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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Lin Mar 25. 2024

2023 파리 2

나와 그녀의 아름답고도 슬픈 

전날의 긴장과 피곤함에 쩌든 채 잠들어서인지 몇 달 만에 숙면을 하였고, 아침이 너무나도 상쾌했다. 

엄마와 함께 파리의 찬 공기를 맡고 느끼기 위해 나갔다. 꽤나 멋을 부린 레깅스와 부츠, 비니와 레옹안경을 쓰고 파리지앤느가 되기 위해! 


아침 파리의 풍경은 정말 고요했고 아름다웠고 낯설었다. 철의 고동색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에펠탑도, 유럽풍의 건축양식을 지닌 주택들도, 구름이 모양을 지니고 있던 그 푸른 하늘들도 다 각각이지만 조화를 이룬 수려함과 아름다움으로 우리의 숨을 막았다. 신나게 지도를 보고 슈퍼를 찾아갔고, "재패니즈?"라는 물음에 "농 코레안!"이라고 받아치며 그렇게 첫 소비를 이루어냈다. 

돌아오는 길, 구글맵 평점 4.8의 베이커리 'La DUCHESSE Bakery'에서 뺑 오 쇼콜라 등 4가지의 빵을 만원도 안 되는 감동적인 가격에 산 우리는 그렇게 파리의 아침과 거리를 품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행복한 센 강 뷰와 빵, 그리고 커피 맛을 즐기고 나갈 준비 시작! 




첫 번째 행선지인 몽마르뜨 언덕을 가기 위해 까르네 티켓을 끊으러 역으로 향했고, 성공적인 티켓팅 후(역무원 아줌마는 "멕시"인사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줄곧 차가운 눈빛이었다. 이는 곧 프랜치들의 특성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지.) 티켓을 가지고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 에펠탑 뷰였다. SO Romantic! 하지만 그 근처에서 소매치기가 워낙 많다는 말에 긴장 타고 있었던 나는 그 순간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쫄아 있었다. 엄마는 뭐가 그리 좋은지 사진을 찍어대기에 바빴고, 딸의 모습을 담아주기 위해 바빴다. 파리의 팔 척 금발 사람들의 모습에도 엄마는 딸이 너무 이뻐 보였는지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다며 애정을 쏟아주었다. 그렇게 버스를 탔고, 몽마르뜨 언덕까지 가는 그 경로는 그야말로 별천지! 파리 주택과, 특유의 센스와 아름다움들이 곳곳에 묻어 있는 식당과 카페들. 금발의 사람들과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까지. 모든 순간이 낭만적이었고 지나침이 아쉬울 정도였다. 


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올라가기 전에 식사를 위해 'Cafe Le Nazir'에서 오리 다리 구이와 구운 채소 샐러드를 주문했다. 식당 안은 다 외국인뿐이어서 엄마와 내가 들어간 순간, 시선집중! :) 그들도 당황했겠거니와 우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낮술을 즐기고 있는, 알코올을 변명 삼아도 용인 불가능한 crazily loud 한 중년 남성들이 서있는 바 옆자리로 안내를 받았다. 귀가 뚫릴 것만 같은 시끄러움에 옆자리로 옮겼고 그렇게 첫 식사를 했다. 샐러드에 있는 치즈를 먹어본 나는 음! 꽤나 쿰쿰하네 생각했는데, 엄마가 "이상한 냄새나지 않니? 염소 냄새 같은 거.. "라고 말을 했고, 아! 순간 깨달았다. 스치듯 본 메뉴판에서의 'goat cheese'..


그렇게 강한 향기를 남긴 첫 식사를 마무리하고 몽마르뜨 언덕까지 올라가는 길은 정말 좋았고, 사람도 정말 많았다. 한정된 시간 속 금발의 사람들을 가장 많이 본 순간들이었달까. 가는 길에 캐리커쳐를 하는 화가들이 있는 공간이 있었는데 신기한 건 호객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자신들의 그림을 늘어놓은 채 본인들의 시간을 보내기에 바빠 보였다. 자신들의 예술적 취향을 강요하지 않는, '맘에 든다면 와서 그려봐도 좋아'의 스탠스였다.


