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들이 이야기
때는 바야흐로 약 2년 4개월 전, 남편 회사 사정에 의해 아무 연고도 없는 대전에서 신혼을 시작하게 된 우리는 각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바빴다. 남편은 대전 지사 사람들과 친해지고 업무에 익숙해지느라 바빴고, 나는 이때 6개월 정도 일을 쉬었기에 집에서 혼자 시간 보내기에 바빴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와서 처음 며칠간은 집이 정리가 덜 된 상태라 치우고 정리하는데만 한 1주일 걸렸다. 남편 없이 나 혼자 사부작 거리면서 해야 했기에 시간이 더 걸렸던 것 같다.
그다음 한일은 규칙적인 하루를 보낼 수 있게 야외활동을 추가했다. 운동도 다니고 학원도 다녔지만 그중 가장 재밌었던 활동은 문화센터 수업이었다. 근처에 갤러리아 백화점이 있어서 낮에 혼자 구경하러 갔다가 꼭대기 층에 문화센터가 있는 걸 발견했다. 무엇을 배울 수 있나 한번 보려고 올라갔는데 <한식 배우기> 프로그램이 눈에 확 들어왔다. '어쨌든 저걸 배워두면 나중에 써먹는 일은 많겠지?' 이렇게 생각하며 홀린 듯 그 자리에서 등록했다.
이 모든 게 집들이의 시작을 알리는 총소리였을까, 음식 배운다고 어디다 말한 적도 없는데 친구들과 지인들이 집에 놀러 온다고 줄을 서기 시작했다. 그룹 그룹 왜 이리 쪼개져들 있는지... 다들 경기도에 사니깐 대전에는 올 일이 없었을 것이니 우리 집에서 맛있는 거 얻어먹고 겸사겸사 대전 구경도 하고, 마치 당일치기 여행 온 기분으로 왔었을 거라 생각한다. (다들 좋아했으니 아마도?) 안내 루트는 어느 그룹이나 비슷했다. 집에서 밥 먹고 성심당 데려가서 빵 구경시켜주고 그 근처 카페 가서 못다 한 수다 떨다가 대전역에서 인사하고 헤어졌다. 한 10번 정도? 밥상을 차렸던 듯하다. 엄청 더울 때 시작했는데 추워지기 시작한 즈음에 끝났다.
밥상 구성은 이렇다. <찌개요리 1개 + 메인 반찬 2개 + 기본 반찬 2~3개 + 캔맥주 + 안주 + 디저트 강정> 여기서 사람 수에 따라 몇 개 빠지기도 하고 추가되기도 했다. 인원이 많을 때는 토스트 + 기타 곁들임 용 간식을 해주기도 하고, 어떤 그룹은 요청에 따라 밖에서 맛있는 걸 사주기도 했다. 처음 대접한 이들에게는 문화센터에서 배운 쇠고기 스끼야끼를 해줬는데 진간장 대신 국간장을 넣는 실수를 해서 그 뒤로는 다시 하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또 가장 기억에 남는 대접은 시댁 식구들과 우리 가족들을 처음으로 모시는 날이었는데 총인원이 8명이다 보니 상 2개에 같은 요리를 두 개씩 해서 놓았었다. 생각보다(?) 맛있다는 평을 들어서 좋았지만 그날 저녁에 긴장이 풀려서 근통과 고열을 앓았다.
이렇게 모든 집들이를 끝내고 나는 취업을 했다. 평일은 심심하고 주말은 나름 바빴던 나의 백수 생활이 끝났다. 어떻게 보면 대전까지 와서 얼굴 보겠다고 문을 두드려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다. 지금 같은 코로나 시기엔 더더욱 그립고 생각난다. 비록 나에게 요리는 힘들고 숙제 같은 것이지만, 나의 어설픈 요리들을 맛있게 먹어준 모든 이들과 함께 어울리고 웃고 떠들던 그때, 참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