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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사람을 쉬게도, 살아나게도 해요.

목포 청춘게스트하우스 문미영 님

 


언제부터인지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여행만큼이나 목적지만 정해두고 훌쩍 혼자 떠나는 여행에서 예상치 못한 큰 휴식과 위안을 얻을 때가 많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했던 첫 목포 여행에서 우연히 만나 짧은 쉼에서 큰 여운을 얻은 뒤로 목포 여행을 계획할 때 언제나 먼저 살피던 곳, 청춘게스트하우스. 


오랜 시간 한결같이 티 나지 않지만 우리 곁을 지키며 응원해 주는 고마운 사람들처럼  인터뷰로 다시 만난 이곳 또한 골목을 지키며 많은 사람들에게 쉼과 용기를 주는 오래 알고 지낸 언니 같은 존재처럼 느껴졌다.




가슴이 답답할 때면 오고 싶었던 곳, 목포 


저에게 목포는 큰 대도시였어요. 노화도라는 작은 섬에서 태어나고 자란 저는 고교 진학을 위해 목포로 유학을 왔거든요. 말하자면 공부를 잘해서 친구들은 서울 공장에 일하러 갈 때, 저는 공부를 하러 목포에 온 거죠. 신안군의 작은 섬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목포가 그런 곳이었어요. 

그러던 제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목포 사람인 지금의 남편과 연애를 하고, 결혼해서도 서울에 살다 우리 딸 네 살 때 목포에 다시 내려왔습니다. 

서울살이 하면서 날마다 ‘우리 딸이랑 목포 내려오면 시내버스를 타고 목포 골목골목을 함께 다녀봐야지’라는 생각을 자주 했었어요. 


엄마가 되고 나면 그렇잖아요. 해야 할 일 많은데 왠지 해보고 싶은 것들이 더 많이 생기고.

내가 못해봤던 것에 대한 미련이지 않을까 싶어요. 계획이 다 있었는데, 엄마가 되고 나니 내 환경이 아주 많이 변해 버렸다고 깨달아지곤 하잖아요. 그런 저런 이유로 가슴이 답답해질 때면 제가 그랬대요. “언니 나 목포에 가고 싶어. 목포에만 가면 이 가슴이 뻥 뚫릴 것 같아” 


저는 산도 좋아하고 바다도 참 좋아하고 자연이 익숙한 환경에 있다가 서울에 가니까 할 게 없는 거예요. 그래서 늘 지하철을 아이와 함께 자주 타고 다녔어요. 그리고 살던 동네 근처에 산이 하나 있었는데 아이랑 유모차 끌고 산을 그렇게 자주 다녔어요. 산을 가야만 내가 숨을 쉴 수 있는 것 같았어요. 동네에 또래 엄마들도 많고 늘 모여서 뭔가 하기도 했지만, 그때는 그곳에 스며들기가 많이 부담스러웠어요. 저를 미워하는 사람도, 밀어낸 사람도 없었지만 뭔가 그 무리에 제가 들어간다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말 그대로 스트레스였어요.


그렇게 마음속 한편에 늘 그리운 곳이었는데, 정작 목포를 내려오게 된 결정적 계기는 IMF 때 남편일이 잘 안되면서 쫓기듯 내려오게 되었었죠.


목포 죽교동에 위치한 청춘게스트하우스


운이 너무 없어서.. 그런데 그 덕분에 너무 운 좋게 살아남은 도시, 목포 


우리 게스트하우스에 묵었던 한 청년분이 했던 목포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나요. 

‘운이 너무 없어서 여태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다가, 그 덕분에 운 좋게 아직까지 그대로 살아남은 곳’이라고요.

목포는 예전부터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소외됐던 곳이었잖아요 사실.

그런데 지금은 미리 관심을 받았던 곳들이 그만큼 빠르게 그 고유성을 잃어가고 있는데,  목포는 그 관심에서 소외되었던 덕에 고유성이 보존되고 이제야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고요. 많은 분들이 목포를 더 좋아해서인지, 아니면 저희 게스트하우스가 맘에 들어서일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을 다녀가신 분들이 “왜 여기를 여태까지 몰랐지?”라고 말씀하세요. 또 목포에 대한 기억이 참 좋다고 하시는데 그럴 때 참 보람을 느껴요.


문미영, 그리고 청춘게스트하우스


청춘게스트하우스가 있는 이곳 구도심으로 오기 전에는 저도 목포 신도시에 살았어요. 그러다 유달산 오는 길에 이 동네를 왔었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마치 봄날의 따스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이 이 앞 길이 좋았어요. 마음이 차분해지고 위안도 되면서 편안해지는 게 이 동네가 마냥 좋았어요. 이 동네와 사랑에 빠진 거예요. 중독되었다고 해야 할까? 한번 오니까 그 매력에서 빠져나갈 수가 없겠더라고요. 


직장은 다른 동네였는데 매일같이 이 동네에 들렀어요. 너무 좋았어요.


