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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정 May 06. 2024

너는 뭣도 아니면서 뭐 된 것처럼 말하고 행동해

한 스무 번 퇴짜를 맞았던가?


‘비즈니스 비자 통지서 나옴’


중국 대련팀장 쉬엔이 지난 2월부터 비자를 신청했는데 스무 번 가까운 빠꾸를 맞고 두 달이 다 되어서야 겨우 허가증을 받았다며 통지서를 보내왔다. 이 서류를 가지고 한국에서 취업 비자를 받아 들어오면 1년은 자유롭게 왔다갔다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중국 대학교에서의 면접 후 얼마나 어렵든 반드시 회사 이름으로 비즈니스 비자를 받아버리겠다는 의지가 불타올랐으나 이 비자가 나오기까지 19번 상심하고, 짜증내고, 좌절하기를 반복하는 중국팀을 보면서 미안함이 쌓여 그만둘까 하는 마음이 들던 찰나 취업 비자 허가 통지서가 나온 것이다.     


중국팀이 비자 문제를 해결할 동안 나는 한국 수도권 대학을 돌며 우리 학생들이 참고할 입학 전형 팸플릿을 받으러 다니고, 지방 시청, 구청에 국제협력 사업 제안서를 보내며 바쁘게 지냈다. 학교에 갈 때마다 무시를 당하기 일쑤였고, 지방정부 관광과 담당 공무원은 올해 이미 MOU 맺을 것 다 맺었고, 당신들에게 줄 예산은 없다며 제안서를 받아보지도 않고 전화로 거절하려 들었다. 맷집만큼은 자신 있었는데 이것도 사방에서 매일 당하니 존버 정신도 곧 바닥을 보일 것만 같았다.      


“홈페이지에 PDF반이 있는데 이걸 꼭 종이로 받아 갈 필요가 있나요?”

“해당 대학에서 나온 실제 팸플릿을 보여주면서 입학 관련 상담을 하면 학생들이 더 관심 있어 하는 것 같더라고요.”

     

“우린 그런 거 종이로 안 만들어요.”

“아, 그렇군요. 그럼 입학료, 등록금, 전공이 소개된 내용은 어디를 참고하면 될까요?”

“학교 홈페이지 PDF 보시면 되잖아요.”     


“뭐라고요? 어디시라고요?”

“중국 대련에 있는 아태미래교육이라고 하고요. 중국인 대상으로 한국어 교육을 하고 있는 기관입니다.”

“근데 우리는 지난달에도 벌써 MOU를 두 건이나 했고, 이번주에도 MOU가 또 있거든요. 예산 줄 게 없어요.”

“저 예산 달라고 한 적 없는데요. MOU를 맺자고 한 적도 없고요. 제안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어서 메일 주소 부탁드린다고 전화한 거예요. 돈 달라는 게 아닙니다. 사업 제안서를 받아보시면 아시겠지만 저희가 해당 시에 있는 화장품 클러스터와 연계해서 뷰티 기술을 배우고 싶어하는 중국인들을 유입시키려는 거예요. 시 예산 받으려는 게 아니라 현지 인프라만 도와달라는 겁니다. 외국인들이 시에 들어와 소비를 하고 해외에 시에 있는 자원들을 홍보하면 시 입장에서도 좋은 거 아닙니까?”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고, 규모도 작으니 뭘 해도 디폴트값은 무시와 거절이었다. 어느 시 관광과 공무원과 통화를 마친 뒤 얼굴이 벌게져 씩씩거리고 있는 나를 보던 공동대표는 따뜻한 물을 한 잔 떠다 주었다. 그리고는      

“맥주 먹고 싶다. 맥주나 한잔 하러 가자.”     


했다. 맥줏집에 앉아 아주 신중하게 안주를 골라 시킨 후, 기다렸다는 듯 그동안 팸플릿을 받으러 각 학교를 돌면서 무시당했던 일이며 오늘 어느 공무원과의 통화에서 열받은 일이며를 으다다다다 쏟아내다 말고 갑자기 풀이 죽어 툭-      


“나 진짜 홍콩 갈까?”     


했다. 얼굴 쳐다보고 하기는 조금 민망해서 눈앞의 나무 테이블 모서리에 시선을 고정하고 흘리듯이 말했다.  

    

“너한테 원장 자리 제안했다던 그 센터?”

