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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어버드 Nov 05. 2023

호주사투리 제2원칙

호주 사투리 제2원칙! 무원칙이 원칙!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도 호주 사투리를 들을 때면 갸우뚱거리기 일쑤다. 그 이유인즉슨 동일한 의미를 전달하는데 우리가 아는 기본 영어 표현과 다른 생김새의 단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딱히 규칙도 없다. 호주 사람들만의 문화적 습성이기에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익혀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가 아는 영어문법에 어긋나는 표현들도 말의 습관이니 수용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예를 들어 칭찬으로 잘했어!라는 뜻의 Good job! 대신에 Good on ya!라고 하는 것, 그리고 몸이 아팠다는 뜻의 'I was sick.' 대신에 'I was crook.'이라고 하는 것들은 호주 사람들의 말습관으로 받아들이고 익혀야 하는 것들이다.   


방법은 외우고 따라하고 외우고 따라하고를 뫼비우스의 띠마냥 반복하는 것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쓰는 Scots Gaelic처럼 전혀 다른 언어가 아니라 그래도 영어사투리라는 점이다. 마치 서울 사람이 전라도나 경상도 사투리를 문맥상 그래도 알아들을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참고로 아일랜드 혹은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쓰는 켈트어인 Gaelic은 마치 내 고향 제주도 말처럼 사투리라고 하기엔 전혀 못 알아듣겠는 또 다른 언어이다. 한 번 들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하나도 안 들렸다...ㅠㅠ)    


어쨌거나 저쨌거나 우리의 목표는 호주 사투리와 친해지는 것이므로 남반구 호주인들이 습관처럼 사용하는 어구들을 알아보자. 지난 11년간 서호주, 북호주, 퀸즐랜드,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뉴 사우스 웨일스 주에서 일하고 살면서 자주 듣고 사용했던 습관적 표현들을 A부터 Z까지 모아 보았다. 호주 사람들이 꽤 밥먹듯이 쓰는 표현들로 골라 정리를 했다. 표 안에 있는 호주 사투리 어구들만 잘 외워두더라도 현지에서 비슷한 소리가 들릴 경우 쉽게 알아들을 수 있어서 편리하다.

호주 사투리 표

조금 많아 보이지만 사실 실생활에서 툭툭 튀어나오고 쓰는 호주 사투리는 한도 끝도 없다. 그렇지만 리스트에 적힌 것들만 외워두어도 호주사람들의 말을 알아듣기가 훨씬 수월하고, 한 번 듣고 나면 그다음은 점점 쉬워진다. 왜냐하면 특정 사투리말을 사용하는 문맥을 느끼고 알아차리는 속도가 빨라지기 때문이다. 표에 정리해 놓은 한국어 뜻은 품사를 잊고 의미에 초점을 맞춘 우리말 최대근사치 표현이다. 어디까지나 영국식 영어가 모태가 되어 변화하고 진화한 호주 사투리이기 때문에 싼티가 나지만 또 그 안에 표준말이 담지 못하는 감칠맛이 있어 배우는 재미가 있다.  


참고로 'walkabout'은 원래 호주 원주민들의 성인식 풍습에서 유래되었다. 열 살에서 열여섯 살 사이의 원주민 남자아이들은 호주의 아웃백 덤불숲으로 walkabout을 가서 반년 동안 머무는데 성년으로의 전환을 맞이하는 의식이다. 평상시 호주 사람들은 누군가가 어디로 홀연히 떠나고 연락두절이 되었을 때 'He/She is gone walkabout'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표 안에 Wog라는 표현도 덧붙이자면 그 어떤 영어권 국가에서도 쓰지 않는 호주만의 표현방식이다. 인종차별적인 단어라고 하지만 최근에는 슈퍼워그(Superwog)라는 넷플릭스 드라마까지 나오면서 되려 다민족국가만의 특징을 드러내고 그 애환을 유머로 풀어내기 위한 표현으로 쓰인다. 

넷플릭스 드라마 슈퍼워그 포스터샷 및 스크린샷 (사진출처: Google Image) 

사실 Wog(워그)는 2차대전이 끝나고 호주로 이민온 이탈리아, 그리스, 몰타 등지의 올리브스킨(Olive skin: 까만 올리브 색의 피부)을 가진 남부유럽인을 속되게 부르는 말이다. 그리고 이민이 확장되면서 받아들인 레바논, 시리아, 팔레스타인 등 중동이민자들도 지금은 Wog라고 포함해 표현한다. 왜냐하면 중동계 백인들도 어두운 머리카락과 피부색이 남부유럽인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영국계 앵글로 백인이 주류인 호주사회는 심지어 Wog House라는 표현도 사용한다. 대가족 중심적인 남부유럽이나 중동이민자들이 사는 집을 워그하우스(wog house)라고 속되게 부르는데 사돈에 팔촌 등등 대식구가 모여사는 커다란 집을 일컫는다. 방이 네다섯 개는 기본이고 차고지도 더블 트리플에다 화장실도 두세 개, 그리고 뒤편으로 커다란 마당이 있어 바비큐를 하고 가족모임을 하는데 최적화화된 집구조이다.     