늘 따뜻한 인사로 사람들을 맞이해주셨던 문미영 사장님

 

#. 이 집 파실 생각 없으세요?

그렇게 사랑에 빠져 매일 같이 이 동네를 들락거리면서 유달산을 다녔어요. 유달산에 올랐다 내려와 이 동네를 들리게 되었어요. 그리고 처음 이 집 앞을 지나가는데, 처음에는 폐가인가 싶었어요. 그런데 마당을 보니 빨래는 널려있고.. 사람은 사는가 보다 하고 그렇게 지나쳤었어요. 


그러다 딸아이 대학교 4학년 때쯤 같이 이 앞길을 같이 다시 지나게 됐는데 딸아이가 이 집 느낌이 너무 좋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 나도 관심 있게 봤던 그 집?’ 하며 집 안에 계신 할아버지께 대뜸 여쭈었죠. “이 집 파실 생각 없으세요?”. 그러곤 바로 계약했지요.

나중에 맞은편 슈퍼 사장님께 들은 얘기인데요. 저희가 계약하기 딱 1년 전에 슈퍼 사장님께서 이 집 매매 계약을 하셨었데요. 그런데 채 하루가 지나지 않아 그 댁 할머니께서 이 집 절대 못 판다고 하셔서 계약을 취소했던 일화를 말씀해 주셨더라고요. 그런데 그 사이에 할머니께서 입원을 하시면서 두 분의 상황이 바뀌자 할아버지께  “우리 이 집에 오래 못 살 수 있으니 팔자”라고 하셨는데, 제가 지나가다가 물었던 거래요. 진짜 인연이었어요. 


그런데 집에 마음에 들었을 뿐, 공간을 무슨 용도로 어떻게 활용해야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은 이 집을 살 당시에는 없었어요. 이 골목에 유동인구는 얼마나 되는지, 어떤 몫으로 적합한지. 그런 건 신경 쓸 생각을 못 했어요.  


#. 왜 게스트하우스 였나고요?

집을 사고 얼마 안 지나서 마침 목포시가 시내에 게스트하우스 거리를 조성한다는 거예요. 시기가 그렇게 맞아떨어졌어요. 그때부터 서울로 오가며 교육을 받고 자격요건을 갖추어 나가면서 지원 사업에 선정됐어요. 어렵게 됐어요. 


그런데 지원 사업에 선정되고 나니 딸아이가 이거 안 하겠다고 했어요. 왜 아니겠어요. 대학 막 졸업하고 취업 준비하고 있던 아이인데, 면접 한번 안 보고 게스트하우스 창업을 하게 된 거니까요. 그런데 제가 “일단 이거 잘하고 있어”라고 설득했어요.

그래서 딸은 졸업하자마자 여기서 1년을 오롯이 게스트하우스 준비를 다 했어요. 지금 이곳에 세팅된 거 다 우리 딸이 고르고 갖추고 한 거예요. 인테리어 업체 도움 안 받고 저랑 딸이랑 제 여동생이랑 이렇게 같이 다니면서 알아보고 다 했으니까요. 참 예쁘게 잘했죠?


우리 집 손님들은 거의 짐 싸서 체크아웃하고도 전화가 다시 와요. 잠깐 들렀다 쉬었다 가도 되냐고.  밖에 나가 보면 마땅히 편히 쉴 곳이 많지 않은 거예요. 여기가 제일 좋대요. 짐을 맡기고 가시는 분들도 많고요. 그러면서 내가 이곳을 아주 잘못 운영하고 있지는 않는구나라고 생각해요. 우리 공간만이 주는 향수가 있는 것 같아요.


거실을 지나 방으로 가는 길에 있는 야외 테라스. 해가 잘 들어 더 예쁘다.

 

가장 단순하게 살아가는 요즘 


나의 하루 루틴에 대해 묻는다면 글쎄.. 특별한 건 없어요. 이곳에서의 하루는 크게 계획하지도 않고, 많이 고민하지도 않으려고 해요. 

지금은 내가 움직이고 싶은 계획과 동선이 아니라, ‘어떤 공간의 스케줄에 내가 들어와 있다’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정말 단순해요.


아침에 눈뜨면 이곳으로 와서 청소하고, 점심 먹고, 쉬다가 새로운 손님들과 귀가하는 손님들을  맞이하지요. 지금은 내 삶에서 가장 단순하게 살고 있는 시간이에요.

그냥 그렇게 지내고 있어요. 지금은.


 나를 살려준 공간, 청춘게스트하우스


"이 공간에서 꼭 해보고 싶은 거요?"

누구랑 뭘 해보고 싶다, 이런 건 없어요. 오히려 나는 지금 혼자 있는 시간을 더 갖고 싶어요. 많은 분들께 각자의 이야기가 있듯 저에게도 또 저만의 사연들이 많아요. 살면서 이런저런 계기로 이전의 삶과는 많은 부분이 바뀌게 되었네요. 살다 보면 다른 사람들과 쉽게 나누기 힘든 이야기들, 때로는 가족과도 공유하기 쉽지 않은 일들이 있잖아요. 그런 일들을 저는 여기에 머물면서 돌아보고, 쉬고, 치유하고 싶어요.

