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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뚜 May 08. 2024

책을 덮다 그리고 기다리다

독서광은 아니다. 그냥 좀 멋 내느라 책보는 시늉은 했다. 꽤 오랜시간을 말이다. 줄을 긋고 필사를 하며 나름 감명받은 척도 해보았다. 종이책 보는 사람이 자꾸 줄고 출판업계는 불황이라는 뉴스에 결심도 했다. 한달에 최소 두권이상의 도서는 구입하자고 목표도 세웠더랬다. 덕분에 서점 앱의 우수 회원쯤은 되었다.


책을 읽다보면 생각이 많아지고 생각이 많아지면 글이 쓰고 싶어진다. 생각을 어딘가에 쏟아내고 싶다는 갈증은 꽤 큰 용기를 앞세워 펜을 들게 만든다. 그렇게 발전한 글쓰기는 가끔씩 억눌려있던 욕구를 자극하고 폭발시킨다. 욕구분출로의 글쓰기는 자주가 되고 습관이 되었으며 매일이 되었다. 꾸준한 빗방울이 바위를 뚫듯이 매일의 습관은 성과도 만들어 낸다. 쏟아냈던 글이 만족스러운 틀을 만들어 낸다. 쌓인 시간으로 무명의 글쟁이가 된다. 그런 모습에 으쓱거리는 내 꼴이 또 좋았다. 쏟아붓고 만족하니 일거양득이다. 약간의 자만과 적당한 자존감이 만들어지는 과정, 그것이 나에게는 글쓰기의 시간이었다.


책과 글은 사진과 여행만큼이나 단짝이었고 그 모든것을 섭렵하던 나는 안방의 작가님이다. 누가 인정하고 말고는 차후의 문제였고 나는 나에게 도취된다. 대부분의 취미생활도 그러할 것이다. 도취의 즐거움은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글은 정보이고 삶의 지침서였으며 위로였고 따뜻하게 마음을 데우는 행복이다. 마치 한겨울 군고구마나 붕어빵처럼 나를  유혹하더니 결국은 중독시킨다. 그 속에서 지내는 내가 기특하고 조금은 지성인이 된 게 아닌가하는 오만도 부려본다. 글과의 동거동락은 자존감의 재창조과정이다. 어찌 집중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말이다. 적어도 내가 잘 할수있는 한가지를 찾아냈다는 만족감은 어떤 것도 대체불가하다.

본인이 작가라며 자신의 글을 자랑하는, 누가봐도 아마추어인 누군가를 만나면 나 자신을 돌아보는 반면서생의 기회로 삼기도 한다. 유치하면서도 귀여운 자기애는 투자한 시간과 아마추어적 실력의 향상에서 오는 것임을, 나도 그러함을 알기에 그들에게서 나를 투영한다. 그렇게 인생의 한 부분을 책과 글로 채우며 살았다. 교만이라는 양념도 적당히 버무려가면서.


순탄하기만 할 것 같았던 도취에서 깨어나던 순간은 예상하지 못했던 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인생의 커다란 시련앞에서 무너지지않고 버텼던 힘 또한 매일 쏟아낸 하얀 종이 위의 활자였다. 그때는 나의 유일한 벗이었고 위로였으며 아낌없이 옆을 지켜주는 진통제였다.


너무 쏟아부었더니 그랬나?

질량보존의 법칙 때문인가?

고갈의 시기도 다가온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덜컥 겁이 났다. 영원할 것 같던 사랑이 변하는 것처럼 나의 변절은 순간에 이루어졌다. 모든 아픔과 슬픔을 쏟아버리고 나자 더 이상 행복한 글은 쓸수 없을 것 같았다. 길 잃은 아이처럼 백지 위에서 방황하는 펜이 서글펐다. 번번히 우울하고 슬픈 글이 되고야 마는 결과가 못견디게 싫다. 영원히 그럴까봐 두렵기도 했다. 그래서 놓아버렸다. 놓아버리니 번민도 놓아지더라. 그리고 평안하다. 두려움을 대체하는 감정을 만들며 변명처럼 손을 놓는다.

그렇게 나는 배신자의 길로 접어들었다.


무력함과 상실감에도 무엇이 부제한 것인지조차 깨닫지 못했고 평안한 무료함이 늘어진 패배자마냥 그렇게 시간을 잡아먹고 남은 삶을 줄여가고 있다.


아직은 돌아가지 못하는 내 사랑의 변절이지만 언젠가는, 하는 막연한 그 믿음으로 버틴다. 그 곳에 여전히 있을 어떤 것을 믿으며, 아직은 펼치지 못하는 책을 매번 구입해 책장에 꽂아둔다. 그것들의 위로가 달콤하다는 것을 잊지못한 나의 기억이다.


그리고,

책을 흠모하는 나의 진심이다.


놀라운 상상력과 성숙한 인생론을 가진 작가와 예쁜 디자인의 표지와 부드럽게 넘어가는 종이, 새 책에서 나는 향,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성취감, 이 모든 것이 좋다. 머리와 심장을 움켜쥔 내용이 좋아 백지를 꺼내 서걱거리는 연필이 달릴때면 그런 내가 좋다. 책에서 남의 글을 읽고 내 글이 되어 달리는 그때가 참 좋다. 사랑했었다. 그런 순간들을.


그래서,

기다린다.

아직은 조금 밉지만 다시 돌아올 그 사랑의 순간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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