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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리스너 미라신 Dec 22. 2020

기분 좋아

너의 하루는 온전히 너의 것


어린 시절 흥이 없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던 아이는 어느새 흥도 많고 감정 표현도 많아졌다.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신나는 것, 지루한 것 등 다양한 것을 경험한 42개월.

그중 가장 신났던 아이의 하루를 기록으로 남겨본다.



요즘 가장 자주 하는 경험은 자연체험이다. 귀농을 하고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귀농이 나쁜 선택이 아닌 좋은 선택이라고 여겨지는 건 모두 아이들 때문이다. 코로나로 어린이집에 가지 못하는 시간이 늘었지만, 덕분에 과수원에서 자연을 만나고 경험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자연 속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에 즐거워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귀농을 결정한 남편의 엉덩이를 토닥인다. “남편, 귀농하길 참 잘했어.”



전날 밤 할아버지&할머니 집에서 사촌 형과 잠이 들었던 큰아이를 다음 날 아침 과수원에서 만났다. 아침을 먹자마자 밖으로 뛰어나가는 아이. 과수원 일을 도와주시는 할아버지-오토바이를 타고 다니셔서 오토할아버지라고 부른다- 오토바이를 타고 신나 한다. 잘 놀아주시는 오토 할아버지를 아이들은 정말 좋아한다. 오토 할아버지의 오토바이를 타고 논길을 왔다 갔다 하며 경적도 울려본다. 그 모습에 17개월 둘째가 부러운 듯 ‘응응’ 소리를 내며 오토바이를 손으로 가리킨다.


오토바이를 신나게 탄 후 할아버지와 잠자리를 찾아 나섰다. 아직 잠자리채가 어색한 녀석은 잠자리채를 할아버지에게 넘기며 잠자리가 날아가는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할아버지가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시면서 잠자리를 잡아 주신다. 고추잠자리가 한창인 요즘, 끝이 빠알간 잠자리가 신기한지 잠자리 날개를 잡아 이리저리 살펴본다. 그리고 하늘로 다시 돌려보내 준다. 그러기를 여러 번, 자기도 잠자리를 잡아보겠다며 잠자리채를 들고 나선다. 이리 뛰고 저리 뛰어도 마음대로 되지 않아 머쓱한지 괜히 머리를 긁적인다.


농막에서 밥 먹고 정리 중인데 보라색 꽃 두 송이를 가져온 녀석. 엄마 선물이란다. 사촌 누나가 달라는데도 엄마 선물이라며 안된다고 엄마 줄 거라고 말하며 두 손 꼭 꽃송이를 쥔 모습이 정말 귀엽다. 조카가 자기도 꽃을 갖고 싶다고 우는 바람에 모두 밖으로 나왔다. 누나에게 줄 꽃을 따자고 했더니 저만치 달려가 길가에 피어난 예쁜 꽃을 한 송이 꺾는다. 그 모습에 또 오토할아버지가 산에 올라 여러 야생화를 한 다발 꺾어오셨다. 한아름 품에 안은 녀석이 이번엔 아빠에게 선물로 주겠다며 달려갔다가 실망해서 나온다. “아빠가 눈 감고 있어.” 어제 늦게 들어온 남편이 피곤해서 소파에서 잠이 들었나 보다. 실망한 녀석에게 꽃을 꽃병에 담아두고 이따 아빠가 일어나면 보여주자고 할머니가 달랜다. 그래도 안되자 메뚜기를 잡으러 가자며 화제 전환을 하신다. 메뚜기 소리에 “오예~”가 절로 나온다.


할머니와 논으로 메뚜기를 잡으러 가는 길. 갑자기 길에 멈춰 선다. 왜 멈추었는지 물으니 할머니가 혼자 빨리 가서란다. 손자에게 빨리 메뚜기를 잡아주고 싶으셨던 마음에 빨리 걸으신 건데, 아이는 할머니와 같이 걷고 싶었나 보다. 미안한 마음에 할머니가 한달음에 달려와 아이를 등에 업으신다. 할머니 등에서 신난 녀석은 이리가자 저리가자 소리친다. 수확이 끝난 논에서 톡톡 뛰는 메뚜기를 잡는다. 한 통 잡은 메뚜기를 이리저리 보다가 다시 돌려보내 준다. 등에 업은 손자를 꼭 잡는 어머니와 할머니 등에서 그저 신난 아이를 뒤에서 바라보니 마음 한 켠에 따스한 바람이 분다.


집에 돌아온 저녁. 저녁에 줌으로 토론 과제가 있어, 남편에게 아이를 맡겼다. 둘은 보기 힘들다는 말에 작은 아이는 내가 보기로 했다. 아빠와 밖에 나가 킥보드도 타고 먹고 싶던 케이크도 먹은 아이. 엄마를 위해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초콜릿라떼를 한 잔 사 왔다. 아이가 요즘 빠져있는 헬로 카봇 동영상 한 편 시청 후 잠이 들기 위해 모두 침대 위에 누웠다. 그리고 들려오는 아이의 한 마디.


“기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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