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예비행위, 스토킹
모두가 잠든 밤, 주인공 세실리아는 몰래 집을 빠져나가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세실리아는 남편 애드리안에게서 벗어나, 주변의 도움을 받아서 새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과학자인 애드리안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녀를 스토킹 하며, 세실리아의 인생을 망가뜨린다. 애드리안의 청각적 그리고 시공간적 스토킹은, 보는 이로 하여금 숨 막히고 께름칙한 고통을 준다.
성공한 과학자가 한 여인을 미치도록 사랑해서 일어난 스토리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이 영화는 스토커와 스토킹 피해자의 이야기이다. 아, 물론 SF를 기반한 영화 스토리지만 말이다. 인비저블맨이 그저 <할로우맨>을 닮은 투명인간 이야기가 아닌, 스토킹에 초점을 둔 시각이라면 영화는 어떻게 보일까?
첫 번째, 보이지 않을 뿐, 항상 마주하고 있다.
본격적인 스토킹이 시작된다. 이미 한번 부부였었던 만큼, 더욱 대담하게 이뤄진다.
에드리안이 세실리아에게 물리적 혹은 실질적 피해를 입히기 전, 스토킹 기간이 존재한다. 미리 이 기간에 세실리아가 보호받았다면, 애드리안이 제재를 받았다면, 세실리아는 고통을 받았겠는가?
두 번째, 세실리아는 생각한다. “결국, 저놈은 날 죽일 거야”
주거침입은 물론이고, 이메일까지 해킹한다. 애드리안은 교묘하게 세실리아를 괴롭히며, 세실리아의 주변 사람들까지 피해를 입힌다. 죽을 것을 알기에 계속 피해 다녔는데 결국 죽는다. 이만큼 개죽음이 또 있는가? 생명권을 보호해달라는 것이지 구애행위를 제재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세 번째, “어떻게 대응했길래.. 네가 좀 잘하지..”
영화의 후반부는 현실과는 180도 다르게 흘러간다. 우리가 바라는 스토리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당사자들 간의 문제로 치부해버린다. 피해자를 비난하는 일도 너무 쉽다.
열 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정말 소름 돋는 속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