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철 Jan 17. 2024

걔들도 때가 되면 자리에 앉아

수수료 협상이 끝났으니 이제 그만 공원을 걸으며 좀 환기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 회장이라는 분은 도대체 우리를 놔줄 생각을 않는 것이었다. 저녁에 미팅이 있다고 탁자 위에 펼쳐놓은 문서를 정리하며 신호를 보냈고, 그래도 말을 끊을 생각을 안 하시기에 역시 펼쳐놓은 명함을 거두며 다시 한번 짐을 정리했다. 


"중국에 가셔서 그림을 잘 그리셔야 해요. 사업은 교육하고는 달라요. 나이도 적지 않게 먹은 것 같은데 미래를 생각해야죠. 재산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업은 돈이 있어야 버티는 거예요. 옛말에 교수들하고는 사업하지 말라는 말이 있잖아요. 교수들은 사업하면 100% 다 망하더라고요. 뭐 교수들 하고 계신데... 뭐 시간 강사가 뭐...어차피 잘릴 거. 그게 사업 알지도 못하면서 사업 한번 해 볼까 하는 생각들이 있어서 그래요."


'대체 이 자는 우리와 뭐 하자는 것일까? 수수료를 3:7 불렀으면 당신 측 입장에서는 손해 보는 게 아니다. 부를 만큼 불렀다. 그런데 우리에게 이런 대접을 한다고? 우리와 계약하기로 한 중국 가맹점 개수가 몇 개인지도 모르면서?'


나는 점점 불쾌해지기 시작했다. 어제 술자리에서부터 내 눈을 빤히 쳐다보는 회장의 눈을 한 번도 피하지 않고 끝까지 미소를 띠고 쳐다보았다. 자기 직원들 앞에서 상대를 나이로다가 재산으로다가 말로다가 깎아내리고 누르는 사람은 그만큼 조직 내에서 본인 입지가 별로인 것이다. 상대를 제압하는 듯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자기 직원들에게 본인의 위세를 과시하고 싶은 심리일 수 있다. 혹은 스스로 불안한 심리가 있어 굳이 일부러 과장되게 상대를 깎아서 본인을 올려세우려거나.


"둘 다 착하게 생기셔서 뭐 어떻게 사업을 하시려고. 사업은 착하게 생기면 못 해요."


'하, 이제는 생긴 것 가지고도. 선을 넘고 계시네.'


이 사람은 성정이 급하고 자존심이 매우 강한 사람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특히 자기 직원들이 있는 앞에서 되받아쳐 무안을 주는 말을 했다가는 우리가 호찌민에서 2시간 비행기 타고 온 목적이 물거품이 될 것이었다. 나는 그가 하는 말마다 받아치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아까 들어올 때 봤던 학원 건물을 복기하며 교실 개수를 헤아려 보았다. 그리고 수업 시간과 교사 수를 물었다.


"우리는 8시부터 5시까지 수업하고, 교사는 한 40명 되죠. 센터만 6개예요. 우리가 베트남에서는 제일 커요. 1등이라고 1등. 학생만 800명이에요. 우리가."


거짓말이다. 학교든 학원이든 적자를 내고 있는지 흑자를 내고 있는지를 보려면 세 가지만 알면 된다. 


교실 개수, 수업 시간, 교사 수  

 

이곳이 본점으로 제일 크다고 했는데, 아까 화장실에 가면서 살펴보니 어림잡아 약 35개의 교실이 있었다. 한 클래스가 45분이고, 한 번에 세 시간씩 수업이라고 했으니 말은 3시간이지만 두 시간 수업을 하고, 15분을 쉴 것이었다. 그렇다면 오전에 최대로 돌릴 수 있는 수업은 3시간짜리 두 타임이다. 


흘깃 손목시계를 보니, 오후 2시, 그런데 학생이 없다. 수업이 5시에 끝난다고 했으니 오후 수업은 2시 반에나 시작할 것이었다. 그렇다면 2시 반부터 5시까지 겨우 한 타임만 돌리는 것이다. 이렇게 교실이 많은데 하루에 수업이 세 타임뿐이라고? 게다가 직장인은 5시에나 일을 마치는데 5시에 문을 닫는다는 얘기는 성인 학습자는 하나도 못 잡고 있다는 소리였다. 소비 능력은 직장인에게 있다. 그런데 그런 직장인을 못잡고 이 많은 교실을 겨우 5시밖에 안 돼서 놀리기 시작한다고?


