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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on Eunjeong Dec 11. 2021

[책추천] 불편한 편의점/ 김호연

불편해서 따뜻했던 것들





네일샵을 갔다 퇴근하는 남편을 태워 집에 오려고 하니 시간이 애매하게 남았다.

이런 날은 남편 회사에서 멀지 않은 서점을 간다.



한창 책 쇼핑(책 읽기가 아닌)에 빠졌던 때에는 교보문고 등급으로 무료 주차가 되었는데

이제는 책 한 권 정도는 사야 무료주차가 된다.



오늘은 무슨 책을 쟁여둘까 둘러보다 마음에 드는 책 하나를 집어 들었다.



개인적으로 소설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소설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으면 무언가 얻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진 나에게

소설은 드라마와 같다.



드라마는 즐기는 것이고 그래서 그냥 TV를 틀어놓기만 하면 되는 것,

그 안에 감동도 깨달음도 있지만

내가 그것을 얻기 위해 무언가 노력한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내게 소설은 그런 것인데 책을 읽고 생각을 해야 하는 노력이 들어가니 뭔가 상충되는 그 느낌이 썩 좋지 않았다.


그런 내가 소설을 집어 들었다.





『불편한 편의점 』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책 표지에 큼지막하게 적혀 있는 '불편한'이 갑자기 너무 따뜻하게 느껴져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우리는 어느 순간 타인을 관심을 '불편한'것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타인에게 질문하기를 멈추었다.



원래부터 나는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 관심이 없다.

대학원을 다니던 시절 친하게 지낸 한 동생이 나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언니는 왜 안 물어봐?

사람들은 처음 만나면 어디 사니, 학교는 어디 나왔니, 형제는 어떻게 되니

그런 것들을 물어보잖아. 그런데 언니는 나한테도 다른 사람들한테도 그런 질문을 안 하더라'



'안 궁금한데...

네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어디 사는지 나는 별로 안 궁금해.

너와 대화를 하고 친해지는데 꼭 알아야 하는 내용은 아닌 것 같아서.

그리고 그걸 내가 꼭 알아야 하는 일이면 네가 먼저 말해주지 않을까?'



이런 나의 대답, 나의 가치관을 특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편하게 생각해 주는 사람도 있다.



그런 질문들이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우리는 대부분 그런 질문에는 애정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점점 타인의 관심을 불편하게 생각하고 나와 같은 사람을 편하게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며

동생 같던 학생들이 조카 같아지고 이제는 슬슬 자식처럼 느낄 수밖에 없는 나이가 되어가는 나는

관심을 가장하여 굳이 몰라도 되는 질문을 학생들에게 하기도 한다.


여전히 그들의 삶에는 관심이 없다.

그렇다고 그들에게까지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많은 시간을 공유하고 긴 시대를 함께 살아온 나의 동기와 선후배와 달리

나는 이제 그런 시답지 않은 질문 말고는 학생들과 나눌 공통의 관심사나 대화의 주제가 없다.



그리고 이렇게 나이를 먹고 나서야 어린 시절 어른들의 그 불편했던 질문과 관심이

고심 끝에 보여준 나에 대한 애정이라는 것을 조금씩 느낀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갑자기 가슴 시리게 따뜻했던 것 같다.




책 제목을 보며 어떤 오지랖 넓은 편의점 직원의 손님 관찰기,

손님 마음 갱생 프로그램 등의 내용이 아닐까 생각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주인공 독고씨의 등장은 신선했고, 독고씨의 과거는 너무 신파 같아서 실망스러운 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하고 재미있는 특집 드라마 한 편을 본 기분이고 재미있게 잘 읽혀서

3시간 만에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읽고 나니 글이 재미있는 것도 있지만 아마 김호연 작가라는 분은 글을 잘 쓰는 사람인 것 같다.

단 한 번도 무슨 말이지라며 다시 읽어 본 구절이 없었다.

명료하면서도 인과관계가 명확하도록 글을 잘 쓰기 때문이겠지.



