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tella May 17. 2023

문과 대기업 다니면 얼마 벌어요?

벌긴 버는데 남진 않아요


*이 글은 "'공정'의 어휘 의미와 담론 의미 - MZ세대를 중심으로(이혜용, 방영심; 2023)' 논문을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25살에 처음 입사했고 25살 중반에 대기업으로 이직했습니다. 첫 번째 기업과 두 번째 기업의 연봉은 성과급을 포함하기 전 대략 1,000만 원 정도 차이가 났던 걸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한 달에 벌어들이는 실질 임금의 차이는 생각했던 것만큼 드라마틱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마 과세 구간이 바뀌어서 그렇지 않았나 추론해 봅니다.


어린 시절 제 롤모델은 대기업에 다니는 삼촌이었습니다. 삼촌처럼 서울에서 대기업에 들어가면 10년쯤 열심히 모아 서울에 자가를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작 제가 회사에 다녀 보니 10년 모아서는 자가는커녕, 전셋집도 못 가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배부른 소리입니다만, 오늘은 정말 현실적인 문과 대기업 신입사원의 가계부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문과 대기업 신입사원은 대략 연봉 3,600만 원에서 4,000만 원 정도를 받습니다. 우리나라 사무직 회사원의 평균 연봉을 고려한다면 매우 높은 수치입니다. 개인적으로 받는 연봉에 큰 불만은 없었습니다만 이렇게 벌어서는 경제적 자유를 이루는 데에 시간이 꽤나 오래 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략 연봉이 4,000만 원이라고 잡아 보겠습니다. 회사에 따라 추석이나 설날에 주는 상여금이 연봉에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감안한다면 월 실수령액은 대략 280만 원에서 290만 원 언저리가 됩니다. 제가 스무 살이 되었던 2016년의 최저임금을 토대로 산출한 월급은 1,260,270 원이었습니다. 2016년에도 대기업 연봉은 3,600만 원 언저리였으니 대기업에 간다는 것은 최소한 남들보다 월에 2배 이상을 번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런데 2022년 최저 임금에 따른 월급은 2,010,580원 정도입니다. 과거에 비해 대기업 신입사원과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 간의 격차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물론 이런 현상은 개인적으로 긍정적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최저임금이 오른다는 것은 생활 물가가 오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COVID-19 이전과 이후 체감 물가가 아주 큰 폭으로 상승했다는 것은 대부분 독자들이 동의할 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평범한 4년제 대학을 졸업한 '학자금 대출이 있고 서울에서 생활하는' 청년의 가계부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제가 회사에 다니던 당시 사용했던 가계부 양식을 토대로 가상의 가계부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월 실수령이 280만 원 정도 되는 직장인의 가계부입니다. 저는 매우 운이 좋게도 전액 장학금을 받아서 학자금 대출이 없었습니다만, 주변의 학자금 대출을 갚는 친구들의 상황을 보면 대략 월 500,000원을 갚길래 그 정도 금액으로 산정해 보았습니다.

월 수입 : 280만 원  

- 학자금 대출 상환 : 50만 원

- 월세(50만 원) + 관리비(15만 원) : 65만 원

- 전기세, 도시가스 : 2만 원

- 휴대폰 요금 : 7만 원

- 인터넷 요금 : 1.4만 원

- 넷플릭스 구독 : 1만 원

- 보험료 : 15만 원

- 주택청약 : 2만 원

* 월세 50만 원에 관리비 15만 원은 제가 2020년에 살았던 오피스텔의 금액입니다. 지역에 따라 오피스텔 월세는 매우 상이하기 때문에 참고만 해주시면 되겠습니다.

* 중소기업에 다니는 경우 중기청 전세대출이 나와서 오히려 월세 부담이 줄어들어 '실질 소득'이 비슷해 보이는 효과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대기업이 좋은 이유는 성과급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성과급은 매년 편차가 크니 계산에서 배제하였습니다.


