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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날 Aug 23. 2023

한 여름밤의 꿈은 깊어가고


올여름, 깊은 꿈을 꾸고 일어난 듯 바쁜 일상이 꿈결처럼 흘러간다.

4년여간 다녔던 어린이집을 퇴직하며 함께했던 아이들과 선생님들과의 눈물 없는 행복한 작별을 하고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생각하며 준비한 선물들을 막상 따뜻하게 전해 주지도 못하고 글귀에다 마음만을 전하며 씩씩한 척 서둘러 어린이집 문을 나왔다. 

후련함과 아쉬움의 교차가 너무 컷 던 탓인지 집에 와서 한동안 아무 일도 할 수 없어 축 늘어진 몸으로 오랫동안 말씀을 들으며 허전함의 공백을 채워 나갔다.


이제는 오롯이 출국 준비에 전념할 수 있는 나의 시간이 주어졌음에 박차를 가하려는 순간, 아뿔싸! 서울에서 초등부 아이들과 돕는 청년들, 선생님들이 이곳으로 여름캠프를 온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며칠 전부터 계획 중이라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이번 여름만은 그냥 지나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컸던 지라 짐의 무게가 크게 다가왔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출국을 앞두고 뜻하지도 않았던 오랜 친구들과의 만남을 가지면서 어릴 적 만났던 

친구들의 얼굴과 목소리는 너무나 익숙한데 중년에 들어선 친구들의 대화는 모두가 힘들고 아프고 걱정되는 무거운 짐을 짊어진 체 하루를 그냥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삶에 비해, 나의 꿈과 비전과 삶의 이야기는 딴 

세상 이야기 같았다.

무엇이 그동안 우리를 달라지게 한 것일까? 하나하나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나의 자유와 해방을 친구들에게 나눴더니 내 주변에 이런 친구가 있었냐며 그들도 나도 살아나는 그 시간들이 너무나 행복했다.


그 만남의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지를 알았기에 이 더위를 이겨내고 내려와 준다는 이들의 수고와 

헌신과 사랑 앞에 나도 한번 거들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머무를 숙소를 정하고 캠프현장, 물놀이 장소, 운동할 곳, 여행행선지, 필요한 식사 및 물품, 방송 

시설등을 하나하나 체크해 나가는데 서울 답사팀들의 반짝반짝 빛나는 열정과 꼼꼼함, 넘치는 에너지에 다시 한번 감격과 감동, 존경심이 흘러나왔다.


드디어 결전의 순간! 주일예배를 마치고 서울에서 60여 명의 친구들과 선생님들, 사역자들이 작은 소도시 

순천. 그중에서도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작은 교회에 속속 모여들었다.


아이들은 서둘러 여정을 풀고 맛깔난 남도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힘을 낸 다음에 영의 양식을 위해서도 찬양과 율동 말씀으로 뜨거운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이들의 아침운동을 위해 전망대가 있는 죽도봉공원을 오르며 모든 무기력을 날려 보내고 탁 트인 누각에 앉아 호흡기도까지 하고 돌아온 아이들의 아침은 생기가 확 살아나 폭풍흡입으로 보답했다.


그러고 나서 캠프의 하이라이트~~

현장캠프! 이곳 사람들이 직접 살아가고 있는 생생한 삶의 현장인 5일마다 열리는 아랫시장을 돌며 ‘원래 인간은 어떤 존재이며 왜 고통 속에 살아가야 하는지’ ‘행복해지는 답은 무엇인지’ 그들이 직접 그려서 정성스럽게  만들어 온 기쁨의 소식지를 그 뙤약볕아래서 일평생 자식들을 위해 사셨던 어른들께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떨리고 간절한 마음으로 전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저 현장이 아픔이었고 우리 부모님 세대가 처절하게 전투적으로 살아왔던 모습이 담겨있는 곳 이어서 꺼려했던 곳을 밟아주고 빛을 비춰주어 참으로 감사했다.


이 더위를 이겨내고 모두가 어우러져서 하나가 되어지는 다음 시간은 기다리고 기다린 물놀이 타임~!!!

답사팀들이 고르고 고른 안전 하면서도 재미있고 깨끗하면서도 우리만의 공간으로 사용하기에 딱 좋은 장소에서 아이들은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우리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지만 함께 동참해 준 청년들과 남자 어른들의 전력투구로 우리 아이들의 여름날은 여물어져 갔다.

모든 피로를 풀어 줄 숙소로 돌아가는 동안 아이들은 차 안에서 깊은 잠에 숙면을 취하고는 숙소에서 짐을 정리하는 동안 어른들은 바베큐 준비를 했다. 그것도 순천만과 초록 갈대밭이 드넓게 펼쳐 보이는 아름다운 숙소에서. 

아이들은 야외에서 친구들과 함께 하는 이 파티를 맘껏 즐기며 더없이 행복해하고 어른들도 모든 피로를 풀어가며 서로에게 감사하는 시간을 보냈다.


모두가 강당에 모여 오늘의 활동을 돌아보고 팀별 발표와 자신들이 보고 느낀 것들을 여실히 표현하면서 감정이 북받쳐 왔는지 눈물을 흘리는 친구들도 있었다. 선생님들의 포럼에 있어서도 미디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을 상대해야 하는 어린이 사역이 너무 버겁고 부족하다는 생각에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 항상 따라다닌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일 앞에 다시 순종하며 나아오는 모습들이 참 사랑스러웠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올라가는 날 아침, 갈대밭 선착장을 산책하고 순천의 명물이 된 순천만 국가정원에 들려서 기차도 타고 맛있는 음식도 함께 먹으며 2박 3일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안동에서 이 캠프에 참여한 친구는 혼자서 고속버스를 타고 대구로 또다시 안동으로 갈 거라는 초등친구까지 모두를 보내며 내가 그곳에, 그 자리에 함께 있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음에 감격의 눈물이 흘렀다.

지금은 정신의 문제가 급증하여 어느 곳 하나 안전지대가 없고 세상에 물과 불의 심판이 느껴질 만큼 전 세계가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이 땅에, 그래도 후대가 살아있고 사람이 희망이며 해야 할 일이 있음이 분명해지는 보화 중에 보화를 발견한 최고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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