그리고... 영업사원 손님의 초콜릿 에피소드에서는 눈물이 났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의 진심을 잘 모른다.

그래서 늘 꿈꾼다.

드라마나 소설처럼 나와 나의 가족을 잘 아는 누군가

'그때 그 사람이 그랬던 건 이래서였어'라며

나의 마음을, 그 사람의 마음을 전해주길....



독고씨가 영업사원에게 전해준 진심은

'사실... 너의 가족은 너를 정말 사랑하고 있어'였다.



참... 별거 아닌 일 같지만

나도 전하지 못한 진심을 생판 모르는 남이 전해주는 일은

기적과도 같은 일인데

우리는 왜 늘 그런 기적을 바라는지 모르겠다.

'말 안 해도 알겠지... 가족이니까'

말 안 하면 귀신도 모른다던데... 흠....



그래도 그 신파 같은 기적에 눈물이 난 건

우리가 모두 듣고 싶었던 말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너를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단다'




마음에 남은 구절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놀라웠던 것은 대학생인데 모두 고등학생 같았다는 것이다.

수능, 대학입시만 바라보고 살던 고등학생처럼 지금의 대학생들은 취업을 위해 달린다.

성적이 조금이라도 안 좋을까 교수님께 메일을 보내고 방학에는 취업에 도움이 되는 공부를 한다.

그래서 감히 그들에게 말했다.

과정이 행복하지 않으면 영원히 행복할 수 없다고...



"여러분은 대학에 합격하기 위해 12년을 공부했는데 대학을 합격하고 며칠 행복했어요?

나는 그렇게 가고 싶던 통번역대학원에 3번을 떨어지고 4번째에 붙었는데

하루 행복했던 것 같아요.

그다음에는 또 들어가서 잘 할 수 있을까? 졸업은 할 수 있나? 졸업하면 취업은 되려나?

걱정이 생기고 내가 해야 할 일이 또 생기더라고요.

결과를 통해 행복을 얻는 건 너무 힘들 것 같아요.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지만 보장이 된다고 해도

과정은 길고 결과가 주는 행복은 너무 짧아요.

그건 너무 고통스러운 인생이잖아요"



이 글은 나의 그런 가치관을 닮은 것 같아 마음이 왠지 뿌듯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작은 일에도 날을 세우며 예민하게 구는 나의 태도를 반성하게 하는 글이기도 했다.

그래...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들은 지금 힘든 싸움을 하고 있구나...

나는 그들에게 조금 더 친절해야겠다.



작가가 왜 편의점을 배경으로 했는지 알 수 있는 글이었고

'아, 그렇네! 편의점이 사람들에게 주유소 같은 곳이네'라고 무릎을 쳤다.






주변을 보면 모르는 사람에게는 친절하면서 가까운 사람을 막 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세상에 내가 막 대해도 되는 사람은 없다.

내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어도 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나를 무조건적으로 이해해 주는 부모에게도 그래서는 안 된다.


가까운 사이이기 때문에 더 조심해야 하는 법이다.

가까이에서 오래 함께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코로나로 인해 힘든 상황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이 글을 보고 생각하니

마스크를 쓰고 있는 나는 가끔은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지금은 강제로 입을 닫고 있지만 코로나가 없어지고 난 이후에도

불필요한 말은 가슴에 묻어 두고 타인의 말은 더 들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인간의 삶이 무엇일까 고민하게 된다.


우리는 늘 행복을 추구하고 더 나은 삶을 꿈꾸지만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죽음을 향해 걸어간다.



모든 부귀영화를 누렸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금은보화보다 더 중요한 것은 건강이라고 한다.



하지만 인간은 태어나 살면서

매일매일 조금씩 약해져갈 수밖에 없다.



노화와 죽음에 가까워지는 삶을 사면서

정확하게 뭔지도 모르는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의 삶이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는 건 불편한 거야"



신이 인간의 삶을 만든 목적이 무엇일지 고민하는 나에게

이 책은 큰 질문을 던지며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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