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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방 김안녕 Sep 03. 2020

1. 평생 효도는 못할 팔자

골방 김안녕 과거 특선, '나는 왜 살았을까?' - 1편

"저는 행복한 가정에서 생활력 강한 아버지와
가정적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랐습니다."



 대부분의 인사담당자가 이야기하는 자기소개서에서 가장 보기 싫은 멘트 유형이라고 하던데, 나는 이 멘트를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었다. 내가 쓰면 너무 명백한 거짓말인걸 어찌하리? -자기소개서에 다들 구라를 조금씩 섞는다는 걸 알게 된 건 추후의 일이었다-




 누구나 가정사는 있다. 나도 알고 있다. 그래서 입 밖으로 잘 뱉어놓지 않는다. 나보다 더 불행하게 자란 사람 앞에서 주름잡는 꼴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이따금, 다들 술기운이 거나하게 올라와 이른바 '가정사 배틀'을 벌이게 될 때는 자연스레 가정사를 늘어놓곤 하는데, 그때마다 그 대회의 우승자는 항상 나였다.


 그럴 만도 한 게, 아직까지 내 주변에선 아버지에게 하루 걸러 몽둥이질을 당한 적도, 그 몽둥이질 중에서도 벨트, 뾰족구두, 부러진 야구배트 -창의력 부분에서 점수를 땄던 것 같다-, 심지어 식칼로 학대를 당한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덩치 큰 인간이 이런 걸 들고 뛰어오는 걸 보면 머릿속에 '어? 어?? 으악!!' 같은 생각밖에 안 든다.



 뭐, 이야기해 봐야 집안 욕 먹이는 꼴밖에 더 되겠는가. '가정사 배틀' 이 열리는 경우 외에는 굳이 입 밖으로 내놓지 않았고, 집에서 떨어져 살다 보니 자연스레 잊혔다가 다시 학대의 순간들을 곱씹어 보는 계기가 생겼었다.




 군에 입대할 때의 일이었다. 신병교육대에서 자대 배치를 받고 앞으로 생활할 부대의 행보관이 1톤 트럭으로 나를 데리러 왔었다. 차에서 단둘이 긴장을 하며 가고 있자니 행보관은 내 긴장을 풀어주려고 했는지 차에서 담배를 피우게 해 주며 내 가정사 등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군대이니 괜한 거짓말을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정말 오래간만에 내 '썰'을 풀어놓았고, 잠잠히 듣던 행보관은 나지막이 한마디를 던졌다.



"야, 그거는 살인미수 아니냐?"


 그 말을 듣고 순간 황당하게 되었다. 그쪽으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음. 가만 생각해 보니 그게 맞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는 가족 대 가족으로만 생각해서 '있을 수도 있는 일'이라며 스스로 치부해버리곤 했는데, 그냥 모르는 사람 간의 일이라면, 하다 못해 깨진 병만 들어도 살인 미수가 되는데. 칼을 휘두르는 건 당연히 살인 미수 아닌가?


 이걸 계기로 다시 한번 학대의 기억들이 되살아나게 되었고, 학대당하던 그 순간들의 생생한 기억들을 일주일에 한 번은 꿈으로서 되겪고 나니 도저히 가정과 가까워질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아버지와는 말 한마디 섞지 않고 지낸다.

손에 흉터가 꽤 많은데, 그중에서도 이건 아버지가 휘두르는 칼에 스쳐서 난 흉터다. 가끔씩 볼 때마다 그때의 기억이 상기되곤 한다. 하필 손에 흉터가 나서..



 간혹 가다 이런 나의 이야기를 들은 혹자들은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잘해라', '나이 들면 아버지가 한없이 약해 보일 거다' 등의 조언을 해주곤 한다.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다. 굳이 내가 겪지 않더라도 다양한 매체에서 영향력 있는 자들이 나와 눈물을 흘리며 똑같은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가.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는 자들의 반응은 대개 똑같이 공감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다만 아쉬운 건 나는 그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 전혀 공감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아직도 그 순간들이 꿈에 나오고, TV에 누군가 학대당하는 듯이 묘사하는 장면만 나와도 심장이 저릿저릿거리는데 어쩌겠는가!

영화 '친구 2'에서 주인공이 가정폭력을 일삼는 새아버지에게 폭력으로 되갚아주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그래 본 적은 없지만) 나는 오히려 이런 장면에 큰 공감을 느낀다.





 어쨌든 난 평생 효도는 못할 팔자인 것 같다. 다만 가끔씩 부산에 살다 얼마 전 서울에 올라온 사촌 형과 '우리 집 가문 남자들은 왜 다 이모양일까', '우리가 이 대를 끊자' 등의 이야기를 나누며, 혹은 나와 비슷한 처지를 지금에서야 겪고 있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아무런 말없이 들어주며 지내다가. 언젠가 내 마음이 당신을 용서할 준비가 된다면 그제야 나도 '행복한 가정에서 생활력 있는 아버지와 가정적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랐다' 등의 실없는 멘트를 쓸 수 있지 않을까.


음. 아님 말고.



실제로 받은 질의응답


Q. 살아남은 게 용하다. 나에게도 실전 생존 전략을 알려달라.

A. 몸을 낮추고 소리를 내지 말아라. 눈에 띄는 행동을 하면 공격받을 것이다.  그리고 가능 한 빨리 그 자리를 뜨도록.




1편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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