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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정 Jan 20. 2024

오너가 새벽에 일어나는 이유

 회사 생활을 할 적에 나도 '갓생'이라는 걸 살아보고자 몇 번이나 미라클모닝을 시도했었는데 번번이 실패를 했더랬다. 돌이켜보면 굳이 미라클모닝을 시도할 필요가 없었다. 피곤하게 왜 새벽에 일어나냔 말이다. 본인이 편한 시간에 자기계발을 했어도 되었다.


 요즘 미디어에서 하도 '창업창업 N잡러N잡러' 해서 회사만 다니는 것이 마치 별것 아닌 것처럼, 심지어 뒤처지는 것처럼 치부되는데, 주5일 회사를 다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9시간을 일터에서 머물고 다시 집으로 귀가하는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이 작업은 대단한 지구력을 요한다. 게다가 내가 선택한 적 없는 사람들과 어떤 목표를 향해 함께 시간과 에너지를 투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를 견디는 것도 대단한 인내심을 요하는 작업이다. 회사원으로 사는 것도 절대 쉽지 않다는 말이다. 나의 경우 능력이 넘쳐서가 아니라 회사원으로 '못 살아서' 창업을 택했다. '잠 잘 때도 돈이 들어오는 수익 파이프 구축'이라는 그럴 듯한 말로 N잡을 부추기고 새벽 잠을 깨우는 한국 사회가 불안해 보인다. 끊임없이 나를 소모시키는 무한 경쟁의 굴레로 서로가 서로의 멱살을 잡고 끌고 들어가는 것 같아서 말이다.  


 창업을 하면서 난 어쩔 수 없이 새벽 4시 기상을 하게 되었다. 오전 8시부터 각종 미팅 요청과 회의와 고객 문의와 강의가 쏟아져서 내 공부를 할 시간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나를 제외한 모든 팀원이 중국인이고, 고객은 중국 대륙과 대만, 홍콩, 싱가폴, 말레이시아, 한국에 있는 화교들이며, 강의를 중국어로 하다보니 중국어 실력이 반드시 좋아야 하는데 언어는 하루라도 공부하지 않으면 퇴보가 시작되므로 새벽에 꾸역꾸역 일어나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오전 8시부터는 팀원과 같이 쓰는 시간이고, 고객에게 지불하는 시간이고, 미래의 돈으로 환산하는 시간이어서 나를 고양할 틈이 없다. 새벽에 일어나 회계와 세금, 마케팅, 중국어, 베트남어 공부를 하면서 소모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의 무능에 질겁하는 순간을 마주할 때면 새벽에 눈을 뜨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까 오너는 회사를 운영하면서 본인이 무력한 순간을 덜 목도하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다. 회사에서 본인이 마지막 보루이기 때문이다. 본인마저 해결할 수 없으면 대체로 손해로 그 문제를 감당하는데 이런 일이 잦으면 직원에게 월급을 못 주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새벽 외의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미라클 모닝을 해야 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새벽에 방해 받지 않는 시간 속에 고요하게 앉아서 내 공부를 하다보면 마음이 채워지는 느낌을 받는다. 아직은 초라한 규모인지라 한국 파트의 마케팅, 홍보, 콘텐츠 기획, 강의, 편집, 계약에 고객 상담 전화도 내가 받는 때가 많은데 특히 중국 대륙의 어머님들과 상담을 하다보면 사람에 지쳐서 저녁에는 밥숟가락 뜰 힘조차 없을 때가 많다. 진짜 수업 상담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녀가 얼마나 대단한 학교에 다니고 있고, 앞으로 어떤 학교에 유학 보낼 계획인지를 자랑하고, 그것이 과연 맞는 선택이라는 지지를 얻기 위한 전화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어떤 어머님은 자기 집 재산부터 남편의 직업까지 묻지도 않 TMI를 40분 동안 총알같은 속도의 중국어로 쏟아내기도 한다. 그런 전화가 유독 많은 달은 수업이 제일 적은 하루를 골라 더이상 수업이 못 들어오도록 신청을 막는다. 그리고 오늘이 그런 날이다. 

2B Ngô Văn Năm, Bến Nghé, Quận 1, Thành phố Hồ Chí Minh, 베트남

 죽을 것 같아서 나왔다. 하늘이 보이는 카페에 앉아서 책과 밀린 경제 잡지를 읽는다. 그러다 브런치도 쓰고, 내가 지금 맞게 가고 있는 것인가 반성도 한다. 세상에 모두에게 해당하는 정답이란 없다. 내가 나만의 답을 찾고 실행하고, 수정하고 계속 재시도 하는 과정이 바로 삶이다.  


 '갓생 사는 미라클 모닝', '지금이 집 사기 제일 좋은 때', 'N잡러로 살아야 하는 이유', '지금 반드시 사야 하는 주식' 등 미디어에서 떠도는 온갖 불안감을 조성하는 메시지들에 당신을 맡기지 말기를 바란다. 당신의 삶을 당신이 원하는 방식과 가슴으로 살기를. 결국 그게 남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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