호주 워그 하우스 (사진출처: Ethnic homes and gardens) 

그런데 호주 사투리말을 잘 듣다 보면 무규칙이 규칙일 수밖에 없는 이상한 습성이 있다. 영어의 어순인 주어 동사 목적어 보어 등의 순서로 또박또박 문법을 지켜서 말을 하기보단 그날 그 상황에 필요한 뜻의 단어나 구어 혹은 숙어를 축약하거나 응축해 휘리릭 하고 말한다. 문법이 파괴된 단어와 구문들도 많다. '괜찮아, 걱정 마, 문제없어'라는 뜻의 호주 사투리 'No worries'가 그 예다. 걱정이라는 불가산명사 worry 뒤에 복수형 어미를 붙여 쓰는 것, 감탄사 혹은 한정사인 no를 마치 조동사부정으로 사용하는 것, 모두 비문법적이다. 그렇지만 그게 호주사람들의 언어습관이고 화용적 의미가 통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 특히 인간관계가 친할수록 더 비격식적이고 비문법적인 언어적 습관이 나타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야, 너 우리랑 같이 갈 거야?"라는 말도 친한 친구들이라면 호주특유의 웅얼웅얼거리는 어투로 "oy, ya coming?" 이렇게 말한다.


처음엔 잘 안 들리고 요절복통 환장했던 호주 사투리... 지금은 익숙해서 낄낄거리며 곧장 대답한다.    


호주 사투리, 알면 알수록 호주만의 문화를 더 가까이 느끼고 알 수 있다. 그리고 호주식 사투리를 알아듣고 사용하면 할수록 호주 토박이들이 더 친하게 느끼고 살갑게 도와주려고 한다. 그리고 종종 'Nearly true blue, mate!' (호주 사람 다 됐네~)하고 농담도 던진다. 그렇게 호주사람들과 동맹을 맺고 연대를 쌓아가는 것이 인종적 비주류로서 살아가는 방법이자 무기이다. 호주 사투리 공부 열심히 하자!     





덧 1. 지난 월요일 아침 청소 대장 제니스 아줌마와 나 그리고 학교 수위사 개리 아저씨와의 대화 내용이다. 문맥이나 상황을 고려치 않으면 이해가 쉽지 않다. 말을 뚝뚝 잘라먹고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호주인들의 대화 습성 때문에 언어적 모호함에 대한 관용이 없으면 쉽지 않은 일상 대화다.

      

나: ay! what's happening?  [왜, 뭔 일이에요?]
제니스: no biggie, just full as! [큰일 아니야, 그냥 꽉 찼어!]
나: skippy, or wheelie? [큰 통이요? 아님 작은 통이요?]
개리: (wiggling his hip back and forth) the biggy baby~ [(능글맞게 앞뒤로 엉덩이 흔들면서) 당근, 큰 거시기지롱~]    
제니스: bugger offffff, Gary. Just ring the bin man, will ya? [절로 비켜! 쓰레기차 오라고 전화나 해~ 알겠어?]
개리: did already, but no answer. [벌써 했고만, 근데 안 받아]
나, 제니스: what a bummer! [망했네!/실망이네!]

개리: No worries, will ring 'em later. [괜찮혀, 내가 나중에 전화할게]


호주에는 바퀴가 달린 플라스틱 색깔별(분리수거목적) 소형 쓰레기통이 있는데 이를 wheelie bin이라고 부르고 쇠로 된 사각형의 색깔별 대형 쓰레기통은 skippy bin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쓰레기 회사 차량 운전사가 정해진 날짜마다 와서 차량에 탑재된 기계로 쓰레기통을 픽업해 비워준다. 그런데 종종 까먹고 비워주지 않으면 지난주 월요일 아침처럼 쓰레기통이 꽉 차서 위생불량 상태가 되고 오후에 나오는 쓰레기를 보관할 때가 없어진다. 우리 학교 청소 대장 제니스 아줌마는 스키피 빈이라고 부르는 큰 쓰레기통이 주말 동안 안 비워지고 꽉 찬 꼴을 못 본다. ㅎㅎㅎ 붉으락 푸르락하는 제니스 아줌마를 놀리는 개리 아저씨는 여유롭기만 하고, 둘의 케미는 최고다.  

호주 가정용 소형 쓰레기통(wheelie bin)과 상업용 큰 쓰레기 통(skippy bin) 사진






*한 가지 팁! 사투리를 포함한 여러 말을 구사하다보면 언어 정체성이 머릿속에서 교란을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방언을 포함한 언어를 '문화공동체 구분 기준점'으로 생각한다. 내가 지금 현재 속해있는 문화 생활자들의 언어를 같이 말하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제주도 고향에 가면 제주도 문화를 공유하는 공동체 사람들 사이에서 무조건 제주도 사투리로 이야기하고, 서울에 가서 옛 직장동료, 친구들을 만나면 서울 문화를 공유하는 표준말로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지방대학을 나왔는데 그곳에 가면 잘은 못하지만 또 그곳 사투리로 이야기하며 외가에 가면 조부모님(몇 해 전 돌아가셨지만), 외삼촌, 큰 이모께서 일본에 오래 살다 오셔서 일본어와 제주도 방언 그 어디쯤의 언어로 이야기하면 나도 똑같이 그렇게 듣고 이야기한다. 호주에서도 통번역일 관련 혹은 예전 직장/대학원 관련 동료들을 만나고 교수님과 이야기할 때에는 영국 영어에 가까운 호주식 표준 영어로 이야기하고 사회에서 생산직 노동일을 하며 만난 working class친구들과는 호주 사투리로 이야기한다. 그래야만 그 해당 언어를 쓰는 문화 생활자들과 공감대가 형성이 되고 소속감이 생겨 유대관계가 지속되는 법이다. 지구별 언어 카멜레온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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