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세대와 성별에는 저마다의 십자가가 있다
2021년 정치권의 절대반지는 이대남의 마음이다. 4.7재보선과 각종 여론조사 결과 정치적 집단으로서 이대남의 영향력이 확인됐다. 예상 못한 세력의 부상에 정치인들의 발걸음이 바빠졌고, 이대남의 마음에 소구하기 위한 행보에 집중하고 있다. 얼마 전 공개된 KBS 세대인식조사에 따르면 20대 남성은 대체로 개인의 능력에 따른 경쟁을 선호하며, 국가의 개입에 부정적인 경향을 보인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20대 남성의 보수화를 이야기한다.
이대남의 보수화를 논하기 이전에 이들의 특징을 이해해야 한다. 20대 남성은 변화한 사회적 분위기와 높아진 기대감 속에서 샌드위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가부장의 혜택을 누려본 바 없지만 가부장제의 공모자로 지목받으며 갖고 있지도 않은 가부장의 권능을 토해내야 했다. 1년 8개월 군 생활은 그만큼의 사회인으로의 진입을 유예할 뿐 아무런 실질적 혜택을 주지 못했다.
게다가 ‘청년+남성’에 대한 사회적 기대치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취업ㆍ결혼ㆍ내 집 마련 등 그 어떤 퀘스트도 달성할 수 있을 만큼 가까워 보이지 않는다. 이것들이 일반적인 20대 남성이 처한 상황일 터다. 혹자는 30대, 40대 직장인으로 남성들이 누릴 이점과 경력단절로 고생할 여성의 불리함을 들어 20대 남성의 억울함을 삭이려 한다. 하지만 미래의 불확실한 기득권을 현재의 위안거리로 삼을 만큼 이대남의 현실은 여유롭지 않다.
그러나 모든 세대와 성별이 저마다의 십자가를 지고 있는 만큼, 이대남의 분노만 특별 대우를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지금 다른 세대와 성별에 비해 유독 이대남이 주목받는 이유는 뭘까. 이대남 현상의 특징이 있다면 ‘이대남’으로 호명됐다는 점이다. 모든 이들이 마음속에 현실에 대한 분노와 불만이란 씨앗을 지니고 있다. 이대남의 경우 그 씨앗이 다소 많았을 수도 있지만, 씨앗에 물과 거름을 듬뿍 주는 이들이 있었다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한다.
몇몇 정치인들은 일찌감치 이대남의 정치적 가능성을 인식했다. 능력주의를 선호하는 양상이 극단적ㆍ폭력적인 수준을 넘어 반인륜적으로까지 뻗어나간 일베에 호소하기도 했던 이들은 수위를 낮춰 20대 남성의 지지를 지향하기 시작했다. 4.7재보선을 통해 이대남의 쓰임이 가시화됐고, 이제 그 쓰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에 더 많은 정치인들이 뛰어들고 있다. 그 결과로 이대남의 마음은 정치권의 절대반지가 된 셈이다.
정치적 영향력을 인정받은 이대남에게는 지금의 상황이 반가울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권과 미디어에 의해 유별나게 특징지어지는 이대남의 정체성과 지향점이 진정으로 20대 남성을 위한 것인지는 숙고할 가치가 있다.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정글은 아니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