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 왔으니 서핑은 해봐야지? 서핑체험을 위해 꾸따비치에 갔을 때 적잖게 실망을 했다. 상상했던 에메랄드 푸른빛의 바다가 아닌 거무틔틔한 서해바다가 그곳에 있었다. 원래는 큰아이와 같이 서핑을 배워보려 했으나 꾸따비치에 물건을 파는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 친정엄마와 둘째만 두기엔 불안해서 큰아이만 체험수업을 받기로 했다.
발리 현지인 서핑강사는 한국인과 결혼하고 어린 아들 둘이 있어 그런지 아이를 무척이나 잘 다루었다. 그늘에서 서핑 기본자세와 보드 위에서 일어서는 법을 배우며 수업을 들었고 이내 강사와 바다로 나갔다.
강사가 보드에서 일어서는 법을보여주고 큰아이도 따라서 일어서다 고꾸라져 바닷물의 짠맛을 경험하고는엉엉 크게 울어 강사가 달래주기도 했다. 나는 멀리서 가슴 졸이며 지켜보면서 '그래, 이제 일어나야지, 일어나자' 나도 모르게 두 주먹을 쥐면서 일어나려고 애쓰는 아이를 응원하였다.
보드 위에서 일어나려다 넘어지고 또 일어나려다 꽈당 넘어지고, 서핑을 배운다는 건 마치 인생을 배우는 게 아닐까? 물 위에 떠있는 보드 위에서 중심을 잡는 게 말처럼 쉽지 않아 보인다. 중심을 어느 정도 잡게 되면 저 멀리 파도 있는 곳까지 나갈 수 있는데 첫 수업에 파도까지 타지는 못했지만 엄마와 떨어져서 낯선 발리 강사님께 수업을 받아보는 것에 의미를 두었다.
언니가 서핑을 배우는 사이 둘째는 서핑 강사의 아들이 밀어주는 그네를 조심스럽게 타보고 있다. 두 아이의 어색한 표정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남동생을 돌봐주는 발리 내니도 웃음을 참지 못하며 계속 둘의 놀이를 지켜본다.
5살 동갑내기들은 어색함도 잠시 이내 숨바꼭질도 하고 해변에서 파는 아이스크림도 함께 먹으며 친구가 되었고 둘째는이후로 꾸따비치를 지날 때마다 내 친구 어디 갔냐며 찾았다.
꾸따비치 근처의 한 호텔 수영장에는 돌로 조각품을 만드는 예술가가 있다. 본인 작품을 만들다가 체험하러 오는 사람이 있으면 체험해 주는 식으로 간판도 없이 장사를 하고 있어서 정보도 장소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발리 돌이 단단하지 않아서 아이들이 도구를 이용해 작품을 만들 수 있을 정도지만 그래도 돌인지라 일일이 잡아주는 게 필요해 1:1로만 체험을 해야 한다.
한 명이 체험할 동안 다른 한 명은 바로 앞 풀장에서 수영해도 된다고 해서 첫째부터 체험시키고 둘째랑 수영장에서 신나게 놀아주었다.
아이에게 먼저 하고 싶은 조각을 고르라고 한다. 주로 작은 꽃과 I LOVE BALI 글씨가 새겨진 하트 조각, 거북이 등이 있는데 우리 아이들은 큰아이는 거북이, 둘째는 꽃을 선택했다. 돌조각이라고 하면 아이들이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지만 조각가가 도구로 자리를 잡아주고 아이는 망치로 통통 두들기다 보면 어느새 완성이 된다.
나는 어느 여행지를 가건 아이들이 체험할 거리부터 찾는다. 한국에서 안 해본 것들, 그 나라에서만 할 수 있는 것들로 검색하는데 사람은 경험한 만큼 성장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가 해외를 처음 나간 건 21살 대학교 졸업식이었다. 동기들이 졸업하는 그 시각에 홀로 미국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그렇게 서부 LA에서 시작해 동부 뉴욕까지 꼬박 6개월 동안 35개 주를 횡단하고 여권 만료 기한 전날에 한국으로 귀국했다. -그 시절 미국에 가려면 학생비자로 최대 6개월까지만 머무를 수 있는 여권이 나왔다-
캘리포니아의 화창한 날씨와 좋은 환경은 둘째치고 자유롭게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찾아서 하는 그 분위기가 너무 부러웠다. UCLA와 하버드 캠퍼스에서도 잔디에 누워 햇볕을 쬐는 학생들의 자유분방함이 좋았다. 인서울이라는 목표만을 향해 달려가는 한국 학생들의 찌들어있는 분위기와 대비해 미국은 내게 자유 그 자체였다. 어릴 때 내가 이런 환경에서 자랐다면 인생목표가 확 달라졌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이나 다른 외국으로 이민이나 유학을 당장 갈 수는 없지만, 여행을 하며 아이의 시각을 넓혀주고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체험을 통해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공감능력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경험하는 모든 것이 그들의 삶을 구성하고 미래를 결정한다. 아이들이 세상을 경험하면서 그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 성장하는 걸 지켜보는 기쁨도 내가 열흘살기 여행을 지속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이다.
발리에서는 유모차에 실려다니기만 하던 조그만 아이가 이젠 스스로 짐을 싸고 길도 찾고 식당에 가면 엄마대신 주문도 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