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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날 Dec 01. 2023

동행

언약의 이정표를 따라


그렇게 마음조리며 기다리던 소셜번호도 받고 그린카드라 불리는 영주권도 배송되었다. 

이제야 어디를 가든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내 신분을 정확하고 당당하게 내세울 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찾아왔다.


아이들도 차차 학교에 적응하며 나름 성격에 따라 지금의 상황을 새롭게 받아들이기도 하고 엄청난 스트레스가 되어 긴장의 연속이 되기도 하지만, 친구들과의 사이에서 끈끈한 관계를 세워 나가는데 만큼은 너 나 할 것 없이 행복해하는 눈치다. 


그중에서도 제일 겁쟁이 중에 겁쟁이는 인생의 쓴 맛을 많이 경험한 탓인지 나에게 밀려오는 압박감이었다. 도로에 꽉 차있는 모든 자동차가 나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고, 빠른 언어로 커다란 눈을 뜨고 쏟아내는 말들이 폭포수처럼 다 흘러나가고, 일을 하나 처리하는 것만 해도 미리미리 검색하고 동영상을 보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야 하는 매일매일이 어린아이가 걸음마를 연습하는 것 마냥 긴장과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거기에다 아직 이 오하이오주와의 협정이 이뤄지지 않아 운전면허를 다시 취득해야 했고 한국어의 제공이 안 되어 있어서 오랜만에 밤샘 공부(?)를 해보는 상황 앞에 나의 내면에서 나오는 온갖 쟁쟁거림과 짜증들의 소음들은 “더 이상 원래의 너의 것이 아닌 먼저 생각을 가져다준 존재가 있다” 

라는 말씀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지금의 어설픔은 부끄러움도 아니고 내가 그동안 떠들어 댔던 다른 사람, 다른 민족을 품고 나아가는데 꼭 필요한 관문이며 경험해야 할 가치가 있다는 사실에 눈을 뜨고 나니 함께 어우러져서 살아가는 데 있어 힘들어할 이웃들의 모습들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었고 믿음이 있는 척 큰소리치며, 흐지부지 대충대충 살아왔던 삶의 태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조금이나마 힘이 생겨지고 나서 이 나라를 다시 보니 좋은 매너와 여유들로 가는 곳마다 인사와 리액션이 넘쳐나고, 먹고 입고 마시는 것이 너무 풍성하여 절제하지 못할 만큼 온갖 소비와 결핍이 없어 꿈도 꾸지 않는 아이들로 자라나는 부러움과 거부감의 나라가 다양한 민족들이 서로 부딪히며 공존해 가야 하는 커다란 갈등 속에 서로 이해하고 인생의 방향을 나눠주며 가치 있게 살아가는 꿈을 전달하는 자가 되고 싶은 

작은 소망이 생겼다.


더욱이나 이곳에 마음을 함께 할 한국 이웃들을 만나 아이들도 어른들도 서로 의지할 수 있어 더욱 좋고, 

훨씬 먼저 고국을 떠나 한국인 특유의 부지런함과 열정으로 새로운 곳에 정착하여 지금은 이 사회에서 

제법 자리를 잡고 계신 분들의 따뜻한 배려와 손길도 받았다.


그분들의 한결같은 말은 먹고사는 언어가 아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살아있는 언어, 힘 있는 언어로 전문성을 가지고 행복을 찾으라는 것이었다. 우리 민족의 남을 따라가고 형식에 매이고 틀에 묶여있는 것에서 이제는 내면을 꼭 보고 튼실히 하라는 당부가 이어졌다.


그동안 눈에 보이는 겉치레와 간판에 매여 앞만 보며 달려왔던 나에게 서로를 비교하며 낮은 자에게는 은근히 군림하고 높아 보이는 자에게는 조아려 드는 틀들이 하나둘 벗겨져야 하는 때임을 여실히 느꼈다. 이러한 생각을 가져다준 이곳이 조금씩 정이 들고 사랑스러워 간다.

 

그래서 변화와 갱신은 힘들고 좀 아프지만 나의 인생여정에 있어 꼭 함께 가야 하는 길인 것이다.

새로운 시작과 도전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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