그러면서 생각하죠. 이 공간이 없었으면 지난 1년간의 시간들을 어떻게 보냈을까 하는요. 이곳은 나를 살려준 공간이기도 해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늘 열려있는 공간이 되기를


저희 공간에 그림 많지요? 여기 있는 그림들 이야기 들려드릴게요. 저는 전혀 그림 하고는 상관이 없던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제가 우리 게스트하우스를 지나는 분에게 “들어오셔서 차 한잔하고 가세요”라고 했대요. 나는 정작 기억이 안 나요. (웃음)


그분도 우연히 지나가다 그렇게 우리 집을 들렀던 건데 그다음부터 이곳에 정이 들었대요. 너무 좋았다고요. 산을 좋아해서 매일 유달산을 오르고, 내려오는 길에 저희 집에 들르시는데 그림을 엄청 좋아하는 분이에요. 안목도 있으시고 또 정기적으로 전시회를 보러 다니시며 그림을 많이 구매하기도 하시는 분이에요. 그런데 그분이 몇 번을 우리 집에 오가시더니 하루는 제게 본인이 구입한 그림들을 이곳에 걸 수 있냐고 물으시는 거예요.

 

고민 끝에 한 달 만에 그 제안을 수락했던 것 같아요. 이곳에 걸린 모든 그림들은 모두 선생님께서 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이 가는 작품들로만 직접 구입하신 거예요. 저는 그림을 잘 알지 못하지만 그분을 보며 ‘이분은 그림을 모으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모으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어요. 우리 게스트하우스, 그리고 목포의 보물이세요.  


실제로 공간을 들어서면서부터는 거실은 물론이고 방으로 들어가는 길들에 다양한 그림들이 걸려있다. 모두 ‘그림 선생님’께서 한 점 두 점 구입해 많은 사람들과 함께 보기 위해 이곳에 옮겨놓으신 작품들이다.
늘 그 자리에 걸려있었지만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그림들
이 곳에 그림을 걸자는 제안, 한 달여를 고민한 수락. 두 분 모두 자신과 타인을 존중하는 멋진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의 나에게, 그리고 목포에게


제가 작년까지 10년 정도 지금과는 다른 일을 했었어요. 그때는 정말 그 일에 푹 빠져서 살았어요. 일을 사랑하고 일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도 모두 사랑하는 마음 그 자체였어요. 지나고 나서 보니 후회는 없지만, 같이 일했던 분들께는 가끔씩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제가 푹 빠져 일만 했으니 힘든 점도 많았을 테니까요. 그래서 그때 같이 일했던 분들은 지금도 가끔 연락해서 만나서 밥 사주고 해요. 그때를 반성하는 마음으로요. (웃음)


얼마 전부터 TV에서 오은영 박사님이 나오는 모습을 보는데, ‘나도 저렇게 다시 무언가에 열정을 쏟고 멋지게 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시 예전처럼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해요.

희망은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무언가 도전하게 될 나의 모습을 상상하고 꿈꾸고 있어요.


하고 싶다는 것이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처음에 저에게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연락을 주셨을 때, 그때만 해도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할지는 잘 감이 안 왔어요. 그런데 세 분이 ‘생산적인 무언가를 같이 해보고 싶어 시작하게 됐다’에 마음이 움직였어요. 

무언가 해보고 싶어 진다는 거, 그게 제일 중요한 거잖아요. 멋있어요.

하고 싶은 거 다 해보세요. ‘언젠가 우리 이것저것 해보자’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에게 ‘언젠가’는 어쩌면 안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체크아웃 후 떠나기 전 커피를 내려 마시는 명당자리. 여기서 손님들은 대부분 방명록을 썼다.




‘공간은 주인을 닮는다’

겉보기엔 그럴싸하지만 편안하지 않은 공간이 있기도 하고, 반면 눈에 띄는 화려함은 없지만 공간 곳곳에 손길이 닿아 편안하게 오래 머물게 하는 공간도 있다. 청춘게스트하우스라는 공간은 곳곳에 사장님 문미영 님과 작은 사장님 지현 님의 마음과 손길이 묻어있는 공간이었다. 그래서 특별한 것을 하지 않아도 더 머무르고 싶고, 또 머물게 되는 그런 곳이었다. 


또 감사하게도 문미영 님은 가족들에게도 털어놓기 쉽지 않으셨다던 힘든 이야기도 우리에게 일부 나누어주셨다. 기꺼이 이야기를 꺼내 주시고 또 우리들의 이야기를 경청해주시기까지 한 문미영 님께, 또 우리 올라운드 팀이 하고 싶은 것을 ‘언젠가’로 미루지 않고 지금 시작할 수 있도록 첫 테이프를 함께 끊어주신 것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정리 by 주봉
사진 by 프로젝트 올라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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