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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리스너 미라신 Feb 18. 2021

일단 보여줘 봐.

아들의 말발


대안학교에서 중고등학생들을 만나 상담을 하면서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일단 해봐'였다. 무수한 고민과 생각은 머리를 아프게만 할 뿐, 결론을 내려주지는 않는다. 무언가 고민이 있다면 일단 해보는 것이 정답일 때가 많다.


'일단 해봐'라는 말을 하면 꼭 받는 질문이 있다. '그러다 실패하면 어떻게 해요?' 

바로 그거다. 실패를 경험하기 위해 일단 해보는 것이다. 해보지도 않고 그것이 성공할지, 실패할지 어찌 알 수 있을까? 인생을 살면서 실패를 경험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실패를 자신이 경험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어쩌다 실패를 두려워하게 되었을까? 우리나라가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나라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단지 어떤 일에서 뿐만이 아니다. 이혼을 하면 인생에 실패했다고 말하고, 자녀가 좋은 학교에 들어가지 못하면 자녀교육에 실패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실패를 하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하며 산다.


종종 미디어를 통해 실패 후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많은 사람이 TV나 유튜브에서 실패를 말하지만 그걸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나도 실패를 통해 배워야지 하는 생각을 할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나는 저런 실패를 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무색하다. 내가 그렇다.


정말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일까? 분명 실패는 우리의 마음을 단단하게 해주고, 새로운 것으로 향하는 원동력을 주는 건 확실하다. 스웨덴과 미국에는 여러 기업의 실패한 사례를 모아둔 실패 박물관이 있다. 그리고 혁신적인 그룹으로 꼽히는 구글에는 실패한 서비스들을 모아놓은 구글 공동묘지가 있다. 실패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기리며 성공의 발판으로 삼는 것이다. 


▶ 구글 공동묘지 https://gcemetery.co




어제저녁, 나는 아이에게 휴대폰 보여주지 않기에 실패했다.


우리 부부는 아이에게 휴대폰을 보여주지 않는다. 

일단 눈과 자세가 나빠질까 걱정이 되서다. 태어나면서부터 엄마의 직장에 함께 다녀야 했던 첫째. 누구도 봐줄 수 없는 환경에서 아이와 놀아준 건 아기상어와 뽀로로. 그러다 보니 영상을 보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TV가 없는 우리집에서 아이가 영상을 접할 방법은 태블릿. 작은 화면을 보려다 보니 태블릿과 눈은 가까워지고 목은 거북목이 되고. 그런 아이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우리는 TV를 샀다.

두 번째 이유는 교육이다. 구성애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아이에게 초등학교 고학년 전까지 휴대전화를 사주지 않겠노라 생각했던 마음이 더 단단해졌다. 부모의 휴대폰으로 각종 채팅이나 성인물을 접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 우리 부부는 절대 휴대폰을 아이에게 주지 않는다. 사진이나 동영상을 볼 때는 같이 본다.


그런 아이에게 휴대폰이 허락되는 공간이 있다면 그건 할아버지 할머니 집이다. 할아버지를 만나는 순간 할아버지의 휴대폰은 첫째 차지다. 우리 부부의 교육관과는 맞지 않지만 그렇다고 막고 싶지는 않다. 세상 대부분에 예외가 있듯 아이 교육에서도 그렇다. 우리집 안에서는 우리가 세운 규칙대로 해야 하지만 우리집을 벗어난 순간 그 규칙은 언제든 변할 수 있다. 

특히 시부모님이나 친정부모님께 아이를 맡겼을 때 그렇다. 내가 아이를 사랑하는 것처럼 그분들도 자신의 손주를 사랑하신다. 나와 똑같은 사람이 세상 어디에 존재하랴. 그래서 나는 아이를 맡길 때 그분들의 방식을 존중한다. 나와 맞지 않는 것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아이도 그걸 안다. 할아버지 집에 가면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걸 아는 아이. 그런 아이의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그 조그마한 아이도 자신이 머무는 공간에 따라 자신이 만나는 사람에 따라 행동을 다르게 해야 한다는 걸 아는 것이다. 일종의 사회생활이 아닐까 싶다.


오늘도 할아버지집에서 저녁과 후식까지 든든하게 먹고 아이는 휴대폰으로 유튜브 삼매경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집에 가자고 하면 할아버지에게 휴대폰을 고이 반납한다는 것. 오늘은 휴대폰을 할아버지에게 드렸는데 할아버지가 그러셨다 보다. '집에 가서 엄마한테 보여 달라고 해.' 휴대폰을 반납하면서도 아쉬운 마음을 보이는 손주를 달래노라 하신 말이다. 집에 도착해 잠을 자려는데 아이가 말한다. '헬로 카봇 장난감 보여주세요.' '안돼'하니 곧장 반격이 들어온다. '할아버지가 엄마한테 보여주라고 했다고~' 옆에서 듣던 남편이 '할아버지가 잘못했네' 한다.


순간 머리에서 두 생각이 싸운다. 우리 부부의 규칙을 지키기 위해 보여주지 않을 것인가, 그 규칙을 깨고 보여줄 것인가. 나의 선택은 보여주는 것. 다만, 텐(10번)만큼 보여달라는 아이와 협상에 들어갔다. '한 번만 보는 게 어떨까? 텐은 너무 많잖아.' 그러니 아이가 말한다. '일단 보여줘 봐.' 할 말을 잃었다. 엄마가 보여주지 않을까 봐 일단 보여줘 보라는 아이의 말이 귀엽기도 하고, 아이의 늘어난 어휘력에 놀라기도 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의 규칙인가 할아버지의 말인가. 할아버지의 말을 지켜주고 싶었다. 할아버지는 나보다 위에 있는 사람. 아이에게 위계질서까지는 아니지만 누가 어른인지를 알려주고 싶었다. 엄마는 할아버지 말을 듣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4분짜리 영상을 골랐고, 영상이 끝나고 휴대폰을 껐다. 


아이 옆에 누워 생각해본다. 아이에게 한 번을 허락하지 않았다면 우는 아이를 달래는데 내 진을 빼고 아이도 불쾌했을 터. 나의 규칙은 깨졌지만 그 한 번으로 아이와 나 둘 다 편하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 아닐까. 비록 나만의 규칙을 지키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말이다. 어찌 육아에 성공만 있으랴. 이런 실패의 날도 있는 것이지. 이런 실패를 통해 다시 배우고 노력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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