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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현수 Jan 07. 2022

쪼꼬미 소녀가 득템한 보물 1호

나는 국민학교 시절에 정말 쪼그맣고 빼빼한 아이였다. 같은 학년 친구들의 평균 키보다 두 뼘 쯤 적어서 운동장에서 조회를 하거나 소풍 같은 걸 갈 때면 늘 맨 앞줄에 서야 했으니까.

교실에서도 대개 키 순서대로 자리를 배정했기 때문에 맨 앞자리를 벗어나기란 힘들었다. 딴 짓도 못하고, 깜빡 졸아서도 안 되는 그 고역스러운 자리를 언제나 딱 지키고 있어야만 했다.     

청주 석교국민학교 4,5학년 때의 신현수 (학년은 정확하지 않음)

그렇게 된 데는 본디 체구가 작은 탓도 있었겠지만 부모님께서 삼남매 중 막내딸인 나를 일곱 살 때 입학시키신 때문이기도 하다. 생일이 2월이면 한 살 정도 푹 묵혔다가 여덟 살에 입학시켰으면 좋았으련만 부모님은 나를 굳이 일곱 살(만 나이로는 여섯 살)에 국민학교에 보내셨다.


그때 내가 살던 청주에도 유치원이 아주 드물게 있기는 했지만 엄청난 부잣집 아이들이 아니면 다닐 수가 없었다. 그러니 부모님은 나를 집에 데리고 있느니 서둘러 입학시키신 것 같다. 네 살씩 터울이 져서 나보다 네 살 많은 오빠, 여덟 살 많은 언니는 나하고 놀아줄 수도 없으니까. 나 또한 심심해서 빨리 학교를 다니고 싶어 하기도 한 듯하고.   

 

그렇다 보니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될 때까지도 나는 맨 앞줄, 맨 앞자리를 면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중학교 2학년 때부터서야 맨 앞줄, 맨 앞자리를 다른 친구에게 내어줄 수 있었다. 그 후 점점 키가 크면서 뒷자리로 한 줄 한 줄 이동하다가 고등학교 1학년 무렵에서야 중간쯤 자리에 겨우(!) 정착할 수 있었다.  

   

키도 작은 데다 몸까지 빼빼하다 보니 나는 국민학교 시절에 친구들에게 살짝 꼬맹이 취급을 당했다. 요즘 말로 치면 ‘쪼꼬미’ 소녀였던 것이다.

그래도 고무줄놀이를 하거나 학교 운동회에서 달리기를 할 때면 악바리처럼 굴어서 지는 법이 없고, 각 반 대항 이어달리기 학급 대표로도 곧잘 뽑혔다. 산수나 자연처럼 머리를 한껏 굴려야 하는 과목은 싫어했지만, 쪼그맣고 빼빼했음에도 몸으로 때울 수 있는 체육과 음악 과목은 국어 시간 못지않게 좋아했던 것이다.     


그 쪼꼬미 소녀 시절, 물론 나는 키도 크고 덩치도 단단한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그 아이들은 운동장이나 교실에서 맨 앞줄, 맨 앞자리를 지키지 않아도 되니까. 조회 시간이나 수업 시간에 선생님 몰래 딴 짓도 하고, 깜빡 졸아도 괜찮으니까.      


하지만 그보다도 내가 정말 부러워했던 친구는 4학년 때였는지, 5학년 때였는지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서울에서 전학 온 제재소 집 아이와, 목사님을 아버지로 둔  교회 집 아이였다. 그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두 친구 집에 놀러갔을 때 둘 다, 자기 방 책상 위에 ‘삐까뻔쩍한’ 전집이 자그만 나무책장에 꽂힌 채 보란 듯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초 계몽사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 광고

그건 바로 지금 50~60대 분들 중에서 소시 적에  ‘책 깨나 읽은’ 분이라면 기억하고 있을 ‘계몽사’라는 출판사에서 발행한 50권짜리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 이었다. 나는 그 삐까뻔쩍한 전집들을 두 친구 집에서 처음으로 보았다. (70년대 중·후반에 같은 출판사에서 같은 제목의 전집이 나왔지만 그때는 50권이 아니라 60권짜리였다고 한다)   

  

선명한 주홍색 표지를 자랑하는 <계몽사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은 내가 국민학교 고학년이던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 돈푼깨나 만지는 집 부모라면 자녀를 위해 필수적으로 들여놓았던 아이템이었다. 50권짜리 그 전집은 나름 한 집안의 ‘부(富)의 상징’이자 ‘교양의 상징’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학교 도서관은 물론 공공도서관에 사립 도서관, 작은 도서관이 지역마다 동네마다 널려 있어 집에 없는 책은 대출해 보면 되지만 그때는 그럴 수가 없었다. 모든 게 부족했기에 책도 귀했던 시절이다. (자꾸 ‘라떼는’을 남발하니 독자님들께서 살짝 지겨우실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앞으로 연재하려는 ‘어린 날의 책 읽기’ 테마는 성격상 어쩔 수 없이 ‘라떼는’을 연발할 수밖에 없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  내가 살던 소도시 청주만 해도 시 전체를 통틀어 공공도서관이 겨우 하나 밖에 없어 이용하기가 힘이 들었으니까(물론 이 기억은 정확하지 않다).      


