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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씁쓸한맥주 Jul 26. 2023

1. 나의 아픔, 우리의 첫만남

날 선택한 건 너야, 우린 가족이 될 운명

항상 모범생이고 싶었고, 항상 성공한 인생으로 살고 싶었다.

휴학없이 대학을 졸업했고, 단 번에 대기업에 취직을 했다.

좋아하는 입사 동기와 연애를 하고 결혼도 했는데, 운 좋게도 경제적으로도 남부럽지 않은 가정을 이뤘다. 

모두 27살까지 일어난 일이다.


내가 잘 하는게 무엇인지, 내가 좋아하는게 무엇인지 고민할 틈도 없이 살아왔고 모두가 그렇게 사니까 나도 그냥 흘러가는대로 열심히만 살면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직장생활 8년차부터 어딘가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살아남고 싶은 마음이 있어 상담을 받으러 가면 무엇으로부터 시작된지 모르는 이 감정을 1시간 동안 토 하듯이 뱉어내고 일주일을 버티는 일상이 1년간 반복 되었다. 하지만 그걸로 일주일을 버티기에는 너무 부족했다. 결국 정신과를 방문하여 약을 처방받아 먹기 시작했고, 하루만 먹자 한달만 먹자, 6개월만 하던게 2년이 넘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결국 22년 12월 중순 6개월 병가휴직을 신청하였고, 신청한 날 단 한 번도 생각도, 꿈도 꿔본 적 없었던 반려견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키워본 적도 없고, 기본 지식도 없는 반려인으로서는 '빵점'인 아주 나쁘고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그 흔한 '세나개', '개훌륭', '보듬'의 존재도 잘 모르는 나였다.


남편은 내가 한 번 뭘 갖겠다거나, 뭘 하겠다고하면 끝까지 고집을 부려서 하지만 뒷 마무리가 흐릿한 사람이라는 걸 너무 잘 알아서 재차 물었다.

"한번 데려오면 적어도 10년 길게는 20년을 책임져야하는 거야, 그럴 수 있겠어? 만약 나중에 다른 회사에 취직하게 된다면 이 아이는 혼자 집에 10시간 이상 있어야하는데 그런 것 까지 다 고려해봤어?"


그 당시에 나는 그런게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휴직 신청서를 작성한 후 반차를 쓰고 애견샵을 방문했다. 유리케이지가 세로로 모든 벽면을 가득 채운 샵은 3개월도 채 안된 몽글몽글한 아이들이 나의 관심을 끌어보겠다고 낑낑대며 유리 문에 바짝 붙어 앞발로 문을 긁어대고 있었다. 강아지 종도 잘 모르던 나는 지금에서야 최근 '말티푸(말티즈+푸들 교배종)'이 유행?이라고 표현하면 그렇지만 인기종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당시에도 샵에는 말티숑, 말티푸, 파티푸들, 파티비숑 등 밖에 없었다. 사장님은 동글동글하고 애교를 엄청 부리는 유리케이지 하단의 아이를 추천해주셨다. 그런데 유일하게 한 아이만 나에게 관심도 주지않고 유리문에 기대 쿨쿨 자고 있었다. 내가 관심을 보이자 사장님은 아픈 아이는 아니라며 유리문을 똑똑 두드렸지만 잠깐 눈을 떴을 뿐 다시 무관심하게 한 번 쳐다보고 잠을 잤다. 유리문을 열고 사료를 몇알 주자 일어나서 받아먹는 모습에 나는 이미 '내 반려견' 아니 '내 가족' 임을 느꼈다. 다들 첫눈에 알아본다고 하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우리 '보리'였다. 사장님은 아이가 아프거나해서 일주일 안에 사망 시 환불해주신다고 설명해주셨는데 그 말이 방금 막 반려인이 된 나조차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계약서를 작성하고 돈을 지불한 후 데리고 오는데 혹여 추울까 케이지 위에 내 목도리까지 칭칭 두르고 코트까지 벗어 덮어주고 5분 남짓 거리를 어떻게 걸어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이는 지금 2개월. 사장님은 6차 접종까지 해야하고 그럼 4개월 정도 될거라고 했다. 

앞으로 2개월 정도의 시간.

그리고 그 때부터 막연하게 제주도 살이를 강아지와 단둘이 함께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혼자라면 누가 돈을 줘도 갈 생각을 못했을 몇 달 동안의 제주살이를 보리와 함께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보리의 접종이 끝나는 2월말부터 산책 연습을 해서 3월부터 5월말까지 3개월 가까운 시간을 함께하는 제주살이의 여정이 시작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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