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속한 '여성동아문우회' 단톡방에서는 매일 아침 샘 한 분이 국내외 시 한 편을 타이핑해서 올려 주신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집콕 방콕할 때 시작됐으니 벌써 3~4년은 되었을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매일 아침 시 한편을 감상하는 호사를 누린다. 몇몇 샘들은 시 감상평은 물론, 관련되는 사진이나 영상 등을 공유하기도 한다. 자연스레 우리 단톡방에는 매일 나름 문학적이고 예술적인 분위기가 조성된다.
엊그제 아침에는 문우회 단톡방에 조용미 시인의 <초록의 어두운 부분>이라는 시가 올라왔다.
'빛이 나뭇잎에 닿을 때 나뭇잎의 뒷면은 밝아지는 걸까 앞면이 밝아지는 만큼 더 어두워지는 걸까 //
깊은 어둠으로 가기까지의 그 수많은 초록의 계단들에 나는 늘 매혹당했다.'
로 시작되는 시였다.
시를 올린 샘이 부연 설명을 했다.
"<퍼펙트 데이즈>의 코모레비 때문에 이 시가 핫하다고 친구가 보내줬습니다."
그러자 다른 샘이,
"햇살에 어른거리는 나뭇잎 그림자……."라는 톡과 함께 화분에 심겨진 나무가 햇빛을 받아 그림자를 만든 사진을 공유했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 코모레비. 제가 키우는 야레카 야자입니다. 어느 아침 분홍빛 벽에 비친 코모레비입니다.^^" 라는 설명과 함께.
또 다른 샘은 "퍼펙트 데이즈 영화 보고 감동 받았거든요. 거듭 반복되는 일상, 시부야, 공공시설 청소부 하라야마는 충실한 매일을 사는 소시민입니다. 일상이 헌책방에서 책 빌려서 잠자기 전에 읽는 책벌레였죠." 라는 톡과 함께 유튜브에 있는 <퍼펙트 데이즈> 해설 영상을 올렸다.
이쯤 되니 <퍼펙트 데이즈>와 조용미 시인의 시, 화분 나뭇잎 사이로 비친 햇빛 그림자 사진, '코모레비' 라는 낯선 단어와의 상관 관계가 몹시 궁금해졌다. '이 영화를 한번 봐야지', 하고 미뤄 놨던 마음도 갑자기 다급해졌다.
<퍼펙트 데이즈> 포스터
얼른 <퍼펙트 데이즈> 상영관을 찾아 보았다. 뜻밖에도 이 영화를 상영하는 곳이 매우 드물었지만, 다행히도 집에서 멀지 않은 메가박스에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어제, 토요일 오후, <퍼펙트 데이즈>를 봤다. 굉장히 많은 대목에서 가슴이 먹먹하고 울컥 울컥했다.
도쿄 시부야의 공공 화장실을 청소하는 노년의 청소부 히라야마의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들, 어쩌면 낮고도 단조로운 그 일상 속에서도 그가 끝내 지켜내려는 삶의 가치들이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햇살처럼 너무 반짝거리고 너무 공감이 가서. 아쿠쇼 코지가 표현해 내는 히라야마의 하루하루가 (다소 쓸쓸하긴 하지만) 정말 완벽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레트로풍과 아날로그적 분위기가 가슴 깊은 곳을 건드려서......
왼쪽: <퍼펙트 데이즈> 스틸 컷 / 오른쪽: <퍼펙트 데이즈> 엔딩 자막
조용미 시인의 시 <초록의 어두운 부분>이 핫한 이유, 그리고 한 샘이 햇살에 비친 나뭇잎 그림자 사진을 올린 까닭도 이해가 갔다.
결과적으로, 폭염을 뚫고 영화관으로 달려가 <Perfect Days>를 관람한 이 날은 내게는 나름 '완벽한 날'이었다. 반복되는 일상의 지루함과 쓸쓸함 속에서 어떤 반짝거림을 순간 포착한 날이니까.
<Perfect Days>는 영화 제목이자 이 영화의 여러 삽입곡 중 하나로, 1972년 발표된 올드 팝 제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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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동아문우회'는 故 박완서 선생님이 이끄시던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선 작가들의 모임으로 역사가 50년이나 된다. 박 선생님이 10여년 전 작고하신 후에도 모임은 계속 되고 있고, 22년 전 이 모임에 합류한 나는 (결코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막내 부류에 속한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