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강사와 관련해서 몇 가지 상담할 것이 있다며 미팅을 요청한 이가 있었다. 같은 대학에서 일하는 동료 강사와 함께 한 차례 식사를 한 일이 있어 궁금한 것은 그때 다 해소된 줄 알았다. 그런데 더 얘기할 것이 있다니...
우리는 호찌민 1군의 사이공 강이 바로 보이는 카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의 요지는 이러했다.
"공철 씨가 돈을 많이 벌 수 있는데 너무 공부를 맹신하니까, 안타까워서 그래요 내가. 무언가를 시작할 때 꼭 그 분야 공부를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나는 책을 굳이 안 읽어요. 행동하는 주의죠. EPS(외국인 대상 고용허가제)쪽으로 학생을 모집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어요. 공철 씨 유튜브를 10개 정도 봤는데, 그렇다고 뭐 자세히 본 것은 아니고, 뭐 제가 남의 일상에 그렇게 관심 있는 건 아니거든요. 어쨌든 보니까 공부하고, 책 읽고 이해가 됐다 싶을 때 시작하는 성향이더라고요. 답답한 면이 있어요. 베트남어도 배우러 학교에 다니시던데 저는 통역 쓰거든요. 통역 쓰면 되는데 굳이 학교까지...그 시간을 돈 버는 데 쓰시면..."
나는 잠자코 듣고 있었다. 난데없이 쏟아내는 나에 대한 혹평 속 감춰둔 저의가 잘 파악이 되질 않아서였다. 그와 나는 4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는데,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질문하는 데 썼다. 그리고 대화 말미에 이르러서야 겨우 두 번 본 사이에 이렇게나 나를 깎아내린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얘기하신 것처럼 제가 이쪽을 잘 모르기도 하고, 저는 모르면 공부하고, 찾아보면서 가느라고 늦어요. EPS가 돈이 잘 벌린다면 해 보시고 좀 가르쳐 주시면 어때요?"
"안 그래도 사촌 형 통해서 EPS쪽을 하려고 해요. 그런데 형도 나도 한국어교육 쪽을 몰라요. 그게 고민이었는데 사촌 형한테 공철 씨 얘기를 했어요. 이 사람은 공부를 많이 한다, 책도 많이 봐서 우리가 모르는 것을 알려 줄 수 있다고요. 그리고 공철 씨가 중국 시장이 힘들면 우리가 가서 도와주면 되잖아요."
"뭔가 모순 아닌가요? 저한테는 공부를 많이 해서 답답하다고 했으면서, 형한테는 가서 이 사람이 공부를 많이 해서 우리가 모르는 것을 알려 줄 거라고 하고. 하하하. 이 정도면 가스라이팅 아닌가요? 중국 시장은 제 팀원들과 뛰어도 충분합니다. OO 씨 베트남 시장 뚫는 것도 바쁘실 텐데, 제가 뭐 해 보지도 않고 중국 시장 힘에 부친다고 도움을 청하다뇨. 괜찮습니다."
"아...."
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이렇게 되면 제가 생각한 시나리오랑 다른데요. 저는 베트남 시장이 힘들면 공철 씨 통해서 중국 시장도 들어갈 생각이었거든요."
'아, 그래서 나를 공부를 맹신하는 답답이로 평가절하했구나. 혹시 중국 시장 진출할 때 협상할 일이 생기면 내가 요구하는 조건을 별것 아닌 것이라면서 후려치려고.'
우리는 살면서 생각보다 이런 일을 자주 겪는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내게서 값나가는 물건을 마치 헐값인 것처럼 꾸며내는 말들과 상황들 말이다. 그리고 어느날 나 또한 그 말들과 상황에 동조하면 지체없이 본인이 그것들을 차지하고는 값있게 써버리고 만다.
기억해야 할 것은, 진정 나를 아끼는 사람들은 내게 쉽게 조언하거나 충고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혹시라도 불필요한 오해가 생길까봐 내가 조언을 구할 때까지 충분히 기다려 주는 것이다.
'참 세상 살기 녹록치 않다'는 혼잣말을 되뇌며 피우지도 않는 담배 생각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