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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현수 Dec 31. 2021

오십 년 전 일기장, 당신도 있나요?

이제 하루 밖에는 남지 않았지만 2021년 올해는 내겐 너무 특별한 해, 작가가 된 지 딱 20년이 되는 해다. 2001년에 동화 ‘생각하는 자전거’로 <샘터상>을 받았고, 이듬해인 2002년에는 소설 ‘끝이 없는 길은 없다’로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되며 작가의 길로 덜컥(!) 들어섰으니까.      


해가 바뀌고, 세월이 가고, 나이를 먹고……. 

이런 일에 그다지 유난 떨지 않고 무심한 편이지만 올해 그래도 나는 스스로를 많이 칭찬해 주고 싶었다. 

20년 동안 한눈팔지 않고 ‘작가 외길’을 걸어온 나를, 오로지 ‘한 우물’만 들입다 파며 살아온 나를……. 

이 외롭고 험난한 길에서 튕겨 나가지 않고 악착같이 살아남아 ‘어쨌든 작가’ ‘아무튼 작가’로서 딱 버티고 있는 나를…….       

50년 전 나의 일기장 여섯 권

등단 후 해가 스무 번이 바뀌는 동안 나는 60권이 넘는 동화 · 청소년소설 · 어린이지식정보책을 펴냈고, 전국 초·중·고교와 도서관에서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해마다 수많은 강연을 하는 작가로 성장했다. 동화작가가 되고자 하는 지망생들에게 동화창작 지도를 한 지도 어언 10년이 넘어 그중엔 나와 함께 동화작가의 길을 걷는 분도 셀 수 없을 정도다. 뭐 이 정도면 자화자찬한다 해도 설마 내게 손가락질하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물론 ‘작가 외길’을 걸은 지 30년, 40년, 심지어는 50년이 넘는 선배 작가들에 비하면 고작(!) 20년 남짓 작가로서 살아온 건 어쩌면 ‘새발의 피’ 일 지도 모르겠다. 또 어마어마한 판매 부수를 자랑하는 베스트셀러 작가와 견준다면 내가 20년 동안 이룬 성취 따위가 뭐 대수냐고 폄하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인생을 웬만큼 살아본 이들은 알겠지만, 이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20년이 넘도록 한 분야의 일에 주구장창 종사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울러 세상에는 ‘왕대박’ ‘초대박’을 터뜨린 베셀 작가만 존재하는 게 아니고 나처럼 ‘중박’ 내지는 ‘소박’ 정도만 소박하게 기록한 작가도 수두룩하거니와, ‘소박’의 기록조차 세우지 못한 채 새내기 작가 시절의 나처럼 묵묵히 작가의 길을 도 닦듯 걸어가는 이들도 쌔고 쌨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책 판매부수라는 것이 작가에게 얼마나 많은 돈과 명성을 가져다주느냐 하는 잣대는 될지언정 작가의 역량을 좌우하는 진정한 잣대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내 책 중에는 문학성이나 작품성이 대박(!)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미처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서’, 혹은 ‘출판사가 약해서’ 빛을 보지 못한 것들도 꽤 있다고 짐작한다. (이런 생각은 작가로서의 ‘근자감’과 정신건강을 탄탄하게 유지해 창작 활동을 부단히 이어가는데 퍽 도움이 된다.)     

 

그렇기에 나는 이 외롭고 험난한 작가의 길에서 20년 넘도록 살아남아 이렇게 딱(!) 버티고 있는 내가 너무나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그동안 나라고 어찌 한 눈 팔고 싶은 적이 없었으랴. 나라고 어찌 다른 우물을 파고 싶은 때가 없었으랴. 그래도 나는 어찌어찌 동화작가이자 소설가로 살아남았고 앞으로도 계속 전진해 ‘죽을 때까지’ 작가로서 ‘살아남고자’ 한다.(이 문장이 다소 이상하지만 뜻은 통하리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세상이 인정하든 인정해 주지 않든, 계속 작품을 발표하며 끝끝내 살아남는 것이야말로 작가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자 미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등단 20주년을 맞아 나는 올해 스스로에게 뭔가 기념될 만한 일을 하고 싶었다.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같은 건 별로 안 챙기는 성격이건만 등단 20주년을 맞은 나 자신에게는 특별한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이 과정에서 생각해 낸 게 바로 ‘다른 장르의 글쓰기’다. 그동안 내가 줄기차게 써온 동화 ·청소년소설· 어린이지식정보책 말고(아, 두 편의 웹소설을 발표하기도 했다. 사극 로맨스 웹소설.) 다른 장르의 글을 써보고 싶어진 것이다.      


그 하나는 에세이인데, 그냥 에세이가 아니라 내가 작가가 되고 작가로 살아남는 데 큰 영향을 끼친, 그러니까 어린 날부터 청소년기까지의 책 읽기를 중심으로 한 이른바 ‘독서 에세이’다. 국민학교를 다니던 어린 날부터 여중과 여고를 지나는 청소년기에 이르기까지 내가 읽었던 책들은 내가 신문기자를 거쳐 작가로 성장하는 데 단단한 디딤돌이 됐음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특히 내가 문학 작가 중에서도 동화와 청소년소설을 쓰는 작가가 된 데는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의 독서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나는 생각한다.      