그렇게 올라간 몽마르뜨 언덕에서 사크레쾨르 대성당에 도착하였다. 사실 나는 별로 들어가 보고 싶은 생각이 없었는데 엄마는 하나님이 계신 곳이라며 들어가 보자고 하였다. 내키지 않았지만 줄을 섰다. 성당 앞에서는 자유로운 예술가가 기타를 치며 애드쉬런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노래를 시작한 사람은 그 예술가였지만 부른 건 그 앞쪽의 모든 사람들이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는 노래여서 그런지 따라 부르며 그 순간들을 즐겼다. 특히나 아이 엄마가 아이와 아이컨택을 하며 노래를 따라 부르는 모습은 황홀했다. 아이 엄마의 상큼하고 싱그러운 웃음의 입과 아이의 호기심 넘치는 눈동자는 참으로 아름다웠고, 마치 그 둘을 위한 노래인 듯 내 시야는 줌인되었다.


성당은 정말 크고 신성하고 따뜻했다. 예수님이 크게 팔을 벌리고 있는 동상에 마음이 안정되었고 낯을 가리고 있던 사람들조차도 안심되었다. 스테인글라스로 둘러 쌓인 대성당의 내부는 장관이었고, 첫 행선지로 안성맞춤이었다. '하나님, 이곳에도 계신 것이지요. 남은 저와 엄마의 여행 함께 동행하여 주시고, 안전 지켜주시옵소서." 성당에서 나오고 엄마와 나는 몽마르뜨 언덕 계단에 앉으려고 했으나, 사람이 너무 많았다. 소매치기에 대한 불안감으로 나는 서있었고, 엄마는 어린아이처럼(^^) 가서 앉아 있을 테니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였다. 흰색 패딩의 나의 엄마는 너무나도 예뻤고, 독보적이었고, 조금은 슬프게 즐거워 보였다. 




그런 그녀와 내려오는 길에 이것저것 조금은 말랑해진 마음으로 구경할 수 있었다. 생물 새우를 사고 싶어 하는 엄마를 만류하고 화장실을 가기 위해 에스프레소 바에 갔지만, 그 카페는 화장실이 없는 곳이었고. 에스프레소의 양만큼이나 급하게 마시고 먹고 내려왔다. 머랭 디저트를 들고 버스를 타고 개선문으로 향했다. 개선문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엄마에게 사진을 찍는 기술에 대해 한참 열띠게 강의를 해주고, 인생샷을 건진 채 걸음을 옮겼다. 

엄마와 함께 하는 그 순간들이. 버스에서 본 그 모든 풍경과 사람과 시간들이 너무 소중하고 반짝였다. 에펠탑 근처에서 내린 우리는 센 강을 산책하기 위해 내려갔고 내려가는 길에 사진을 찍었는데, 계단 담에 앉아있던 한 여인과 눈을 마주쳤다. 우리의 설렘과 즐거움이 느껴졌는지 밝은 웃음으로 따뜻하게 눈을 맞춰주었고 정말 행복했다 그 순간이. 낯선 곳에서의 낯선 사람들과 아름다운 풍경들, 꿈에 그리던 그 공간들과 시간들이,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애틋하고 아름다운 여인이, 멋진 나 자신과의 동행이. 한갓진 소리였던 파리 여행을 일주일 만에 실행에 옮긴 내가 너무나도 멋있다고 느껴진 순간이었다. 


그렇게 만 오천보의 일정을 소화하고 시차적응에 지친 몸에게 잠깐의 휴식을 준 우리는 일어나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현지인 맛집을 가고 싶었던 나는 숙소 뒤쪽 'Le Volant Basque'로 향했고, 아주 좁은 2인용 좌석을 안내받아 앉았다. 

어쩐지 알 수 없는 엄마의 어둡고 지친 표정. 불편한 마음이지만 식사 동안 애써 무시한 채 비프 부르기뇽과, 씨배스 구이, 티라미수를 먹었다. 가정식이라던데. SoSo! 음식 맛에 조금 실망하고 엄마의 그런 표정에 짜증이 확 나버렸다. 이야기를 열었다. "엄마 요즘 좀 늙은 것 같아."라고 시작한 말에 엄마 표정과 분위기의 이유를 알았다. 아빠와의 문제로 불안감을 느낀 엄마는 딸에게 말하지 못한 채 저녁부터 여행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파리에서의 제대로 된 여행 첫날 저녁은 한국에 두고 온 문제들에 쫓겨 엄마와의 아주 깊은 대화로 잠식되었다. 


마음이 아팠다. 찢어질 듯이. 아름답고 늙어버린 그녀의 삶이 애틋했고, 자신은 돌보지 못하고 울먹거리는 그녀가. 무겁고 힘들었다.


그렇게. 그날 밤은 엄마의 뒤척임과 애틋한 손가락에 파리를 내주었다. 



                                                                                       2023. 3. 11 파리 센강이 보이는 숙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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