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인형들아 우리의 걱정을 가져가 줘!
남편이 가장 자주 하는 말은 "혹시 모르니까 ~하자"이다. 예를 들면
"이거 냉장고에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나네? 혹시 모르니까 하나 사자"
"혹시 부족할까 봐 돈 더 보냈어"
"로또 종이 버리지 마! 내일 다시 확인할 거야 혹시 몰라 내가 잘못 봤을지도"
처음엔 그렇게 자주 말하는지 몰랐는데 어느 날부터 갑자기 귀에 꽂혀오기 시작했고, 요즘엔 웃으며 타박하기에 이르렀다. "어휴 그놈의 혹시 모르니까 병 또 나왔네 또 나왔어" 물론 정말 혹시 모르는 상황을 대비해서 준비를 철저히 하는 것은 좋긴 하지만, 저 말을 들을 때마다 자꾸 실소가 나오게 되는 건 왜일까.
사실 나도 혹시 모르니까 병에 걸린 지 오래다. 어쩌면 성인이 되고서부터 일수도 있다. 게다가 올해 코로나로 인해 건강염려증까지 생겼다. 가슴통증이 있으면 ‘설마 협심증은 아니겠지’ 하고 생각하고 소화가 안 되는 날에는 ‘위에 뭐가 있나’ 싶기도 하다. 아마도 그냥 과식으로 인한 증상이 정답일 테지만, 걱정이란 이놈은 항상 최악의 상황까지 달려 나가려고만 하니 자꾸만 병원을 검색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병명은 같지만 증세는 좀 다르다. 남편은 단순히 어떠한 상황에 대해 최대한의 준비를 하는 편으로, 장기적인 계획에 대한 대비가 아닐 때가 많지만, 나는 나무부터 숲까지 골고루 걱정하는 편이다. 내가 숲까지 걱정하고 있으면 옆에서 남편이 한 마디 한다. “어우 야 그거 지금 고민하면 뭐해 당장 뭐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닌데” 그러면 나는 생각을 좀 덜어내고 머리를 쉬게 하려고 노력한다.
아무래도 침대 머리맡에 각자 걱정인형 하나씩 두고 잠을 자야 할까. 자기 전에 인형에게 어제, 오늘, 내일, 어쩌면 몇 년 후의 걱정까지 다 빌고 자면 편하게 잘 수 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매일 새로운 걱정거리들은 생성되기에, 맞닥뜨리면 깨부수고 또 깨부수고 다들 그렇게 사는 거겠지.
오늘도 남편은 나에게 말했다.
“아 아침에 감기약 먹는 거 깜박하고 나왔네 혹시 몰라 먹어둬야 했는데”
나는 또 피식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