내가 다녔던 석교국민학교에는 학교 도서실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저 교실마다 한 구석에 학급문고라는 게 있기는 했지만 책도 별로 없고 그마저도 하도 많은 아이들이 읽어 표지도 더럽고 책장도 너덜너덜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부잣집 딸인 나의 두 친구들은 50권짜리 <계몽사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을 무려 ‘개인 소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책 읽는 걸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심지어 국어 시간에 교과서 읽는 것도 싫어하던 아이들인데…….      


나는 친구들에게 사정사정해 <계몽사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 중 몇 권을 빌렸다. 두 친구는 나름 착한 아이들이었는데도 선뜻 빌려주기 보다는 약간 젠체하면서 “이거 비싼 건데…….” “더럽히지 말고 깨끗하게 읽어.” “낙서하거나 찢으면 안 돼‘ 따위의 ’가진 자‘로서의 토를 다는 걸 잊지 않았다.  

   

계몽사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 9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삽화

그 책들을 나는 집으로 갖고 와서 행여 더럽힐까 봐, 침이라도 묻힐까 봐 조심조심하면서 읽고 또 읽었다. 그 때 빌려 읽었던 책 중에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것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플란더즈의 개> <소공녀>다. 지금은 세월이 너무 많이 흘러 인터넷을 검색하지 않고서는 그 50권이 각각 어떤 책이었는지 확인할 길이 없지만, 우리나라 동화는 물론 중국과 일본 등 동양 동화집도 목록에 있었던데 쪼꼬미 소녀 시절의 나를 이끌었던 것은 서양 동화였던 것이다.

해외여행은커녕 영국 미국 프랑스 같은 서양 나라가 어디 있는지도 몰랐던 시절이라 서양 책들이 어린 나의 마음을 상상의 세계로 데려다 준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두 친구에게서 몇 번이나 <소년소녀 세계 문학전집>을 빌려다 읽었다.      


놀라운 일은 그 얼마 후에 일어났다. 어느 날 어머니가 내게 주홍빛 표지도 찬란한, 그 <계몽사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을 사주신 것이다. 책들을 꽂을 수 있는 자그마한 2단 나무책장까지 덤으로 주는 그 50권짜리 전집을! 오매불망 갖고 싶어 했던 그 전집을 쪼꼬미 소녀가 득템(!)한 것이었다!     


어머니는 그 전집을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책을 팔던 외판원에게서 할부로 사셨다고 했다. 몇 개월 할부였는지는 나는 모른다. 적어도 12~24개월 정도였겠지.    

 

당시 우리 집은 월급쟁이였던 아버지의 빠듯한 월급으로 살아갔기에 집도 작고 살림도 넉넉지 않았다. 어머니는 늘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며 살림을 꾸려가셔야 했다.  그런데도 내게 그 비싼 전집을 덜컥 사주신 것이다.


그 시절 그 전집이 얼마나 비쌌는지를 알 턱이 없기에 이 글을 쓰기 위해 자료들을 찾아보았다. 그랬더니 ‘50권 전질 가격이 3천원이었고, 이는 당시 도시근로자 월 소득의 절반이었다’는 기록을 찾을 수 있었다.  (출처: 각주 참고)아버지 월급의 절반 값이라니! 어머니가 얼마나 큰맘 먹고 내게 그 전집을 사주셨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내가 그걸 사달라고 졸랐던 기억은 없다. 툭하면 골을 부리고 잘 삐치기도 하는 막내딸이지만 그래도 불효녀는 아니었기에. 그보다 어머니는 국어를 좋아하고 글쓰기를 제법 해서 백일장에 나가 가끔 상을 타오는 막내딸이 기특해 정말 큰맘먹고 전집을 사주신 것 같다. 친구들에게서 책을 빌려와 조심조심 아껴가며 책을 읽는 막내딸이 못내 안쓰러우셨는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소학교까지만 마치고 더는 공부를 하지 못한 한(恨) 이 있었기에  힘겨운 환경 속에서도 자식들한테만큼은 최선의 교육을 시키려 하셨던 어머니였으므로.

 

그 후로 나는 ‘<계몽사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을 가진 소녀’가 되었고 더는 키 크고 덩치 좋은 친구도, 제재소 집 친구와 교회 집 친구도 부러워하지 않았다. 어린 나의 영혼을 사로잡은 그 책들에  홀딱 빠져서 한 세월을 보냈으니까. 그 전집은 쪼끄맣고 빼빼한 ‘쪼꼬미 소녀’ 신현수의 ‘보물 1호’이며 자랑이었다.      


이상한 것은 그때 그토록 열심히 읽었던 50권 중에서 내용이 뚜렷이 기억나지 않는 책도 많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작가 중에서도 동화와 청소년소설을 쓰는 작가가 된 데는 어머니가 사주신 50권짜리 그 전집이 디딤돌이 되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것이 바로 내가 브런치에서 <내 어린 날의 책들> 쓰기로 마음먹은 이유이기도 하다.      


자, 그럼 나의 국민학교 고학년 시절을 지배했던 <계몽사 소년소녀 세계 문학 전집> 이야기는 계속 이어갈 테니 독자님들은 다음 연재도 기다려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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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박숙자, <살아남지 못한 자들의 책 읽기>, 푸른역사, 2017, 95쪽

계몽사<소년소녀 세계 문학 전집> 이미지 출처: 네이버블로그 <스마트의 7080 취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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