최소한의 생계비를 지출할 경우 '숨만 쉬고 사는 데에' 이 정도의 금액이 들어갑니다. 계산해 보니 대략 130만 원 정도가 남네요. 그런데 매일 출퇴근을 하려면 왕복 교통비도 들고, 밥은 먹고살아야 하니 식비도 써야 합니다. 교통비로 월에 10만 원, 식비는 회사에서 점심은 제공한다는 전제 하에 하루 1만 원만 잡아도 30만 원이 들어가네요. 그럼 90만 원이 남습니다. 여기에서 매달 들어가는 경조사비가 약 10만 원이라고 한다면 80만 원입니다.


일반적으로 청년들에게 권장하는 저축 비중은 저축이 6, 소비가 4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학자금 대출이 있다면 저축 6은 처음부터 불가능합니다. 애초에 필수 지출을 하고 나면 130만 원 정도가 남거든요. 만약 학자금 대출이 없더라도 180만 원이 남는데, 본가에서 직장을 다니는 것이 아니라면 생활하기가 상당히 빡빡합니다.





한 달에 최소 120만 원을 모은다고 할 때 7년 동안 숨만 쉬고 돈을 모으면 1억 원 정도의 종잣돈이 생깁니다. 그동안 아파서도 안되고 집에 큰일이 생겨도 안 되겠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7년을 모으면 대출을 받아서 전셋집 정도에 들어갈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비슷하게 버는 배우자가 생긴다면 대략 2억 정도의 종잣돈이 생기니 그래도 상황이 조금 나아지겠네요.

이쯤에서 잠시 논문의 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특히, 대학입시, 취업 등 경쟁적 상황에 놓인 MZ세대의 경우 '공정하지 않다'는 의견이 평균보다 높게 나타난다. MZ세대로 불리는 2030 청년들이 불공정에 대한 분노를 적극적으로 표출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사회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이념보다 다양성에 기초한 각자 개인의 삶을 중시하며 현실 실리주의에 입각한 판단, 가치 및 공정에 대한 높은 열망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와 달리 그들이 노력 대 보상의 관계를 해치는 모든 것은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며 시험 기반의 능력주의를 강조하는 것은 개인의 차원에 갇혀 있는 공정성 논의이므로 사회나 구조적 공정에는 관심이 없어지거나 인식하고 있지 못한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해석의 차이는 있지만 MZ세대가 어떤 세대보다도 '공정' 담론에 관심을 가지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로 보인다.
- 이혜용, 방영심. (2023). '공정'의 어휘 의미와 담론 의미 - MZ세대를 중심으로-. 이화어문논집, 59, 141-164. p.142-143


제가 제시한 계산에서 문제점을 찾으셨나요? 저는 시험 기반의 능력주의를 강조함으로써 개인의 차원에 갇혀 있는 공정성을 이야기했습니다. 속된 말로 '먹고사니즘'에 치우쳐서 나는 열심히 노력했는데 왜 임금 격차가 좁아지는가 하는, 굉장히 흔한 담론에 갇힌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공간적 모순도 배제할 수 없겠네요.


제가 제시한 필수 생활비 중 '주거생활비'는 지방으로만 가더라도 부담이 확 줄어듭니다. '학자금 대출 상환'은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개인의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겠습니다. 문제점은 지방에는 일자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터에 본가가 있는 상황'이라면 많은 부분이 나아지겠지만, 저처럼 본가가 지방인 사람은 기본적으로 깔고 가는 돈이 서울이 자가인 회사 동기들에 비해 매우 높아집니다. 그리고 대기업에 다니기 때문에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거의 모든 종류의 복지에서 배제됩니다.


그래서 부산에 있는 공기업으로 갈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지리적 현실을 고려할 때 제 본가가 있는 동네에는 공기업이 없어서, 그리로 내려가더라도 거의 비슷한 상황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 뉴스에서 이야기하는 '배부른 청년들'의 이야기가 어떤 내용인지 심심풀이로 참고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참고문헌 : 이혜용, 방영심. (2023). ‘공정’의 어휘 의미와 담론 의미 - MZ세대를 중심으로 - . 이화어문논집, 59, 141-164.  






매거진의 이전글 연대 졸업생이 서강대 다녀보고 느낀 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