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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로미 Sep 09. 2023

나의 은퇴일기
라떼시절 이야기

 

 나의 공식적인 은퇴일은 2023년 8월 31일이었다. 이 은퇴는 사실 내가 처음 임용되었던 날부터 예정되어 있던 것이었다. 다만 그때는 은퇴를 생각해보지도 않고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심판의 날이 도적같이 온다고 쓰인 종교서적의 구절과는 달리 은퇴의 날은 임용 당시부터 명확하게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다만 그 시간이 당시에는 오지 않을 것 같았고 의식하지 않고 살았다. 은퇴를 의식하면서 살게 된 것은 아마 은퇴하기 4,5년 전부터였을 것 같다. 은퇴하기 전 마지막 연구년을 갈 수 있을까 전전긍긍했고 연구년을 갔다 와서는 연구년에 따른 의무 재직 복무 규정에 따라 나는 학교에 볼모가 된 기분으로 학교를 다녔다. 물론 볼모가 된 것이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은퇴를 막 하고 난 이 시점에서 그동안 학교에 있으면서 어떤 일들이 있었나 잠시 회고해 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한다. 


처음 임용된 당시 나는 의욕에 가득 찼고 학생들을 너무 열심히 가르치다가 성대결절로 일주일간 휴강을 할 정도였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 이외에도 연구도 해야 했고 또 학회활동도 열심히 해야 했다. 내가 처음 임용되었던 그즈음에 대학들은 교수들의 업적을 체계적으로 점수화하는 작업들을 시작한 시기였다. 그 이전에 교수생활을 했던 선배 교수들은 연구를 그리 많이 하지 않아도 되었고 심지어는 석사학위만 있어도 임용이 되는 사람들도 있었다. 강의평가도 내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없었다고 했다. 소위 말해 철밥통의 시대였다고나 할까?  그래서 그때 나이가 지긋하신 교수님들이 신임교수였던 우리들을 보고 좋은 시절은 다 지나갔다고 했다. 근데 요즘 보면 요즘 임용된 교수들은 더 힘들게 교수생활을 하고 처우도 나아진 것 같지 않아서 보기가 안쓰럽다. 예전에 내가 학교에 들어갈 때는 계약직이라는 개념은 별로 없었고 임용이 당연시되던 시기였다. 전임강사부터 시작했지만 학교에서 승진요건으로 정해 놓은 논문 편수만 채우면 순차적으로 조교수, 부교수, 정교수가 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요즘 교수들은 자리도 많이 없고 엄청난 스펙이 아니면 채용되기도 힘들다. 그리고 예전처럼 임용되는 사람보다는 계약직으로 시작하는 교수들이 많다. 계약직은 당연히 임용보다는 고용이 불안정하다. 그리고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하면 교수 월급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특히 14년 전인가 등록금이 동결되고 나서는 정말 월급이 거의 오르지 않았다. 계약직으로 들어오는 요즘 교수들은 더 형편없는 월급을 받을 것이라 생각된다. 가끔 드라마 같은 데서 교수들이 화려한 상류층으로 등장하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교수들에 대해서 너무 비현실적인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리고 승진도 예전처럼 학교에서 승진하기 위해 정해 놓은 논문 편수만 채우면 승진되는 것이 아니라 학교 전체 승진대상자들 중 거의 삼분의 일이나 절반 정도밖에 승진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승진요건도 까다로워져서 학진 등재지는 물론이고 국제공인의 SCI나 SSCI급 논문을 다수 써야 승진이 되는 실정이다. 그래서 예전 철밥통 시절의 선배 교수들이 우리들을 측은하게 보았듯이 요즘 은퇴를 하거나 은퇴를 앞둔 교수들이 볼 때는 요즘 교수들이 참 안 됐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교수들이 암에 많이 걸린다는 자조적 농담이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세상이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것이 편리해지고 좋아지는 듯 하지만 실제 생활은 더 팍팍해지는 것은 학교 안이나 밖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휴대폰이 스마트폰으로 진화하면서 학교생활에도 변화가 있었다. 꽤 오래전부터 출결앱이 생겨 일일이 출석을 부를 필요도 없게 되었다. 학생들과 교수의 휴대폰 블루투스 기능으로 자동으로 출석체크를 하게 되었다.  출석을 일일이 부르는 시간은 절약되었지만 학생 개개인을 호명하며 눈을 맞추면서 얼굴을 익히는 시간도 사라졌다. 그리고 출결앱에 떠있는 학생들의 사진은 실물과는 많이 달라서 누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강의 또한 기본적으로 PPT를 띄워놓고 하다 보니 학생들은 교수가 열심히 고심해서 만든 PPT를 강의자료로 제공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학생들은 PPT 위주로 공부를 하고 교재나 다른 참고 도서를 아예 사질 않는 것 같다. 특히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졌다. 물론 자율적으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코로나 시절을 거치면서 학생들의 학습능력은 엄청나게 저하된 것 같다. 

   예전의 교수들은 권위가 있었고 학생들은 교수들의 권위에 억눌리거나 교수들을 존경하거나 그랬던 시절이었다. 내가 처음 교직 생활을 했던 때만 해도 강의실에 모자를 쓰고 들어오는 학생들에게 어떤 교수는 강의 중에는 모자를 벗도록 지시했고 학생들은 그 지시를 군소리 없이 따랐었다. 지금 그랬다가는 복장검열이라고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당시 학생들은 수업에 슬리퍼를 신고 오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었지만 요즘 학생들은 트레이닝복 차림에 야구모자 그리고 슬리퍼 차림이 남녀공통의 복장이다. 내가 처음 학교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여학생들은 예쁘게 꾸미거나 원피스나 치마 차림으로 오는 적이 꽤 있었다. 요즘 여학생들은 원피스, 치마는 거의 입지 않고 남학생들과 복장이 비슷하다. 검은색이나 회색 운동복이 마치 교복인양 입고 온다. 마지막 학기의 어느 날 강의실에 앉아 있는 학생들의 복장을 유심히 쳐다보니 검은색, 흰색, 또는 회색을 입지 않은 학생은 딱 한 명이었다. 그것도 튀지 않는 차분한 초록색 티였다. 

  처음 임용될 때부터 은퇴할 때까지 목격해 온 대학풍속도가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낀다. 김영란법이 시행된 해부터 학생들이 스승의 날에 카네이션을 가져오는 것도 부담스러웠고 개인 상담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주스 같은 음료수를 권하는 것도 혹여 법에 저촉되지 않을까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학생회 단체에서 준비한 꽃이나 자그마한 선물은 괜찮다고 했지만 개인적으로 주고받는 음료수 같은 것은 다시 한번 생각하곤 했다. 사회가 청렴해지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때로는 너무 지나치게 신경을 쓰다 보니 소소한 인간적인 정도 소멸되는 것 같았다.  인간적인 면이 없어지는 것은 비단 대학뿐만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해 보기도 하지만 확실히 학생들과 격의 없이 짜장면을 먹으면서 소통하던 예전과는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낀다. 인간적인 정은 점점 없어지고 서로를 다치게 하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움이 스스로의 말과 행동을 검열하게 만드는 세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학생들에게 혹시 내가 하는 발언이 성희롱이 아닌지 또는 학생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는 않는지 곱씹어 보게 되었으니 말이다. 어떤 영화제목처럼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일들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라떼가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바뀔 것은 바뀌어야 하지만 새로운 것은 가끔은 생소하고 당황스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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