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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혜미 Nov 12. 2021

만남의 자리, 그리고 연결

<쁘띠 마망>(셀린 시아마, 2021)

우리는 넬리의 환상을 따라가고 있는 것일까. 혹은 마리옹의 딸 넬리가 자신과 같은 나이인 과거의 마리옹을 만나면서 시공간이 허물어지는 영화를 보고 있는 걸까. 마리옹의 남편은 어떻게 두 사람(현재 넬리와 과거 마리옹)을 한 공간에서 만날 수 있었을까.그러나 <쁘띠 마망>은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많은 물음을 무색하게 만든다. 미래에서 왔냐고 묻는 어린 마리옹에게 “네 뒤로 난 길을 따라왔어.”라고 말하는 넬리를 통해 알 수 있듯 영화에서 넬리가 겪는 일이 현실인지 판타지인지 구분하거나 현재와 과거를 경계 짓는 일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따라서 넬리와 어린 마리옹이 만나는 과정에 이렇다 할 특별함은 없다. 영화는 그저 인물을 따라 움직일 뿐이다. 그러다가 영화는 두 번 정도 사물을 향해 앞으로 간다. 넬리가 어린 마리옹의 집이 할머니 집과 똑같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도망칠 때 울타리를 보여주는 장면, 그리고 복도에서 아무도 없는 부엌을 바라보며 그곳으로 다가가는 장면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처럼 영화에는 공간에 대한 사유가 존재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두 장면을 면밀히 살펴보고자 한다. 하나는 식탁에서 게임을 하던 어린 마리옹과 넬리의 모습 뒤로 아버지가 어떻게 등장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게임을 하는 두 사람의 얼굴을 원숏 클로즈업으로 교차하며 보여주다가 이내 넬리의 얼굴에서 멈춘다. 그리고 컷이 되지 않은 해당 프레임 안으로 아버지의 손이 들어와 음식을 내려놓는다. 뒤이어 멀어진 카메라가 두 사람을 함께 보여주면서 부지불식간에 시공간이 변화했음을 알린다. 남은 하나는 침대에서 이야기 나누는 어린 마리옹과 넬리의 모습 뒤로 이어지는 장면에 관한 것이다. 두 사람의 대화는 “내일 우리 집으로 가자”는 넬리의 제안에서 끝난다. 다음 장면은 할머니 집 침대에 혼자 앉아 있는 넬리의 모습이다.


우리는 이런 장면들을 덕분에 영화가 이질적인 시공간을 꿈이나 환상으로 치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고 느낀다. 영화가 판타지 문법을 통해 우리를 과거에 초대한 게 아니듯 우리 또한 직접적으로 드러난 시공간에 기대본다면 어떨까. 그랬을 때 우리는 두 사람이 서로를 보듬어주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먼저 두 사람이 놀이로 연결된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이를테면 마리옹이 어릴 적 혼자 가지고 놀았던 패들볼을 찾으러 들어간 숲에서 어린 마리옹을 만나는 일, 또는 연기 놀이와 현실 사이를 자유롭게 이동하는 장면들. 이는 아픈 다리 때문에 친구를 만나지 못하고 심지어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을 묻어야 했던 어릴 적 마리옹과 함께 놀이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영화는 외로워 보이는 넬리의 곁을 달래기도 한다. 잠자리에 누운 넬리 옆에는 누군가 있었거나 그랬던 흔적이 존재한다. 그러나 아침이 되면 존재와 흔적은 모두 사라진다. 엄마 마리옹과 같은 자리에서 잠들었던 다음 날 그는 넬리 곁을 떠난다. 어린 마리옹 집에서 할머니의 잠든 모습을 본 후 집으로 돌아와 같은 자리에서 잠든 다음 날도 넬리는 역시 혼자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 마리옹과 함께 잠든 다음 날 아침, 넬리는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깰 때까지 기다린 게 아닐까. 자신은 언제나 혼자였고 인사를 하지 않고 떠난 누군가가 돌아오지 않을까 불안했으므로. 영화는 그런 넬리를 안아주듯 마지막에 이르러 넬리 곁에 마리옹이, 마리옹의 곁에는 넬리가 앉아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상처로 남아 있는 과거이자 현재이자 미래인 모든 시간을 바라보는 것. 이를 위해 영화는 빈 공간을 자주, 또 오래 응시한다. 흔적처럼 부유하는 시선들은 우리 마음에 남아 감정의 직시, 그리고 관계의 변화를 생성한다. 듣는 자리가 아니라 만나는 자리에 넬리를 초대한 영화 덕분에 인물 간의 관계는 정해진 틀을 넘어 자매, 친구, 반려 등 그 무엇으로 언제든 탈바꿈한다. 시공간을 그대로 드러내며 인물 각자의 마음을 연결하고 보듬는 것, 이것이 바로 영화를 긍정으로 내다보는 이유이다.



[해당 글은 동국대학교 대학원신문 218호에 먼저 게재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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