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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뚜 Jan 09. 2024

사랑하는 당신에게


잘 지내시지요?

평안한가요?


참으로 오랜만에 당신에게 편지를 씁니다.

예전의 못난 아내는 편지랍시고 처음 썼던 글이 생각납니다. 잔뜩 골이 나 잘잘못이나 따지다가 앞으로 잘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랑이라는 단어를 끝자락에 놓았더랬죠. 투정만 부리던 글이었습니다.

어쩌면 이 편지가 진짜 편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그때처럼 답장을 받을 수는 없겠지요. 그렇게 그냥 넘어가야겠지요. 당신의 대답 한번, 답장 한번이 고픈 나는 미련하게 꿈이라도 꾸기를 기도하지요.


벌써 삼년 입니다.

당신이 없는 첫 일년은 새로운 환경에 살아남느라고 아둥바둥거리다 보내버렸습니다. 동동거리며 버티느라 몸이 상하는 것도 모르고 지냈지요. 두 해째에는 당신에게 미안해서 끝없이 용서를 구하며 지냈습니다, 있는 잘못, 없는 잘못을 구구절절 찾아내며 스스로를 벌주었지요. 이번에는 마음에 생체기가 나더군요. 생각보다 더 잘못한 것이 많았고 결국은 내가 미워서, 너무 미워져서 울던 날들이 그렇게 흘러 갔습니다.

세번째는 좀 괜찮아질줄 알았습니다. 길다면 긴 시간이니까요. 날짜로는 730일, 시간으로는 17,520시간이나 되니 괜찮아지고 있을줄 알았습니다. 정작 이때부터 당신의 부재가 뼈저리게 실감나기 시작했다는 건 나만 아는 비밀입니다. 그래서 였겠지요. 원망이 겹겹이 쌓여 숨도 못쉬게 무거운 날들이었습니다. 대상이 없는 원망은 돌아서 내 심장으로 날아왔지요. 무의미한 전쟁의 날이었어요. 상상이 되나요? 당신은 상상도 안될 그런 깊은 절망감에 모든 의지를 놓아버리고 도망치고 싶었어요. 정말 사라지고 싶었지요.


미안합니다.

의무를 다하겠다고, 열심히 살겠다고 숨이 느려지는 당신의 손을 잡고 그렇게 약속했었지요. 그때는 그렇게 할 수 있을거라 믿었어요. 내가 강해질 수 있을거라고 확신하고 쏟아낸 약속이었지요. 그러나 그 약속은 내 발목을 옭아 메고 움직이지 못하게 결박해놓고 숨통을 조였습니다. 목젖 그 어딘가에 걸려 숨쉴때마다 따끔버리며 존재를 드러냈지요.


흔들려서 미안합니다.

처음에는 슬퍼도 슬퍼하지 못했고 아파도 아파하지 못했습니다. 표현하지 않고 참으면, 잘 참아내면 괜찮을 줄 알았지요. 여전히 나는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상처가 벌어져 곪아가는 것도 모르고 혼자만 참고 있었습니다. 꾹꾹 눌러 참고 있을 동안 아이의 상처 또한 곪아 터져 한바탕 전쟁같은 시간을 겪기도 했습니다. 잘 버티고 있는 줄 알았던 아이도 나와 같았다는 것을 터져버린 상처앞에서 깨닫고 또 한번 좌절합니다. 옆에서 혼자 울고 있다는 걸 삼년만에 알아차렸습니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당신이 사라져 혼자가 된 내가 아니라 아직 함께해야할 아이가 있고 그 아이와 나는 여전히 우리가족이라는 걸 그제야 눈치채고 당황합니다. 아이의 반항은 '나를 좀 봐줘. 나 여기있어.'하는 아이의 절규였어요. 어리석은 나는 이것도차 터지고 망가지고나서 알아챘어요.  어쩌지요? 이렇게 어리석은 엄마만 남은 우리가족은 이제 어쩌지요?

당신과 나의, 우리들의 아이는 오롯이 혼자 아픔을 견디고 있었어요. 나처럼. 아이의 몸부림에 당신의 빈자리를 더 크게 실감했지요. 아팠습니다. 이 혼란과 책임감의 무게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밤마다 숨죽여 흐느꼈습니다. 나약하기만 한 내가 못내 미워서 숨죽이는 날이었어요. 그래도 이또햐 지나가지더군요. 해결과는 상관없이 익숙해지는 그런 날이었지요. 불행도 고통도 결국은 잊혀지는게 아니라 익숙해지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여전히 아프기는 하지만 고통에 익숙해지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건 그것대로 과히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들이 악몽처럼 지나 가고 결국 언젠가는 버텨지는 시간이 올거라 믿습니다. 그래도 당신에게 사랑받았다는 기억이 버팀목이 되어주니 고맙기도 합니다. 우리가족은 여전히 가족입니다. 둘뿐인 그래서 서로 마주보고 기대어야만 버티어 낼수 있는 가족입니다. 그 중심에는 당신과의 추억이 기둥처럼 버텨주겠지요?


다시 일어서보려고요.

당신을 위해, 나를 위해, 우리를 잃지 않기 위해 다시 힘을 냅니다. 곁에 있을때 열심히 사랑한다고 말 할걸 그랬습니다.  당신이 옆에 없는 오늘, '사랑해'라는 말을 사진이나 쳐다보며 주절대고 있습니다. 이말은 아들의 귀에 들려 주어도 좋겠습니다. 그렇게 둘이 기대어 살아 남아 보겠습니디.


기어이 전달되지 못하는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당신을 잃고 가족이 해체되었다고만 생각했어요. 어리석게 혼자의 마음만 들여다보느라 그랬겠지요. 아이의 행패아닌 반항에 이제야 내 가족이 여기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당신의 납골당 앞에서 흐느끼는 아들을 안으며 다짐합니다. 꼭 이 가족을 지키겠습니다. 해 낼게요. 그곳에서 웃으며. 기특해하며 꼭 지켜봐 주세요. 그래서 우리가 다시 만나는 그날에 잘했다고 잘버티어주었다고 안아주며 머리를 쓸어주세요. 그거면 됩니다.

오늘도 편지를 쓰다가 꺼이꺼이 울어버렸지만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아프지 않은 날이 오겠지요.


삼년,

눈 깜짝할 사이 같지만 지긋지긋했던 삼년,

나는 내내 울기만 했군요. 오늘은 당신께 또 다시 약속합니다. 아이와 다시'우리'가 되어 '우리 가족'으로서 살아남겠습니다. 아니 잘 해보겠습니다. 당신은 이제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결국 살아남아 행복해져 보겠습니다.

그래도 되겠지요? 아니 그래야겠지요?


그렇게 어이없이 떠나가 버린 당신이라도

여전히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많이 보고 싶어요.

그리운 당신은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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