교사 수도 40명이라는 게 말이 안 된다. 값싸게 주변 대학생들을 데려다 파트타임으로 돌리고 있거나 정규직이라면 팡팡 놀리고 있거나 둘 중 하나였다. 나 한 명이 1:1 실시간 수업을 풀로 뛰었을 때 한 달에 80명까지 케어가 가능했다. 그러니까 여기 교사가 40명인데 학생이 800명밖에 안 된다는 것은 한참 잘못 된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1월 방학 기간이라 학생들이 오전 수업이 가능한 것일 텐데 개학을 하면 학생 수는 더 적어질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여긴 학원업으로는 100% 적자를 내고 있을 터였다. 상당수의 교실을 빈 교실로 놀리고 있을 거였다. 그렇다고 납치의 위험이 있어 학부모들이 꼬박꼬박 자녀 등하교를 시키는 이곳 베트남에서 학원 이미지 때문에라도 아무에게나 교실 임대를 줄 수도 없을 거다. 또 사실인지 확인은 어렵지만 정말로 센터가 본점 외에도 몇 개 더 있다면 경비에, 관리비에, 임대료에, 선생 월급에, 각종 세금에 오히려 수업을 할수록 손해가 나고 있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니까 아마 이렇게 우리를 앉혀놓고 끝도 없이 잔소리를 늘어놓는 것은 스스로 미래에 대한 불안함 때문이거나 정말 할 일이 없거나. 


'우리 걱정이 아니라 당신 회사 걱정을 하셔도 모자랄 판인데...'


나는 생각을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내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했음에도 회장은 스타벅스 커피를 사주겠다며 우리를 차에 태워 스벅으로 안내했다. 내게는 더이상 사교에 쓸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았는데 정말이지 환장할 노릇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회장 혼자 있을 때는 체면을 내려놓고 솔직한 얘기를 하지 않겠는가 싶기도 했다. 커피숍에 도착하자마자 하고 싶었던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보니까 한국어 포스터만 있던데, 한국어만 가르치시나요? 교실 규모를 보면 다른 언어를 가르치셔도 충분히 소화가 될 것 같은데."


"가르치고 싶죠. 그런데 인프라가 없어요. 중국어랑 영어도 가르치고 싶은데..."


회장은 말끝을 흐렸다. 아마 중국이나 영국, 호주, 미국 쪽에는 유학을 보낼 수 있는 인프라가 없는 모양이었다. 


"다른 곳에 교실 임대를 하고 계시는 건가요? 접근도가 좋고 조용해서 개인 사무실로 쓰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 같기는 한데.."


"뭐 그렇게 하고 싶기는 한데..."


회장은 또 말을 흐렸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이야기를 할수록 아쉬움만 커졌다. 자식 자랑과 교수들 별거 없다는 이야기와 돈이 최고라는 그런 류의 말들...  


우리 엄마가 아버지한테 늘 당부하시는 말씀이 있다.


"당신, 나이 좀 먹었다고, 지위 좀 생겼다고 어디 가서 젊은 애들 무시하고 충고랍시고 말 함부로 하지 말어. 걔들도 때 되면 돈 생기고 자리에 앉을 애들이야. 나중에 거꾸로 무시 안 당하려면 당신 젊었을 때 생각해."


아버지가 마을 이장이 되었을 때에도 농협 이사가 되었을 때에도 엄마는 아버지의 높이 솟은 어깨뽕에 초라도 치듯 귀에 딱지가 앉도록 잔소리를 했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어쩐지 엄마가 그토록 잔소리를 해댔던 진짜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호찌민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나는 팀원에게 말했다.


"저기 5년 못 버텨. 5년 뒤에는 저 건물 팔지도 못하고 동동거릴 거야. 값이 떨어지면 우리가 사 버리자."


  






   



 

작가의 이전글 베트남에서 한국어 강사 시급은 얼마일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