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체육대회 - 피구 결승전
올해도 어느덧 끝나간다. 내년 준비를 위해 맘에 드는 다이어리를 하나 구입했다. 늘 새로운 년도가 시작하기 전에는 꼭 하나씩 구입하는 것 같다. 상반기까지는 잘 쓰다가 하반기 정도가 되면 핸드폰 캘린더에만 기록하게 되긴 하지만 새로운 년도가 시작하기 전 설레는 마음으로 1년 치 계획을 다이어리 안에 써 내려가는 일도 나에겐 즐거운 일이다. 다이어리가 도착하고 그 주 주말에 바로 작업에 돌입했다. 계획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며 시작하려는 찰나 갑자기 생뚱맞게 고등학교 체육대회 때 피구 결승전 하던 날이 생각이 났다. 아니, 정확히는 나에게 외치던 어떤 여자아이의 대사가 떠올랐다.
"야! 너 인생 그렇게 살지마!"
요즘 학생들에게 체육대회는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내 시절 체육대회란 학창 시절 통틀어 가장 설레고 본인들도 몰랐던 자신의 최대치 열정을 볼 수 있는 그런 행사랄까. 그때 게임 종목은 짝피구였는데, 2명씩 짝이 되어 앞사람은 공격수 겸 뒷사람을 지키는 역할로 공을 맞아도 아웃되지 않는다. 뒷사람은 공에 맞지 않게 앞사람을 방패막이(?)로 삼아서 요리조리 잘 피하면 되는 게임이다. 보통 남녀공학에서 할 때는 남녀 1쌍 짝지어서 진행하기에 일명 보디가드 피구라고도 한다던데 아쉽게도 나는 여고를 나와서 그런 설렘이 없었던 게 살짝(?) 아쉽다.
중요한 결승전이 있던 날 나는 공을 피하는 역할을 맡아서 열심히 공을 피하고 있었는데 참 부담스럽게도 상대편 한 팀, 우리 팀 이렇게만 남은 상황이 되었다. 내 생에 그렇게 온몸에 정신을 집중한 경험은 처음이었다. 쏟아지는 공격 속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었는데, 상대 팀에서 "쟤 다리 맞았는데요?"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다리에 그 어떤 감각도 없었는데 공을 맞았다고 하니 억울했다. 난 끝까지 아니라고 우겼고 상대 팀은 맞았다고 우겼고 선생님은 긴가 민가 하셨던 듯 그냥 경기를 다시 진행시켰다.
사실 그 경기를 우리가 이겼는지 졌는지 기억이 안 난다. 그냥 상대 팀 얼굴도 기억 안나는 어떤 아이의 악에 받친 대사만 기억에 남을 뿐. 1년 인생 계획을 세우려던 중 갑자기 그 아이의 말이 생각나서 피식 웃음이 났다. 체육대회가 뭐라고 나에게 인생까지 운운했는지. 자기나 나나 17년밖에 안 살았는데 말이다. 그 아이는 지금 잘 살고 있을까? 너의 인생은 어떠니? 물어보고 싶다. 비꼬는 마음이 아니라 정말 순수하게 묻고 싶다.
그 말이 딱히 트라우마가 된 것은 아니지만 17살 어린아이가 듣기엔 좀 심오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기억에 남나 보다. 그 아이의 진심 어린(?) 조언을 잘 새겨서 남은 인생도 허투루 살지 않고 매사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자 한다. 그 친구와 나 모두 해피엔딩이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