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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로미 Sep 11. 2023

나의 은퇴일기

은퇴와 경제 문제 

남편은 나보다 2년 반 전에 은퇴를 했다. 은퇴하기 전에 이미 은퇴 후에 받을 수 있는 연금액수가 정해져 있었다. 남편은 은퇴에 대한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렇게 은퇴를 맞았다. 그리고 그 이후는 당혹스러운 일들이 연달아 일어났다. 일단 남편은 예상하던 연금을 다 받을 수 없었다. 남편 앞으로 된 건물에서 임대 수입이 있었기 때문에 연금은 왕창 깎여 나갔다. 그리고 복병은 또 있었다. 바로 국민건강보험이었다. 그동안은 직장에서 소득에 따른 보험을 내면 되었지만 국민건강보험은 소득과 이자, 재산, 심지어는 자동차 가액에 따라 산출되었다. 문제는 남편이나 나나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건강보험 폭탄을 맞게 되었다. 3년인가 유예하는 기간이 있다고는 하지만 생각지도 않게 건강보험으로 많은 금액이 빠져나갔다. 나와 남편은 뒤통수를 한대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우리가 예상했던 연금액도 다 받을 수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반토막이 난 연금에서 건강보험까지 내야 됐으니 말이다. 그동안 나에게 가끔 돈을 주곤 하던 남편은 이제 죽는소리를 한다. 임대수입은 임대수입에 따른 종소세나 재산세 등을 내고 나면 그것도 거의 남는 것이 없었다. 예전에 은퇴한 사람들이 작은 돈을 아끼느라 벌벌 떠는 것을 보면서 쪼잔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그들의 행동들이 이해가 됐다.


 남편이 은퇴 후에 겪는 경제적 곤란을 목격한 나는 은퇴하기 전 사학연금에서 주최하는 설명회에 참석해서 

은퇴 후의 경제생활에 관한 여러 가지 지식들을 얻게 되었다. 나는 남편처럼 임대수입도 없고 사업, 근로 소득도 없을 것이기에 산출된 연금을 다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문제는 건강보험이다. 아직 퇴직 후 건강보험이 얼마가 나올지 잘 모르겠다. 재산과 이자, 배당 소득 등이 건강보험이 영향을 준다고 한다. 그리고 자동차도 4000만 원 이상되면 건강보험이 올라간다고 한다. 내 차는 10년이 넘어서 바꿀 시기가 되었는데 자동차를 새로 사는 것도 이제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예전에 어디선가 본 이야기 중에 은퇴하면 BMW를 이용해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Bus, Metro, 그리고 Walk, 그래서 BMW라고 한다나 뭐라나. 예전에 내가 호기롭게 남편에게 난 은퇴하면 BMW를 이용할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는데 까맣게 잊고 있었다. 얼마 전에 차에 배터리가 방전돼서 차를 새로 사야 하나 잠깐 고민했더니 남편이 "왜 BMW를 탄다며"하고 내가 예전에 했던 말을 일깨워줬다. 그땐 그런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그럴 마음이 점차 없어져가고 있다. 사람은 항상 현재를 기점으로 미래의 행동을 결정하곤 하는데 현재와 미래 사이에는 수많은 변수가 있다는 것을 종종 간과한다. 나도 예전에 다리가 튼튼하고 퇴행성 관절염이 없고 잘 걸을 수 있었을 때는 아마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리도 슬슬 아프기 시작하고 많이 걷는 게 오히려 독이 된다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예전에 결심했던 BMW 이용은 좀 무리겠다 싶다. 하여간 건강보험을 생각하면 지금 타는 차가 완전히 고장날 때까지 타거나 또는 4000만 원이하의 아주 작은 소형차를 사거나 그도 저도 안되면 차를 없애거나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달부터 연금을 받게 될 것이다. 연금은 매달 25일에 나온다고 한다. 그동안의 씀씀이로 봐서는 연금만 

가지고 생활하는 것은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학연금 설명회에서 연금생활에 대해 설명을 해주던 사학연금 임원은 이런 비유를 했다. 연금생활자는 우물형 자산과 곳간형 자산, 이 두 가지를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고 했다. 우물형 자산은 퍼내도 다시 차는 우물처럼 매달 주기적으로 들어오는 연금을 말하는 것이고 주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데 쓰이는 돈이다. 곳간형 자산은 큰 비용의 병원비나 경조사, 수리 등과 같이 일상생활과는 무관한 목돈이 들어가는 데 쓰이는 비용이라고 했다.  은퇴자들은 곳간을 최대한 손대지 않고 우물형 자산만으로 생활하고자 하나 언제나 예기치 못한 복병들이 곳간에 쌓아둔 자산들을 축내게 마련이다. 우선 이번 달에는 추석이 있는데 재직 시에는 추석 보너스가 있어서 그 돈으로 명절에 인사할 곳들을 챙기면 됐었다. 당장 이번 추석은 예전처럼 챙겨야 할 사람들을 챙기려면 곳간의 곶감을 야금야금 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나는 은퇴를 했으니 이제 인사를 못 챙기겠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국사회에서 경조사를 적절하게 잘 챙기지 않으면 사회적 평편이 나빠진다. 은퇴자들은 경조사를 안 챙겨도 되는 법이 생기던지 암묵적인 룰이 생기면 좋겠다는 터무니 없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영어 표현에 이런 표현이 있다. "You can't eat the cake and have it."  케이크를 먹던지 가지던지 두 가지 중 하나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케이크를 먹으면서 그 케이크가 온전한 모양으로 남아있기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그런데 나 같은 은퇴자는 자꾸 케이크를 그대로 보존하면서 또 먹기를 바라는 이율배반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소비를 많이 줄이기는 했지만 아직은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그리고 내가 소비를 줄인다고 문제가 해결될 수 없는 것이 물가가 엄청 올랐기 때문이다. 소비자 물가가 너무 올라서 집에서 밥을 해 먹어도 비용이 많이 들고 동네 허름한 밥집에 가서 밥을 먹어도 돈이 제법 든다.  우리가 은퇴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엄청 쪼잔한 사람들이 돼 가고 있는 것 같다. 가끔 그런 우리의 모습이 아직은 낯설어서 남편과 나는 서로 "내가 오늘 저녁 사줄게"하고  말하곤 하지만 말이다. 아직 은퇴 적응 시기라 모든 것이 낯설고 특히 생활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경제생활에 슬기롭게 적응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은퇴 선배님들은 어떻게 슬기롭게 이 문제를 헤쳐나갔을까 그 지혜를 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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