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씁쓸한맥주 Jul 26. 2023

2. 댕댕이는 모르는 은밀한 여행 준비

댕댕아 빨리 자라줘, 아니 천천히

집에 데리고 온 첫 날은 지옥의 밤이었다.

낑낑대며 그 작은 몸이 부서질듯 울타리에 몸을 던져대며 낑낑, 깡깡대는 탓에 한숨도 못잤다. 그렇다고 중간에 나가서 달래주거나 함께 있어주면 그 날은 조용해지지만 계속 반복된다는 말에 몇일만 참자라는 생각으로 3M 귀마개를 꽂고 3일 밤을 버텼다. 보리에게 괜한 스트레스를 제공한 것 아닌가, 주인을 잘못 만나 고생하는 게 아닌가 하는 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내가 과연 생명을 책임질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인가.

오빠 말대로 예쁜 장난감처럼 너무 쉽게 여겼던 것은 아닌가.


4일째에 엄마들에게 찾아온다는 100일의 기적같은 조용한 밤이 나에게도 찾아왔다. 나는 해준게 없는데 스스로 적응을 잘 하는 생물체였다. 곧 이어 가르치지 않아도 본인의 이름을 알아듣고 반응하고 점점 배변패드에 대소변을 가리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애착 장난감도 생기고, 쿠션을 밟고 넘어져 뒹굴기도 하는 모습에 보고만 있어도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그렇게 차근차근 영하의 날씨를 가르고 병원을 가서 3,4,5,6차 접종을 하는 어려울 법한 사회로 나아갈 준비도 잘 따라와줬다.

보리를 키우면서는 바라만봐도 사랑스럽다는 게 무엇인지 깨달았다. 행동 하나하나, 울음 소리 하나하나 다 신기하고 너무 예뻤다. 특히 쓰다듬거나 안았을 때의 생명이 주는 따스함이 얼마나 큰 감동과 전율을 선사하는지 존재 자체만으로 빛이 났다. 오랜 공황장애와 우울증이 조금씩 사그라드는듯 했다.


나는 3차 접종이 끝날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제주 생활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혼자 가라면 절대 못갔을, 아니 돈을 준다고해도 가지 않았을 여행이었다. 하지만 보리와 함께라고 생각하니 괜시리 용기가 났다. 휴직도 낸 김에 뭔가 혼자서 (사실 혼자는 아니지만) 해내고 싶었다.

남편은 언제나 '남 편'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내편이었기에 이번에도 나를 믿고 숙소의 안전 여부 및 금전적인 부분을 지원해주었다. 보리의 마지막 접종일은 2월 중순, 나는 3월 1일 제주로 향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3개월 장기로 있을 계획으로 아래와 같이 큰 틀을 잡았다.

1. 렌트카 대신 내 차를 직접 가져가서 배를 타고 이동할 것 (서울 <-> 진도)

2. 동서남북으로 숙소를 잡아 한 숙소에서 3~4주를 머무르는 것으로 계획할 것 (결국 이것은 무산되었다.)

3. 반려견이 내 가족임을 잊지 말것 (무례한 사람들로부터 지켜낼 것)

4.무리하지 않고 순간순간을 눈에 담을 것



놀다가 기절하듯 잠들고 저 쿠션도 높아서 낑낑대던 아이가 배냇미용도 마치고 어느새 준비가 끝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2개월 사이에 500g이었던 조그맣던 아이는 1.7kg이 되었고 산책 걸음마를 떼기 시작했다.


나는 큰 캐리어에 내 겨울옷을, 중간 캐리어에 보리의 사료와 간식, 패드 등을 작은 캐리어에 여름옷과 다른 캐리어에 물놀이용 수영복 및 운동복까지 야무지게 짐을 트렁크 한 가득 SUV에 챙겨서 서울에서 엄마가 있는 전라도 광주 집까지 출발했다.


보리는 차만 타면 어렸을 때부터 멀미를 하는 건지 카시트에서 쿨쿨 잠을 잤고, 광주 가는 내내 긴 시간 동안 별탈 없이 1차 장거리 여행을 잘 마쳤다. 이제 엄마 집에서 3일 정도 재정비 후 제주도로 출발이다. 곧 바람 가득한 섬이 기다리고있다.

작가의 이전글 1. 나의 아픔, 우리의 첫만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