 와! 부자라고 미소를 보내주시고, 아이들을 보고 영사의 마음이 부드러워졌는지 사나운 질문이 하나도 없이 계속 웃음을 띄워주셨다.

이미 우리말에 익숙해져 있는 나만이 짧은 문장 앞에도 골똘히 생각하고 한 박자 늦은 답변인걸 보니 내가 제일 문제인 것 같다.ㅎㅎ


서로 행복한 인사를 나누며 하루의 일정을 완전히 마치고 다시금 일상 속으로 돌아온 시간, 앞으로 어떻게 이끌어 가실지 긴장과 기대 속에서

이제는 조금씩 나로부터 자유를 느끼는 것은 세상을 향하여 일어나 생명을 사랑하고 일으켜주는, 가치 있고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라는 메시지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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