또 하나는 동화작가를 꿈꾸는 지망생들을 위한 ‘동화 쓰는 법’, 그러니까 작법 관련 글이다. 연세대학교미래교육원을 비롯해 한겨레교육, 서울시50플러스캠퍼스. 전국 도서관 등에서 10년 넘게 동화창작 강의를 해오면서 내 나름대로 연구하고 터득한 동화 작법 핵심 팁들만 모아  틈나는 대로 브런치에 연재할 계획이니 동화작가 지망생들은 기대하시라!     


이런 생각으로 자료를 정리하고, 글 쓸 순서 등을 정하다 보니,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이 내 어린 날의 일기장 여섯 권이었다. 정확히는 지금으로부터 무려(!) 오십 년 전인 1972년 4월19일부터 1973년 1월 29일까지 내가 충북 청주에 있는 석교국민학교 6학년 시절에 쓴 일기장들이다. 


아버지의 전근으로 중학교 1학년 때 온 가족이 서울로 올라온 후, 내가 중고교를 거쳐 대학에 가고 신문기자가 되고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낳고 작가가 되고 60여 권의 책을 내며 오십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어린이와 청소년기에 썼던 그 많은 일기장들은 모두 사라지고 이 여섯 권만 달랑 남았다. 그렇기에 나는 이 일기장들을 보물처럼 간직하며 아끼고 사랑한다.      

왜냐하면 이 일기장들은 작가로서의 내가, ‘모태 글쟁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유일한 ‘증시물(證示物)이기 때문이다. 비록 소학교까지 밖에는 나오지 못했지만 늘 일기를 쓰고 글과 신문과 잡지와 책을 사랑하셨던 어머니의 피를 이어받은 덕에 내가 ‘산수(오늘날의 '수학'과목을 일컫는다)’와 ‘자연(오늘날의 '과학' 과목)’을 비롯한 다른 과목은 젬병이었어도 국어 과목과 글짓기만큼은 소질이 있어 어린 날부터 책 읽고 글 쓰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음을 증명해 주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1972년 9월 19일 자 일기를 비롯한 많은 일기에 운동회 총연습 날인데 글짓기 연습을 하느라 정작 하고 싶은 무용 연습에 동참하지 못하고 교실을 지키는 답답한 사연을 한탄했을까. 7월 31일 자 일기에는 ‘청주시 교육청 주최 글짓기 대회’에 참가해 ‘아침’이라는 제목의 동시를 ‘그냥 막’ 써냈는데 ‘수’로 당선됐다고 한껏 뻐기기도 했다.      

이 밖에도 여섯 권의 일기장에는 글짓기 연습을 하느라 힘든 점, 야간까지 글짓기 대회 참가 학생들이 학교에 모여 선생님의 지도를 받은 일 따위가 제법 또박또박한 글씨로 적혀 있다. 대회에 나가 열심히 글을 썼는데 아깝게도 아무 상도 못 탔다고 투덜댄 일기도 적지 않다.   


어디 그뿐인가. 연탄불, 서울로의 수학여행, 성적 고민, 단체 영화 관람, 현충일의 예절, 일제고사, 송충이 잡기, 민방공 훈련, 수재민 구호 모금운동, 북한 적십자사 대표의 서울 방문, 국가 비상계엄령 선포와 10월 유신, 새마을운동에 이르기까지 당시 생활상과 시대상에 대한 어린 나의 생각들이 이 일기장들에 두루두루 담겨 있다. ‘피이터팬’ ‘이이솝 이야기’ ‘한국의 전래 소화’ 같은 책읽기에 대한 일기도 눈에 띔은 물론이다. 하지만 일기를 쓰는 게 너무 지겹다면서 그날 읽은 동시를 소개하는 걸로 일기를 대신한 날도 적지 않아 웃음을 자아낸다. 또  ‘오늘은~’이란 상투적인 단어로 문장을 시작한 경우가 많다 보니 담임선생님이 ‘오늘은~’을 빼고 일기를 쓰라며 빨강 색연필로 단호히 지적질(!)을 해주신 곳도 있다.    


아무튼, 내가 오십 년 전의 일기장 여섯 권을 구태여 공개하는 것은 내가 어린 날부터 일기를 꼬박꼬박 잘 쓰는 ‘착한 어린이’ ‘바른생활 어린이’ ‘훌륭한 어린이’였다는 걸 내세우기 위함이 아니다. 또한 작가로서 20년 남짓 살아남으려면 적어도 수십 년 전의 일기장쯤은 고이 보관하고 있어야 한다는 걸 말하고 싶기 때문도 아니다. 어린 날의 꿈과는 달리 ‘어쩌다 보니 작가가 되었다’ 거나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동화를 들려주다 보니 어느새 동화작가가 되었다’라는 글벗들도 내 주변에는 엄청스레 많으니까. 또한 그런 작가들 중에는 나보다 백 배, 천 배, 만 배는 빛나는 작품을 쓴 능력자들도 무수하니까.


나는 그저 내 글쓰기의 시작점, 내 동화와 청소년 소설의 출발점이 이 여섯 권의 일기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말하고 싶어 공개하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오랜 인생 전우(人生戰友)이자 나의‘무보수 매니저’인 옆지기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오십 년 전 일기장, 당신도 있어?”라고. 그는 일 초도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했다.

“그런 게 어디 있어? 당신이니까 있지.”


물론 난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그에게 오십 년 전의 일기장 같은 건 남아있지 않다는 걸. 왜냐, 우리는 무려 33년 동안 희로애락을 함께 해온 동지라서 네티즌 수사대를 고용해 탈탈 털지 않고서도 서로의 신상(身上) 쯤 훤히 꿰뚫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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