“응. 거기는 이미 대학들하고 MOU도 다 맺었고, 수수료 협상도 끝난 데다가 비자도 바로 내줄 수 있대. 거기 가면 나는 진짜 강의하고, 책 만들고, 사업 기획을 하면 되잖아. 나를 도와줄 인력들도 있고. 바깥에서 ‘안 된다 안 된다’ 하는 것들을 설득해서 ‘될 거다 될 거다’하는 것도 벅찬데, 중국에 있는 팀원들까지 내가 원하는 속도와 양만큼 퍼포먼스가 안 나와서 어떤 날은 ‘이럴 거면 집어치워’가 목구멍까지 나올 때도 있어. 사실 난 비자도 두 달이 넘게 걸린다는 게 이해가 안 돼. 정말 중국 간첩법이 엄격해져서만의 문제일까? 애초에 서류를 잘 준비해서 넣었으면 19번이나 빠꾸를 맞았을까? 이렇게 날아가는 두 달이 아까워서 자다가도 침대에서 벌떡벌떡 일어나. 나는 체면 중요하지 않아. 얼마든지 홍보 티셔츠 입고 대학교 앞에서 광고지 나눠주는 것부터 틱톡 라이브까지 다 할 준비가 돼 있다고. 추방당할 게 무서워서 아무것도 안 하고 방구석에서 서류나 만들고 있는 것보다 1명이 됐든 10명이 됐든 학생들 끌어다가 문화활동도 열고, 설명회도 열어서 센터에 사람이 왔다갔다 하게끔 만드는 게 더 낫다고. 문제가 생기면 그때 해결하면 되잖아. 지금 내가 한국에 발 묶인 시간이 얼마니 벌써. 너무 답답해.”     


의기소침해져 테이블에 엎드린 채 애꿎은 맥주잔 손잡이를 툭툭 치고 있는 날 공동대표가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물었다.      


“그나저나 우리 지방정부 협력 프로젝트 진짜 할 수 있을까?”

“뭐라고? 지금 그걸 걱정해? 내가 국제행사를 몇 개를 해 봤는데 겨우 외국인 몇 명 데리고 와서 뷰티 교육시키고 인증서 발급하는 걸 못할까 봐를 걱정해? 오빠. 그건 일도 아니야. 걱정하지 마.”     


내가 양손을 허공에 휘저으며 호언장담을 하니, 공동대표는 팔짱을 낀 채 킥킥댔다.     


“나는 네가 좀 멋있다고 생각될 때가 언제인지 알아?”

“내가 멋있을 때가 있어? 언제인데? 말해 봐!”     


두 손으로 깔대기 모양을 만들어 귀에 붙이고는 익살스럽게 쳐다보자     


넌 뭣도 아니면서 뭐 된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잖아. 난 너 아까 시청 공무원이랑 통화하는 거 듣고 깜짝 놀랐어. 우리가 뭐 대기업이나 된 줄 알았잖아. 그런 거 알지? 기세, 자신감. 아무것도 없는데 진짜 될 것 같은 아우라. 너는 이미 그 사업이 된 것처럼 말해.”

“크~ 이건 오빠가 크게 오해하고 있는 거야. 나는 뭐가 된 것처럼 생각해서 말하는 게 아니라, 이미 됐다고 생각하고 말해. 아이참, 관찰하려면 좀 더 자세히 봤어야지.”

“푸핫, 이미 됐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거였어?”     


공동대표는 예상치 못한 대답에 이마를 쳤다.     


“그럼, 봤잖아. 내가 매일매일 얼마나 많은 거절과 무시를 당하면서 살고 있는지. 스스로라도 이미 됐다고 생각하고 나를 믿어야지. 안 그러면 누가 내 말을 들어. 그때 나 메타버스 아카데미 입학할 때 기억 안 나? 내가 이 입학생 250명 중에서 무조건 1등 할 거라고. 그래서 페이스북이랑 마이크로소프트 견학 꼭 갈 거라고. 그때 오빠는 거기서 내가 1등 안 하면 누가 하겠냐고 말했으면서 진짜 장관상 받아오니까 깜짝 놀랐잖아. 사실은 진짜 1등 할 줄 몰랐다면서. 나는 이미 됐다고 생각하고, 안 되면 죽어버리겠다고 생각하고 일해.”

“그래. 우리 여기까지 온 것도 이미 대단해. 공철아. 1년 전 이맘때 너는 베트남에 있었고, 1년 뒤에 우리가 중국에 가맹을 내고 사업을 시작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었잖아. 생각만큼 안 돼서 답답하겠지만 이만큼 온 것도 대단한 거야.”     


맞다. 1년 전, 시장조사를 하겠다며 무작정 호찌민에 들어가 현지 대학 강의에 사설 학원 강의, 개인 과외까지를 뛰며 고군분투할 때는 꿈에도 몰랐다. 1년 뒤 내가 중국에 가맹을 낼 줄.


“그렇지?”

“그럼.”

“그럼 앞으로도 이미 됐다고 생각하고 더 힘내볼게.”      


벌컥벌컥 맥주를 들이키며 홍콩센터장에게 했던 말들을 생각했다.     


“홍콩으로 오세요. 수익은 학생 수 기준으로 쉐어하시고요. 지내실 곳도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사람이 사업자등록을 냈으면 무라도 썰어야죠.”

“공철 씨가 홍콩센터 중국 지사를 하는 방법도 있어요.”

“저희 꺼 한번 해 보고요. 죽을 만큼 뛰어봐야 후회가 없죠. 일단 한번 해 보고요.”

“하하하. 네. 응원하겠습니다. 종종 연락주세요.”     


'그래, 공철. 여기까지 온 건  쉬웠냐? 가만히 생각해 보면 너 이거 말고는 하고 싶은 것도 없잖아. 이렇게 앞으로 계속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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