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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날 Nov 11. 2023

내게 주신 땅, 미국에 발을 딛다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절대 그날이 올 것 같지 않았던 우리의 출국일이 다가왔다.

대 가족의 많은 옷가지와 꼭 필요한 용품들. 수많은 격려와 사랑과 정성의 선물들을 꾹꾹 눌러 담아 10개의 수화물과 기내에 들고 갈 6개의 가방들을 차곡차곡 쌓아 먼동이 트기 전 새벽녘에 공항으로 향했다.


지금까지 해외여행도 변변치 않았던 우리에게 이민이란 정말 생소하고 아직도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두근두근 뛰는 설레임과 두려움으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로 발걸음을 옮겼다.


첫 도착지인 미시간 주의 디트로이트 공항.

비행기 안에서만 해도 우리나라의 스튜어스들과는 완전 다른 외형, 

연령과 숙련된 날렵한 손놀림에 이 나라에 대한 인상이 꽤 깊어졌는데 도착한 곳에서의 첫 관문인 입국 심사에서부터 문제는 시작되었다.


너무 촉박하게 끊어 놓았던 경유할 비행시간은 다가오는데 끝없는 대기줄. 언어가 잘 소통되지 않아 통역할 사람을 필요로 하는 시간들로 기다림과 기다림은 계속되었고 겨우 우리 차례가 되어 입국심사는 쉽게 진행되었는데 영주권을 신청하는 곳으로 가는 비밀의 방으로 인도되었다.



그런데 그곳에 먼저 와서 한참 진땀을 흘리고 있는 청년을 보니 한국인이었고 언어가 잘 소통되지 않아 애를 먹고 있었다.

우리야 6명의 대가족이 출동을 했기에 수로도 밀어붙일 수 있었지만 

여성 홀로 의심을 받는 상황에서의 눈빛은 너무 가련하였다.


그곳 심사관은 한국말을 통역할 사람을 찾았고 우리에게 와서 통역을 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큰 딸은 자신이 없다며 뒤로 빼긴 했지만 조금이라도 도와줄 수 있다면 한번 해 보라고 했더니 초인적인 힘이 발동했는지 긴급한 상황 속에서 그들의 요구사항과 그 청년의 상황과 생각을

잘 전달하였다. 자신의 나라에 대한 자부심과 힘이 강한 강대국에서 불분명한 기간과 해야 할 일이 명확하지 않을 때 언어까지도 잘 통하지 않는 상황은 정말 지옥 같았다.



그곳에서 진땀을 빼며 더딘 행정 일을 진행하는 동안 우리는 극한의 

문제에 봉착하고 말았다. 마지막 도착지인 비행기를 놓치고 말았으니...

아뿔싸! 이제 우리의 짐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며 어디서부터 진행해야 하는지.

계단을 오르내리며 다음 표를 찾아보는데 모두 그 시간이 되어야 알 수 있으며 담당자가 아니라는 대답뿐이었다. 한국인과 같이 왜 자리는 안 지키는 것이며 일을 빨리 진행을 안 해주는지. 

 묻고 또 묻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미국의 맛을 톡톡히 치른 순간이었다. 낮 12시에 내려서 밤 11시가 되어 마지막 비행기에 겨우 오를 수 있었을 때, 우리의 쪼그라들었던 심장은 다시금 살아났고 안전하게 

마지막 도착지인 오하이오 주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30여 년이 되도록 사신 한국분의 도움으로 그 새벽에 우리의 거주지에 무사히 도착하였고 우리가 먹을 음식이 없을 것을 아시고 한국에서도 잘 챙겨서 먹지 못하는 육개장과 잡곡밥. 돼지고기 볶음에 나물과 김치들을 준비해 오셨다.

낯선 땅에 가족이 되어 주고 싶었다는 말씀에 찐 눈물이 나도록 감사했고 고마웠다.

이곳에서의 아이디가 아직 없는 우리에게 집을 내어 주는 곳이 없어 

이 가족들을 데리고 도착해서 얻어야 하는 상황 속에서 바로 오기 전에 

다른 사람이 취소해 놓은 집을 자세히 보지도 않고 렌트를 하였는데 

지금까지의 살아왔던 그 어떤 집보다 아늑하고 넓고 평안한 지역이었다.

3주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때를 회상해 보는 것은 다음날부터 진행되었던 휴대폰을 개통하고 은행 일을 개설하고 자녀들의 학교서류들을 통보하며 자동차를 구입하고 시장을 보는 기본생활조차도 혼자 힘으로 하나도 할 수 없고 높은 장벽 앞에 바보가 된 시간들이었다.


내가 그토록 떠나고 싶어 한 홀몸으로 찬란했던 20대 청년시절에는 문이 열리지 않다가 변화를 완강히 거부하는 반백 살이 거의 다 된 이때에, 뼛 속까지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지금에 문이 열려 왜 처참히 무너지게 하시는지, 어린 자녀들 앞에 낙심의 소리를 낼 수 없어 혼자 끙끙 앓으며 하나님을 원망을 했던 

시간이었다.


앞으로의 일정들 속에서도 쉽지 않겠지만

그럴수록 말씀 앞에 다시 서서 처음부터 나를 세워가는 시간, 

조금씩 만남이 열리고 꿈이 생기고 하고 싶은 도전이 오는 이 아침.

문제를 바라보지 말고 나를 통해 하실 일에 꿈을 꾸며

나의 열심히 아닌, 거저 주시는 그 은혜에 감사하며

눈을 들어 높은 창공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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