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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산이가 Sep 06. 2021

우정을 지속하기 위해서

도대체 이 새끼는 왜 이러는 걸까?

오랜 친구가 하나 있다. 대학교 들어가자마자 친해져서 이제 어영부영 20년 지기가 되어 가고 있다.


이 친구로 말할 거 같으면 대체로 좋다. 일단 착하다. 이때 착하다는 표현은 우리가 도통 떠올려봐도 칭찬할만한 말이 없을 때 간신히 떠올리는, 그러니까 궁여지책에 가까운 표현이 아니다. 정말 착하다. 나는 적어도 아직까지 이 친구처럼 환자에게 진심을 다하는 의사를 본 적이 없다. 심지어 군의관 들어가기 전에도 병사들에게 누를 끼치기 싫다고 로컬에서 군대에서 주로 볼 질환에 대해 공부하고 간 놈이다.


또 소탈하다. 30대 중반의 적지 않은 나이에도 피시방에서 먹는 짜파게티 하나로 함박 웃음을 웃을 수 있는 녀석이다. 오늘 사치 좀 할까 싶으면 치킨집이나 진짜 무리할 때나 양꼬치 집에 가는 녀석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이 그렇겠지만, 마냥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그리고 대개의 글이 그러하듯 장점에 대해 서술하는 건 별로 재미가 없다. 특히 나는 그런 주제로 이야기를 재밌게 풀고 나가는 능력이 없다. 그래서 이 글은 이 친구의 단점에 대한 서술이 될 거 같다.


사실 지난 2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이 친구의 단점은 그렇게까지 두드러지지 않았다. 이유가 뭘까 하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대개 의사의 삶이 그러하듯 이 친구의 삶도 30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별로 선택의 자유가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아직까지 단 한번도 이 친구가 장래를 주체적으로 결정하는 걸 보지 못했었단 얘기가 된다. 그리고 비로소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봤을 때, 도대체 이 새끼는 왜 이러지? 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친구는 얼마전까지 큰 병원에 있었다. 얼마만큼 큰 병원이냐면, 대학 병원이다. 친구는 그 안에서 교수라는 직함을 달고 일했다. 여기까지 들으면 그 친구 성공했단 생각이 들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보다 내밀한 부분을 파고 들어보면 실상은 이랬다.


"교수는 교순데... 계약직이야. 1년씩 계약 갱신해야 하는데, 안되면 나가야 해."


그냥 교수였으면 참 인생 단순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 하필 앞에 '계약직'이 붙어서 일이 복잡해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 병원은 월급이 짰다. 그래서 친구는 새로 나온다는 아이패드를 살지 말지에 대한 심도있는 고민을 시작했다.


"이게 200만원이 넘거든? 월급에 비해 너무 비싼데 어쩌지?"


처음엔 별로 살 마음이 없는 줄 알았다. 그래서 사지 말라고 했다.


"이게 200만원이 넘거든? 월급에 비해 너무 비싼데 어쩌지?"


하지만 정확히 같은 질문을 3개월 가량 반복해서 듣고 있자니 생각이 좀 바뀌었다. 짜증도 났다. 나였다면 사든 말든 벌써 3개월 전에 마음을 정하고 다시는 말을 꺼내지 않았을 터였다.


"이게 200만원이 넘거든? 월급에 비해 너무 비싼데 어쩌지?"


오래된 친구이니 만큼 내 표정을 읽을 수 있었을 터였다. 그럼에도 친구는 똑같은 질문을 해왔다. 그제야 나는 이 놈의 고민이 어떤 장애라는 걸 깨달았다. 나로서는 해결이 불가능한 장애였다. 그때부터는 솔직히 대강 답했다.


어떤 날은 사라고 했다가, 그러지 말라고 했다가. 그때 친구는 뜬금없이 영 다른 고민을 들고 왔다.


"월급 많이 주는 곳으로 갈까?"


연관성이 아예 없는 고민은 아니었다. 동시에 조금 다른 고민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대강대강 듣던 것을 관두고 다시 진지하게 들었다. 듣다 보니 지금 병원은 그만 다니는게 옳아 보였다. 월급도 짠데다, 계약직이지 않나. 오히려 지금까지 왜 다녔나 싶었다. 나가라 했다.


"월급 많이 주는 곳으로 갈까?"


친구는 정확히 같은 질문을 다시 3개월 가량 반복했다. 이전 고민까지 합치면 장장 6개월이었다. 그동안 세월이 흘러 얼음이 얼었다 녹고, 봄이 왔다가 더운 계절이 찾아오고 있었다. 이쯤되면 나갈 생각이 없다고 봐야 할 거 같았다. 이제부터는 이 새끼가 어떤 고민을 들고 오건 간에 대강 대응하기로 마음 먹었다.


"월급 많이 주는 곳으로 가려고."


그러고 나서도 거의 3개월이 흐르고 나서, 친구는 결국, 다른 병원으로 가게 되었다. 그 결정에 나와 나누었던 대화가 손톱만큼이라도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었다. 오히려 그 과정은 내게 더 큰 영향을 미친 거 같다.


내 오래된, 소중한 친구는 갈팡질팡하는 편이다. 이해하려고 들면 안될 정도로 심하다. 그래서 그냥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다른 장점도 많은데 뭐하러 단점에 집중한단 말인가. 가끔은 이렇게 넘어가주기도 해야 우정이 오래 지속 되는 법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아, 쓰다 보니까 한가지 생각이 난 게 있다. 내 친구는 아직도 아이패드를 살까 말까 고민 중이다.


도대체 이 새끼는 왜 이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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